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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39 감염관리병동 간호사들이 음압병동 내에서 환자에게서 채취한 검체를 운반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39 감염관리병동 간호사들이 음압병동 내에서 환자에게서 채취한 검체를 운반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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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에만 있고 캐나다에는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수출할 만큼 충분한 진단키트,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확진자 동선 공개, 자가격리 앱. 한국에서는 당연히 여겨지는 이런 것들이 캐나다에는 없다. 반면에 '한국에는 없는데 캐나다에만 있는 것'들도 많다. 국경봉쇄, 필수업종이 아닌 비즈니스의 셧다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 사재기 같은 것들이다.

캐나다에서는 닫아걸고 막아서는 일들이 점점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온타리오 주정부는 200명 이상의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공지를 내보냈다. 그 숫자는 200명이 100명으로, 50명이 10명으로, 급기야 5명으로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다. 한 달이 채 안되는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 학교는 물론이고 각종 과외활동들도 모두 중단됐다. 3월 23일에는 비필수업종에 해당하는 비즈니스들은 모두 문을 닫으라는 행정명령도 내려졌다. 모든 국립, 주립 공원들도 추후 별도의 공지가 있을 때까지 폐쇄가 결정됐다. 캐나다 시민이 아닌 외국인의 공항 입국이 금지된 것은 물론이고 바로 맞닿아 있는 나라, 미국과 연결된 국경도 봉쇄된 지 오래다. 봉쇄, 폐쇄, 셧다운, 락다운, 닫고 닫고 또 닫는다.

지극히 당연하게 행했던 일상의 소소한 활동들도 대부분 금지됐다. 지난 주말, 산책 외에는 바람 쐴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을 데리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한 시간 거리의 호숫가에 들르는 일쯤이야 '거리두기'만 지킨다면 무방할 터였다. 그러나 불과 이 주 전까지만 해도 개방되어 있던 호숫가에서 우리를 맞은 건 '주민 외 출입금지, 집에 머무세요'라 쓰인 표지판과 바리케이트였다. 허탈히 발길을 돌리며 거듭 든 생각은 '우리 한국이 정말 대단하구나'였다. '사재기 없는 유일한 나라', '셧다운 없이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유일한'이란 말은 종종 한국을 수식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북미 사람들에게 한국이란 주로 김정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 같은 키워드와 연관되어 떠오르는 나라였다. 그러다가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란 노래가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본 동영상' 1위에 오르고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7주 연속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K-pop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딸아이는 캐나다, 이란, 중국, 르완다 등 국적도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BTS, 블랙핑크의 노래를 들으며 춤을 따라 하고 있다. 캐나다 할머니 한 분은 아카데미 시상식 다음 날 "어제 봤니? 너네 한국 영화 <기생충> 정말 대단하더라"라고 했다. 한 나라가 알려지는 데 있어 문화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가를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코로나19, 또다시 '어메이징 코리아' 

그러던 중 코로나19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바이러스가 그 무엇보다도 강력히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촉매가 될 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태가 악화되는 것과 발맞춰, 한국의 방역 모범사례를 다루는 각국의 기사들이 연일 도배 되고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의 시사토크쇼 <앤드류 마 쇼(Andrew Marr Show)>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코로나19 극복 비결로 개방성, 투명성, 국민들과의 완전한 정보 공유를 들었다. 그리고 지역차단이나 국가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민주적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또한 그 모든 것은 훌륭한 의료시스템과 강력한 IT 기반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세계 각국이 강경화 장관의 발언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한국식 방역모델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캐나다는 코로나19 사태가 뒤늦게 발발한 축에 속한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지인들의 안부를 염려하던 때에 캐나다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간 경험한 캐나다 의료체계에 비추어 봤을 때 검사역량이 한국에 크게 못 미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그 고요함을 긍정의 신호로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한국이라는 모범 선례가 있으니 그 길을 밟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는 했었나보다. 그러나 캐나다가 택한 것은 중국이나 유럽의 봉쇄와 폐쇄 같은 통제책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식 방역모델을 택하기에는 이미 확진자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에 비견할 만한 의료와 IT 기반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기인했으리라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추측이다. 한국이 하듯 하루에 2만 건 이상의 검사를 수행할 만한 진단능력, 그리고 확진자와 자가격리자의 동선을 모니터링 하기 위한 IT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 나라에서 이동권을 제한하고 각종 폐쇄령을 내리는 등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비단 캐나다뿐 아니라 최초 발원지인 중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미국 등 수많은 나라들이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각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권위주의로의 회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며, 한국의 민주적 방역정책과 시민의식이 더욱 돋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촘촘하고 세심한 긴급경제대응책
 
캐나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발표해온 긴급경제대응책들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발표해온 긴급경제대응책들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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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것은 캐나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발표해온 긴급경제대응책들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3월 12일 WHO(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고 캐나다에서도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자마자, 캐나다 정부는 개인의 재정상태를 개선하고 경제침체 심화를 막기 위한 정책들을 앞다투어 발표, 시행해오고 있다.

긴급실업수당을 기본으로, 각종 무이자 혹은 초저금리 대출 정책, 모기지 원금 및 이자 상환 연기, 자녀 양육수당 인상, 추가 세금 공제, 고용주를 위한 임금 및 임대료 지원, 고립감과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상담, 노숙인과 여성 성학대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지원에 이르기까지 소외되는 계층 없이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는 세심함이 드러난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직장인 A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온타리오주에 거주하고 있고 중간소득층에 속하며 아이가 둘 있다. 이 경우 A씨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일시급으로 지불하는 양육지원금: 200불*2(명)=400불, 주정부에서 지급하는 추가 양육수당: 5월부터 매달 약 550불, 긴급실업수당: 2000불*4(개월)=8000불, 일시급으로 주어지는 추가 세금공제액: 약 600불, 일시지급금 총 1000불(약 86만 5000원) 외에 4개월 간 매달 2550불(약 220만5000원)의 수입이 생기는 것이다. 기존에 지급되고 있던 양육수당도 있을 테니 당장 수입이 없다 해도 긴급사태를 헤쳐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불과 일주일여만에 새로운 정책들이 추가되거나 기존 정책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비필수업종 종사자들이 코로나19로 직업을 잃거나 수입이 감소했다면, 필수업종 종사자들은 위험을 무릅쓴 채 일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간과하지 않았다. 최전선에서 봉사하는 의료진들, 장기요양시설 근무자들, 식품 공급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이 결정되었고 최근 그 세부사항을 논의 중이다.

열흘 전 시행되기 시작한 긴급실업수당은 일 년 중 한시적으로 일하는 '계절 노동자', 일반 실업수당을 모두 소진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재취업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에게까지 그 대상이 확장됐다. 또한 실직하진 않았지만 한 달에 1000불 이하로 수입이 줄어든 이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넓혔다. 소상공인에게 무이자로 4만 불을 대출해주고 내후년 말까지 갚을 경우 1만 불을 면제해주는 정책 역시 수혜대상이 되지 못한 소규모 업체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그 폭을 확대했다.

엄청난 속도... 최소한의 생계 유지는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

캐나다 정부는 지원을 경험한 개인이나 각계각층 사회단체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수렴해서 그것을 정책에 재반영하고 신속히 발표 시행하고 있다. 더불어, 지원금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수령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가령, 추가 세금공제액이나 양육수당은 정부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개인 계좌로 자동 입금되고, 긴급실업수당 같은 경우는 인터넷 클릭 몇 번만으로 신청해서 수일 내로 받을 수 있는 '선지급 후심사'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대상과 관련한 논의가 엎치락뒤치락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정책결정이 지연되고 지급이 언제 이루어질지 막연한 상황을 떠올려볼 때 더욱 주목을 끄는 지점이다. 캐나다 시민들은 미증유의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생계 유지가 위협받는 일은 없으리라는 확신을 정부로부터 얻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감염병은 불행히도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나라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더 이상 그 나라만의 문제일 수는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경험이 다른 나라에 좋은 정보가 되는 것은 물론 다음 사태를 대비해 더 나은 국제 공조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강경화 장관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의 방역모델과 캐나다의 신속하고 배려 깊은 경제대응책,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최상의 시나리오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등장할지 모르는 그 어떤 바이러스 앞에서도 든든한 갑옷 입은 병사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중소도시 런던에서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 #방역모델, #캐나다, #경제대응책, #긴급재난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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