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로고침, 또 새로고침.

설 연휴가 끝나고 나서부터 코로나19에 대한 신속한 정보를 얻고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터넷 포털사이트 속보란을 들여다봤다. 연휴의 마지막 날 회사 비품을 구매하기 위해 일산의 한 가구 판매점에 다녀왔는데, 그날은 마침 3번 확진자가 일산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상대로 일하는 업종의 종사자로서 혹시나 동선이 겹쳤을까 봐 아찔했다. 가슴통이 조여왔고 목이 답답해 수시로 체온을 체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코로나인가 병'에 걸려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신규 확진자 동선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새로고침 버튼을 수시로 누르면서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최신 기사를 읽었다. 

그 시기에 읽은 기사들은 대부분 유의미한 취재물이라기보다는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일 만한 '가십성 정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제목만 자극적일 뿐 내용은 텅 비어 있기 부지기수였고, 속보성 헤드라인만 올리고 본문은 아직 작성 중이라는 기사도 많았다.

같은 사건도 신문사에 따라 정보의 질과 양이 천차만별이라 다양한 신문사의 글을 찾아서 실체를 알아내야 했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만한 사진을 당연하게 사용한 기자도 있었고, 문맥이 매끄럽지 않은 글, 맞춤법이나 오타 수정도 되어 있지 않은 기사도 있었다.

거기에 자극적인 댓글이 달리며 분노가 더해졌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며 빠르게 최신 기사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자꾸 기사를 읽다 보니 내 취향과 맞는 신문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 종이신문 구독을 시작했다. 

종이신문 구독은 신의 한 수였다  
 
종이신문을 읽으니 인터넷 의존도가 줄었고, 쓸데없이 마음 졸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종이신문을 읽으니 인터넷 의존도가 줄었고, 쓸데없이 마음 졸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 김세윤

관련사진보기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서 '신문사 구독' 버튼을 클릭하면 해당 신문사의 주요 기사 목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속 작은 화면에서 제목 몇 단어로 좋은 기사를 선별해내기는 어렵다. 자극적인 제목에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공감 수나 댓글 수가 많은 기사일수록 상위에 오른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보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런 제목에 휘둘리기 싫어 종이신문을 정기 구독했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한 부씩 배달된다. 한 달에 2만 원씩 하루에 천 원꼴이다. 정치·경제 정보뿐 아니라 세상사에 눈뜨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독을 시작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종이신문을 읽으니 인터넷 의존도가 줄었고, 쓸데없이 마음 졸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선동하는 댓글로부터 멀어져 감정 소모도 줄었다. 하루 동안 작성된 기사는 바로 다음 날 종이 신문으로 배부된다. '속보'처럼 긴급한 소식은 가끔 스마트폰을 확인할 때 포털사이트 맨 윗줄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종이신문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① 다양한 세상사를 읽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헤드라인 뉴스는 정치, 경제, 교육, 부동산 등 특정 분야의 기사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끌 만한 사건, 댓글이 많은 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주로 상위권에 노출돼 있다. 그런 일들이 전부는 아닐 텐데.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곳곳의 돌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종이신문은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까지 어제 일어난 전반적인 세상사 이슈를 담고 있다. 선거 유세나 재난지원금 지원 범위 논의 말고도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문사마다 미묘한 정치색이 있다. 그 점을 인지하고 기사를 읽기 시작했더니 객관성을 유지하기 쉬워졌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같은 사건이더라도 어떤 단어를 사용해 문장을 만드느냐에 따라 독자의 반응도 달라진다. 감정이 이입되고, 여론이 형성된다. 사람들은 글에 담긴 정보나 사실보다는 헤드라인처럼 직접적이며 쉬운 정보에 주목하기 쉽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② 가시 박힌 댓글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사교육자로서 사교육자만 잡아먹으려 드는 인터넷 기사와 댓글이 분하고 억울했는데, 종이신문 지면에서 '학원 단속'은 오늘의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낼 만한 내용을 전면에 배치하는 것일 뿐 그것이 모든 국민에게 큰 이슈 거리는 아니었다.

당장 4월 9일자 신문만 해도 선거 동향, 재난지원금 신속 지원을 위한 논의,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수출 기업 금융 지원, 개인 채무자의 채무 조정 등 코로나19 긴급 지원 방안, 온라인 개학 준비 과정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인터넷 댓글은 누군가를 상처 내기 위해, 자신의 뾰족함을 표출하기 위해 일부러 쓴 글이다. 그걸로 속이 상하면 나만 손해다. 자극적인 댓글에 휘둘리지 않을 내공이 생겼다.
 
③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알게 된다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항공사나 여행업계, 학원, 자영업 등의 소상공인 외에도 수출업계, 일부 대기업, 전시, 공연, 박람회 등 다양한 예술 관련 업종도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스포츠, 특히 올림픽을 준비해온 선수들 또한 한 해 농사를 망친 셈이었다. 나보다 더욱 막막한 사람들도 다들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의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 신문 읽기를 시작했는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

④ 사설과 칼럼의 힘 

신문의 가장 마지막 장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주장하는 글을 담고 있다. '글쓰기를 공부하는 데 사설이 제격이다'라는 말을 익히 들어봤지만, 지금처럼 피부에 와 닿는 적은 없었다. 사설과 칼럼을 읽으며 새삼 글의 힘을 느꼈다. 논리적으로 재미있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았다. 

첫날엔 두 시간 이상 정독하며 신문을 읽었다면 이제는 관심 없는 분야는 제목 정도만 빠르게 넘어가고, 객관성을 지닌 기사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신문 정독을 통해 얻은 정보 덕에 4월 초부터 시행된 '소상공인 초저금리 긴급경영자금 대출'을 받게 됐다. 이전 대출 상품들보다 절차를 간소화한 제도 덕분에 통장 입금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반면에 몇 주 전 대출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도 대출 가능 여부를 몰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악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얼마만큼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느껴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모두가 난생처음 경험하는 위기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발 빠르게 대처하는 전문기관 종사자들 덕분에 나는 당장 한시름 놓게 됐다. 영세사업자인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됐다. 

통장에 여유가 생기니 마음도 놓인다. 이 역시 전부 빚이고, 아직 정상적으로 업무를 시작하지 못했고, 언제 재개할지도 알 수 없지만, 곧 다시 일어날 것이다.

신문 구독 덕분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힘이 생겼다. 넘어지고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와 buk.io(북이오)의 채널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태그:#종이신문, #신문정기구독, #코로나대출, #살아남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쓰기를 즐깁니다. 사는 이야기, 생각과 일상을 기록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그저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