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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컬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함께 '로컬에서 길찾기'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과 출산율 감소로 로컬이 빠르게 활기를 잃어가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더해지면서 지금껏 우리가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로컬을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로컬에 희망은 있을까. 이런 물음에 답을 얻고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컬 전문가들을 만났다.[기자말]
최근 몇 년 사이 창업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5년을 버티는 곳은 10곳 가운데 3곳뿐이다. '2018년 기준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2018년 창업한 기업은 92만 개로 3년 연속 최대치를 넘어섰다. 특히 숙박·음식점업 등이 크게 늘었다. 신생기업이 1년 뒤에도 살아남을 확률(생존율)은 65%, 5년 생존율은 29.2%였다. 2017년에만 70만 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다.

생존율이 해마다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와 견주면 아직 턱없이 낮다. 경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5년 생존률은 평균 41.7%다. 프랑스가 48.2%로 가장 높고 영국(43.6%), 이탈리아(41.8%), 스페인(39.7%), 독일(38.6%)이 뒤를 잇는다.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다. 5년 생존율이 가장 높은 곳은 30.9%인 서울이고 가장 낮은 곳은 26.5%에 그친 광주다. 서울 말고도 부산(30.9%), 경기(30.0%), 대구(29.6%), 세종(29.5%) 등 5곳이 전국 평균(29.2%)보다 높고, 대전(26.9%), 충북(27.0%), 전남(27.3%), 인천(27.4%), 경남(27.6%)은 광주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최근 40~50대 음식·숙박업종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20~30대 자영업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20~30대 자영업자 수는 2018년 5월부터 12개월간 전년 동월 대비 4.4~22.8%가 늘었다. 반면 40~50대는 2018년 8월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 5월까지 10개월간 꾸준히 줄었다.

또 음식·숙박업종의 5년 생존율은 19.1%로 전체 업종 평균보다 10.1%p가 더 낮다. 그러니까 20~30대 청년이 비수도권, 그것도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 음식·숙박업에 뛰어들어 5년 넘게 버티려면 이 낮은 확률들을 모두 이겨내야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19년 전 산골마을 폐교에 터를 잡다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멘토로 불린다. 강원도 평창의 '브레드메밀'과 강릉의 '칠성조선소'를 발굴한 게 바로 이 대표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김덕수패사물놀이와 인연을 맺어 10년간 기획 일을 맡았다. 중간에 잠깐 영국으로 건너가 예술행정(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다 서른 살에는 음반기획사를 창업했다. 자우림, 노영심, 이적, 이승환 등의 공연을 기획하고 앨범을 제작했다. 비영리 법인에서 일을 시작해 벤처 기업가로서 큰 투자도 받아본 셈이다. 하는 일에 따라 일하는 곳도 대학로에서 강남 테헤란로로 바뀌었다.

승승장구하던 1999년, 이선철 대표는 이승환과 전국투어 공연을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겨우 30대 중반이었던 그는 그때부터 하던 일을 하나씩 정리해가면서 2002년 강원도 평창으로 건너왔다. 문을 닫은 지 3년 된 평창초등학교 노산분교를 빌려 작은 방 하나를 마련했다. 그리고 3년 뒤 노산분교는 '감자꽃스튜디오'로 거듭났다.
  
그가 평창에 온 지도 어느덧 19년째, 최근 로컬이 새롭게 주목을 받는 현실이 그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지난 4월 중순,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압구정동 가로수길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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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에서의 시작은 어땠나.
"뭔가 구체적이거나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가지고 간 건 아니었다. 요즘 표현으로 번 아웃(burn out) 상태였다. 자연친화적으로 살면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김덕수패사물놀이에서 일할 때 충남 부여에서 폐교를 활용해 사물놀이 학교를 만든 적도 있고, 경기도 양평에서는 전통악기 공방을 연 적도 있어서 폐교를 잘만 활용하면 꽤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엔 교실 하나를 살림방으로 고쳐서 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돈이 850만 원이었는데 500만 원으로 임대료 내고 남은 돈 300만 원으로 온돌 깔고 보일러 놓고 싱크대, 화장실 만들었더니 50만 원 남더라. 오랜만에 직접 밥도 지어 먹고 좋아하는 산도 매일 가고 진득하게 책도 읽고 가끔 지인이 찾아오면 같이 놀고 했다. 살다 보면 언젠가 귀인이 찾아와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 정말 귀인이 찾아왔나.
"어느 날 군청에서 전화가 왔다. 도지사를 아냐고 묻더라. 지역에 아는 사람이라곤 교육청 폐교 임대 담당자 한 명뿐이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도지사가 방문할 거라면서 청소나 좀 해놓으라고 했다. 알고 봤더니 도지사님이 방송에 출연했는데 마침 그 프로그램 관계자가 내 지인이었다. 내 얘기를 꺼내서 찾아오게 된 거였다.

며칠 뒤 정말로 찾아와서는, 강원도에 일반인이 한 명 들어와도 환영할 판인데 이렇게 문화 전문가가 와서 반갑다고 했다. 그러고는 기왕에 '이렇게 왔으니 이곳을 문화 공간으로 바꿔서 활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뭐 어차피 임대하고 쓰는 상황이라 그러겠다고 했다. 군청에서 학교를 매입하고 부랴부랴 예산을 세워서 리모델링을 도왔다. 2004년에 공사하고 이듬해에 '감자꽃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관했다."

- 그때부터 어떤 일들을 했나.
"문화예술 교육 관련 공모 사업에 지원해 지역의 초·중학교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치고, 고등학교 록밴드와 관악반 동아리도 지원했다. 주민들도 불러 모았다. 지역 문화센터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주변에 소문이 퍼지면서 문화계를 비롯해 교육계와 농촌 분야에도 알려졌다. 현장 탐방이나 강의를 들으러 찾아오는 팀들이 조금씩 늘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는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최근에는 직접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이 공간이 지역 플랫폼처럼 활용되도록 하고 있다. 누구나 기획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놓았더니 오히려 좋은 프로젝트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나에게 로컬은 현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감자꽃스튜디오 전경
 감자꽃스튜디오 전경
ⓒ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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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서 로컬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 건가.
"여러 가지로 열악하지만 그래도 자원과 환경을 잘 활용하면 좋은 점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재정자립도만 보면 공무원 월급 주기도 어려운 수준이라 중앙정부 보조 없이는 자생이 불가능하다. 이런 곳에서 과연 예술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다.

시장보다는 공공 영역에서 일이 많이 생겼다. 특히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나서는 중앙과 도청, 군청을 오가면서 문화 관련 프로젝트에 전방위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국제행사가 아니더라도 지역이 살아남아야 하니까 힘내서 뭔가 자꾸 일을 만들어 보고 각종 지원사업도 활용하자는 마음이 생겼다. 지역의 공공사업은 하면 할수록 회의가 들기도 했는데 내부 현실을 알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지역 상황에 너그러워지는 면도 생겼다. 요즘은 덤덤해져서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니 형편대로 살자는, 거의 득도한 수준이다.

누가 로컬에 대해 희망적인 얘기만 늘어놓으면 왜 어려운지 반론을 펴고, 반대로 너무 절망적이라는 투로 말하면 성공 사례를 들면서 옹호를 한다. 그래서 로컬 관련 자문이나 교육을 하면 가장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공감해 주기도 한다."

- 로컬에 대한 특별한 환상도 없겠다.
"나에게 로컬은 현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로컬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로컬을 자신의 마케팅 도구로 쓰거나 슬로건화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용어를 영어로 바꾸면 약간의 감성적, 낭만적 요소가 생기지 않나. 뭔가 될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창업 측면에서 로컬은 정말 어렵다. 근사한 디자인과 톡톡 튀는 콘텐츠만 장착하면 금방 사람들이 몰려와서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자기도 유명해질 것 같지만 막연한 그림과 설계도만 가지고 덤비는 경우가 정말 많다. 막상 현실에서 부딪힐 숨은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다. 설사 그런 곳이 있다 해도 군계일학 모델이거나 일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어렵게 만들어 놓아도 의외로 돈이 안 된다.

가령 관광 하나를 봐도 참신한 패키지를 만들면 보기에는 창의적이어서 경쟁력이 있을 것 같지만, 디테일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단가가 높아지고 대상은 좁아져서 남는 게 없다.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체험도 하며 주민과 관계를 맺는데 이런 게 다 비용과 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대중 관광은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구조화하고 싼 가격에 양적 마케팅 위주로 가니 지속되는 거다."
  
- 듣기에 따라서는 비관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로컬에 가망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냥 상황을 담백하고 냉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생각해야 현실성이 높아진다. 이런 생각이 오히려 로컬 지향적이다. '로컬만이 답이다'도 아니지만 섣불리 '지방소멸'을 외칠 수도 없다. 나도 로컬에서 살고 있는데 이율배반적이지 않겠나.

또 대체로 로컬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로컬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이른바 언터처블한(건드릴 수 없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스펙이나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유명 대학 나오고, 해외 유학 갔다 오고, 전직 교수에 대기업 임원에 기자까지 다양하다. 전화 한 통 하면 옛 지인들이 달려와 열심히 홍보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지역의 보이지 않는 시기와 견제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의욕이 꺾이고 때로는 충돌과 민원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로컬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어 독립적인 성과를 이루거나, 아니면 아예 그 (로컬의) 역학 관계 안으로 편입돼서 현지화되거나 둘 중 하나다. 출발점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이 다르다 보니 본질적으로 편입되는 게 쉽진 않다."

- 막상 현실에선 어떻게 할지 막막할 것 같다.
"청년이든 중장년층이든 어떤 식으로든 적정 수준의 로컬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동체의 일원으로 최소한의 소통과 교류를 하면서 살 수 있다. 너무 납작 엎드리면 동네 머슴 되기 딱 좋고, 왕년의 경력 내세워서 자존심만 부리면 외면당하기 쉽다. 그래서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한 게, 좀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지역 친화적 정무 감각'이다."
  
사기꾼 되지 말아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4월 10일 강원 지역 ‘로컬크리에이터 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4월 10일 강원 지역 ‘로컬크리에이터 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중소벤처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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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로 갈 때 또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나.
"지역에 따라 기질이라는 게 있다. 지역주민의 성향, 풍속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환경 특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와의 기질적 궁합을 고려하는 게 좋다. 로컬이라고 해도 강원도가 다르고, 충청도가 다르고,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가 다 다르다.

가끔 주민교육을 가면 그러한 기질 특성들이 많이 드러난다. 충청도에 가면 도대체 의중을 알 수 없지만 온건하고 유연하다. 경상도에 가면 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줄 알았는데 의리가 있고 정도 깊다. 전라도는 상대적으로 까칠하지만 진지하고 철학적이다.

이삿짐 싸 들고 로컬로 떠나기 전에 가능하면 계절을 골고루 겪으면서 잘 살피는 게 중요하다. 얼마 전에도 누군가가 땅을 알아본다기에 당장 집부터 짓지 말고 1년 정도 아파트나 원룸 구해서 살아보라고 했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어디에서 얼마간 살기 같은 기회들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다. 관광객이나 방문객과는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 로컬 크리에이터 발굴에 일가견이 있다고 들었다.
"갯벌에 숨은 진주를 찾아내는 무슨 놀라운 촉이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경력과 경험을 살려서 여러 가능성을 두루 살핀다. 콘텐츠의 독창성과 현실성을 함께 보고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 애티튜드, 매니지먼트 등등의 요소를 통합적으로 파악한다. 관계와 평판도 듣는다. 그러면 성공 확률을 높이면서 극단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제는 유명해진 평창 브레드메밀, 속초 칠성조선소, 강릉 더웨이브컴퍼니나 위크엔더스 등도 다 역량이 검증된 뛰어난 친구들이었다. 이들에게 어떤 계기를 마련해 주거나 적절한 파트너를 연결해주고, 꾸준히 홍보와 교류를 도운 정도다. 요즘 흔한 말로 거창한 컨설팅이나 엑셀러레이팅, 인큐베이팅을 한 건 아니다. 현장을 중시하고 늘 직접 찾아다니는 이른바 왕진 멘토링을 한다."

- 로컬에 대한 지원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걸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나.
"기본적으로는 선(先)시장 후(後)지원이라는 생각이다. 지원을 전제로 창업이나 사업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오래가기도 어렵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지원은 마중물 역할을 하거나 어떤 시점에서 고도화하는 데 잘 쓰면 된다. 어차피 지원하기로 한 돈이면 꼭 필요한 누군가가 받아서 잘 쓰는 건 맞다. 하지만 민간 투자를 받았건 세금으로 지원을 받았건 남의 돈 받아 쓸 때는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창업가에게 지원을 받아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잘 써서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 이상의 도덕성은 없다. 사업이 건전하게 지속되면 사회적 가치나 공의로운 역할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 지역을 한 번 근사하게 바꿔보겠습니다' 같은 거대 담론을 앞세우는 친구들을 보면 남의 돈 시원하게 잘 쓰고 날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구호가 앞선 회사치고 잘 되는 회사 못 봤다. '콘셉트가 앞서면 기능이 떨어진다'는 말도 많이 한다. 시장적 가치보다 공의적 가치에 더 뜻이 있으면 사업보다는 공익활동을 하면 된다. 기업가로 행세할 할 필요는 없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청년이라는 특권으로 돈을 받아 쓰고 아무 실적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면 다 범법자다. 사업의 성과는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보장할 순 없지만,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먹튀는 사기꾼이나 다름없다. 특히 요즘 투자와 후원의 중간 성격을 가진 지원이 많지 않나.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필사적으로 갚아야 하지만 임팩트 투자는 좋은 의도만 있으면 안 갚아도 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내가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하니 남의 돈에 대한 책임이 조금 느슨해도 된다는 인식은 대단히 위험하다."

로컬을 있는 그대로 봐야 성공할 수 있다
 
평창 브레드메밀 홈페이지
 평창 브레드메밀 홈페이지
ⓒ 브레드메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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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자생력을 갖추고 가려면 멘토와 마중물 같은 지원금 말고 또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나.
"자기 사업의 궁극적 시장을 아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잘 쓰는 표현 중에 '마을이 시장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있다.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처럼 농산물은 인접지역이 1차 소비시장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업은 로컬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도 소구하는 시장은 더 넓게 봐야 한다. 골목대장이나 동네 권력이 되겠다는 비전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진정한 로컬의 앵커나 리더가 되려면 마케팅 전략을 잘 짜야 한다. 마을에서 만들고 마을이 소비한다는 범주로는 한계가 있다. 흔히 벤치마킹하는 일본이나 유럽, 미국 같은 곳은 로컬의 체질 자체가 우리와는 다르다.

로컬을 기반으로 창업을 한다는 건, 지역을 기반으로 고유의 공간적 특성을 확보하고, 유무형의 잠재적 자원을 활용해 독창적인 상품이나 서비스 또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렇게 만든 잠재적 가치를 시장으로 끌어내 대내외적으로 알려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단 내수에서의 사랑이 입소문을 타고 타지로, 도시로, 해외로 넘쳐흘러 인지도가 생겨야 찾아오는 사람도 생긴다. 숙박업이나 외식업조차도 지역 사회와의 소통이나 기여가 함께 해야 지역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사랑을 줄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로컬이나 청년이라는 것 자체가 무기일 수는 없다. 로컬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창업, 그거 절대 쉽지 않다. 취업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취업보다 수백 배는 어려운 일이다. 실리콘밸리도 창의적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것 같지만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회사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뛰어난 사람들이 창업하는 거고, 그 안에서의 성공은 다시 바늘귀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어떤 경영학자는 청년 창업가를 전쟁터 학도병에 비유하기도 했다. 총검술 몇 개 익혀서 전쟁터에 투입되면 총알받이 하다가 쓰러지고, 전리품은 뒤에서 지켜보던 정규군이 챙긴다는 뜻이다. 교육·컨설팅받고 워크숍에서 단체사진 찍으면서 파이팅 외치면 마치 자신도 성공한 양 착각을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긍정적 마음을 가지되 머리는 냉철해야 한다.

로컬이니 크리에이터니 하는 근사한 영어 단어가 주는 낭만적 요소에만 현혹돼선 안 된다. 그저 '지방에 사는 감각 있는 젊은 자영업자'라는 정도의 인식이 정확하다. 크리에이터는 예술가의 감성에 장사꾼의 근성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고, 로컬은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한국의 지방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희소성이나 독점성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만큼 시장도 작고 변수는 많다. 그래서 청년들 만나면 어렵게 자영업 할 그 노력으로 그냥 취업하라고도 한다.

인터뷰 취지엔 안 맞을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니 꿈을 꾸지 말라는 게 아니라 현실적 상황을 기반으로 실질적 방식을 찾아보자는 뜻이다. 말이나 글로만이 아니라 실제 30여 년이 넘는 경력을 서울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해외를 넘나들며 산전수전 다 겪어온 평생 자영업자가 할 수 있는 말로 이해해 달라."

[기획 / 로컬에서 길찾기]
① "로컬에서 글로벌 기업 나와야 의미 있는 생태계 된다" http://omn.kr/1n5z1
② "로컬 크리에이터에겐 성장 만큼 균형도 중요" http://omn.kr/1n7a4
③ "로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물·콘텐츠 아니라 실력·열정 갖춘 운영자" http://omn.kr/1n818
④ "로컬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돈 버는 사람이 필요하다" http://omn.kr/1ndls
⑤ '순창 할미넴' 탄생시킨 로컬계 마이더스의 손 http://omn.kr/1nfgu

[참고한 글]
- 서영빈, "50대 자영업 무너지는데…20대 너도나도 '골목식당'", <뉴스1>, 2019.6.16.
- 김형수, "창업기업 5년 후 71.5% 폐업", <내일신문>, 2019.10.7.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윤찬영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입니다. 이 기사는 비로컬(http://belocal.kr), 시사N라이프,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로컬, #로컬 크리에이터, #지역소멸, #감자꽃스튜디오,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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