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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 5일이면 전국적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행사가 마련되고 놀이공원이 발디딜 틈 없이 붐비며 부모들도 어떤 선물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하는 한국과 달리, 캐나다에는 어린이날이 없다. 어머니 날도 아버지 날도 있는데 어째서 어린이날은 없는 걸까, 문득 떠오르는 의문에 매일이 어린이날인 듯 어린이들이 사회적인 보호와 관심 속에 지내고 있으니 그런 게 아닐까 라는 나름의 답을 내려본다. 어린이의 보호와 권익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사회적 기반으로써 충분히 기능하고 있고, 또 그것을 당연시하는 전반적인 시민의식이 제도를 굳건히 뒷받침하고 있다.

캐나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비교적 잘 갖추어진 나라다. 특히 어린이의 안전에 관해서라면 슬쩍 눈감아준다거나 부모 소관으로 떠넘기는 식의 관용(?)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이민 초기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스쿨버스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달리는 신호등'이라 불릴 만큼 엄격한 교통법규가 적용되는 스쿨버스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 알고있던 터였다. 스쿨버스가 빨간 불빛을 번쩍대며 멈춰서 있을 경우 차량 운전자는 이유불문 함께 멈춰서야 한다는 것.

그런데 스쿨버스는 나와 반대편 차선에 멈추어 있었다. 좌회전을 하는 건 괜찮겠지 생각하며 차를 돌리는 순간, 심장이 떨어질 듯 엄청난 클락션 소리와 성난 스쿨버스 운전자의 눈이 단박에 나의 착각을 일깨워주었다.

스쿨버스가 서 있을 때 함께 멈춰야 하는 건, 스쿨버스에서 내려 걸어가거나 길을 건너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배려이니 당연히 반대편 차선의 차량도 멈춰야 했다. 스쿨버스 운전자가 굉음과 가재미 눈을 발사하는 선에서 그쳤기에 망정이지, 400불(약 35만 원)에서 2000불(약 174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낼 뻔했다. 두 번째 위반부터는 무려 1000불(약 87만 원)에서 4000불(348만 원)까지의 벌금 혹은 징역형까지도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스쿨버스와 관련한 교통법규 외에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과속에 대해서도 벌금이 무겁다. 알버타 주의 경우 196불(약 17만 원)에서 최대 483불(약 42만 원)까지의 벌금이 부과되며 다른 주들도 비슷하다. 또, 아이가 생기면 준비해야 할 물건들이 많이 있지만 반드시 출산 전에 준비해서 병원에 들고 가야 하는 품목으로 카시트가 있다. 카시트 없이는 퇴원도 시켜주지 않으니, 아이와 함께 병원에 묶여있고 싶지 않다면 기저귀나 분유보다 카시트를 먼저 준비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초기에 어린이 보호 법규를 제대로 알지 못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그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령 괌에서 승용차 안에 어린 자녀 둘을 두고 장을 보러 간 한국인 부부가 아동학대 혐의로 연행된 일이 보도되었다. 잠시라도 차 안에 아이들만 두고 자리를 비워서는 안된다는 것은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지인은 마트 주차장에서 아이를 차에 태워놓고 잠시 쇼핑카트를 돌려놓으러 갔다 왔을 뿐인데, 그 사이 아이를 혼자 버려뒀다고 오해한 사람에게 한 소리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집에도 아이들을 보호자 없이 두어서는 안된다. '아이가 자는 사이 살짝 필요한 것만 사와야지'와 같은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잠에서 깬 아이가 울며 집밖에 나온 것을 보고 이웃이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지인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 사건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아이들에 대해 매년 한번씩 치과검진을 실시한다. 그때 아이의 충치가 발견되었는데 어차피 곧 빠질 이라는 생각에 그냥 두었다고 했다. 그것이 아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은 이른바 아동학대에 해당할 줄을 어찌 알았을까. 충치로 고통받는 아이를 치과에 데려가지 않은 부모는 범법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방치, 정서적 피해, 가정폭력에의 노출'과 같은 다섯 가지 아동학대의 유형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학대행위의 예들을 꼼꼼히 정리해놓았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폭력의 형태인 손이나 주먹으로 때리기, 발로 차기, 던지기, 밀기, 물건으로 치기에서부터 강하게 흔들기, 찌르기, 잡아채기, 물기 등은 물론이고 협박, 모욕적인 행동, 감정적 무시까지도 학대행위에 속한다. 또한 보호자에게 가해진 상처나 멍을 보게 하거나 폭력 일화를 듣게 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아동학대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라도 신고해야 하며 특히 교사나 상담사, 의사 등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신고할 의무가 있다. 경찰이나 아동가족국 사무실에 신고를 하면 사안의 경중에 따라 접근금지 명령, 교육이나 상담 조치, 영구분리 명령 등이 내려지게 된다.

아동학대는 아이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고소취하가 불가할 만큼 심각하게 다루어진다. 아동학대가 하도 예민한 사안이다보니 어쩌다 아이 몸에 알지 못할 멍이라도 들면 "학교 가서 엄마가 그랬다고 하면 안돼. 엄마 잡혀간다" 하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한밤중에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요란한 소리를 내며 휴대폰이 울려댄 적이 있다. '엠버 경보(Ember Alert)'가 울린 것인데, 1996년 미국 텍사스에서 엠버라는 9살짜리 여아가 유괴 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아이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경보음이다. 유괴된 아이와 용의자의 신상정보를 발송해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기 위한 것이다. 한참 단잠을 자고 있을 때 무척이나 심란하게 울리는 엠버 경보를 받게 되면 순간 잠이 홀딱 깨버리지만 그렇다고 성가시진 않다. 경보를 받은 누군가의 눈에 용의자가 띄기만을 바랄 뿐이다.

4월 7일 퀘백 주지사 프랑수와 리걸트는 기자브리핑 중 7살 소녀의 질문에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필수 업종 가게는 모두 문을 닫는다는 발표에 걱정이 생긴 라파엘이란 아이가 동영상을 통해 질문을 보낸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이의 요정(Tooth Fairy, 아이들의 빠진 이를 가져가는 대신 동전을 놓고 간다는 상상속의 존재)은 돌아다니나요?" 이에 주지사는 "이의 요정이 하는 일은 분명히 필수적인 거예요. 걱정말아요" 라는 말로 라파엘을 안심시켜주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캐나다 사람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예쁜 이야기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동을 학대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심한 법적제도를 마련해 철저히 시행하고, 시민들은 나의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곤경에 처한 아이가 없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때로는 문화의 차이로 인해 유난 떠는 게 아닌가 싶은 경우도 간혹 있다. 또한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이의 양육과 보호는 부모만의 의무가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사회 저간의 인식에 믿음이 간다.

부모가 되고 보니 어린이집 아동폭력,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어린이차량 사고, 아동학대로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쓰라리다. 우리나라도 더욱 촘촘한 제도 마련과 인식의 개선으로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태그:#어린이날, #캐나다, #아동폭력, #어린이 보호, #어린이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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