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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최승우 씨가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틀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이틀째 국회 고공농성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최승우 씨가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틀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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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어린이날이었잖아요. 기쁜 날인데, 우리는 어린 시절 그런 축복도 못 받고 구타 당하고 노역하고 성폭행 당했잖아요... 그래서 어제 올라갔어요. 게다가 이제 20대 국회가 한 달도 안 남았어요. 과거사법이 또다시 다음 국회로 넘어가면 우린 또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51)씨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 지붕에 올라 고공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최씨가 국회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 농성을 한 지 꼭 909일 되는 날이었다. 최씨는 앞서 지난 2019년 11월에도 국회 앞 지하철역 출구 지붕에서 단식 농성을 하다 24일만에 병원에 이송됐다.

지붕 위의 최씨는 농성 2일차인 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과거사법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에 농성에 돌입했다"라고 밝혔다.

그간 최씨와 피해 생존자들의 노력으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의 법적 근거가 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이 지난 2019년 10월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를 어렵게 통과했지만, 이후 미래통합당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에 가로막혀 있는 상태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6년 전인 2014년부터지만, 최씨는 19대 국회가 종료된 2016년에도 별다른 진척도 없이 특별법이 폐기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20대 국회는 그렇게 흘려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면 최씨는 길 위에서 빈 손으로 3번째 국회를 맞게 된다.
 
"어떻게 행안위 통과시켰는데... 또 기약없이 연기돼선 안돼"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최승우 씨가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틀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이틀째 국회 고공농성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최승우 씨가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틀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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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지붕위로 올라갔다.
"노숙 농성한 지 2년 6개월 됐다. 2014년부터 그렇게 소리를 쳐도 국회가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해에 고공 단식을 해도 안 됐고, 뭘 해도 안 됐다. 농성이 끝나고 여야가 다들 합의하겠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미뤄왔다. 미래통합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젠 다 못 믿겠다.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당 대표 시절 우리들과 만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이 한 마디만 언급해줘도 충분히 통과될 수 있을 텐데 말이 없다.

이대로 과거사법을 또 21대 국회로 넘긴다면 그건 우리에게 적어도 2년은 더 기다리란 소리밖에 안 된다. 국회가 열리고 상임위원회를 새로 꾸리고 하다 보면 원래 있던 법안은 또 흐지부지 된다. 우리가 이번에 얼마나 힘들게 행안위 통과까지 시켜놨는데... 위원회 구성이 바뀌면 우린 다시 의원실에 읍소하러 다녀야 한다. 게다가 내년은 대선 국면이다. 국회 열기도 어렵다고 핑계 댈 게 뻔하다. 한 두 번 당해본 게 아니다."
 
- 20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통합당의 반대 때문에 처리가 힘들다고 해왔다.

"지난 주에도 통합당 관계자에게 전화를 돌리는데 그 따위 전화하지 말라면서 냉정하게 끊더라. 너무 화가 났다. 농성 결심에 결정적 계기였다."

-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일단 20대 국회 내에 과거사법을 처리해야 한다. 본회의가 열린다면 다음주가 마지막일 수 있다. 일주일 남은 거다. 절박하다. 뿐만 아니라 당정청이 21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 공식적으로 입장을 포명해야 한다. 과거사법이 통과돼도 진상 조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할 거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시민단체, 국회가 한 몸이 돼 진상 규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때까지 단식하겠다."
  
- 몸은 괜찮나.
"괜찮다. 가볍다. 저 아래 국회 앞 농성 텐트에 비하면 여기 지붕은 호텔이다. 한 100평은 되는 것 같다."

- 소지품은.
"텐트와 베터리 충전기가 전부다. 물도 좀 있고..."

- 밤에 춥진 않나.
"한겨울에도 텐트에서 지냈는데... 춥긴하지만 핫팩과 물을 확보했다. 국회 방호 직원들에겐 미안하기도 하다. 나 때문에 신경 써야 하니... 혹여 나 때문에 문책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이불과 베개, 깔개도 올려 보내줬다. 국회도 개개인으로 보면 다들 안타까워 해주고 많이 도와준다. 그들에게 고맙다. 하지만 문제는 당리당략이다. 너무 답답하다."

이제야 움직인 민주당 "마음만 먹으면 처리 가능... 야당, 협조하라"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최승우 씨가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틀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이틀째 국회 고공농성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최승우 씨가 과거사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틀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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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농성이 시작되자 민주당은 이날 과거사법을 20대 국회 내에 처리하자고 미래통합당에 촉구했다.

임기 종료를 앞둔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과제를 많이 남겨놓고 (원내대표직을)마무리하게 됐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가 국회 농성도 시작했고 4.3 특별법을 비롯한 과거사법들을 마무리 하지 못한 점도 매우 아쉽다"라며 "여야 신임 원내대표단이 선출되는 대로 곧바로 다음 주라도 본회의를 열어 20대 국회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많은 법을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주민 최고위원도 "과거사법 개정안은 형제복지원 사건 등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며 "야당의 전향적인 협조를 부탁 드린다"라고 촉구했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피해자분께서 국회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라며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 차원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당장 전담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야 하고, 광범위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공권력이 개입했는지, 어떻게 개입했는지, 공무원의 위법성과 유착은 없었는지도 규명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대 국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은 원내대표 선거가 끝나는 즉시 본회의를 여는 데 합의하라"고 촉구했다.

설훈 최고위원도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농성은 국회가 정의를 세우고 민생을 돌보라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부당한 권력에 의한 피해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20대 국회에서 과거사법 개정안만큼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인순 최고위원 또한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났던 학대나 폭행, 성폭력, 강제 구금 등 인권유린의 참상은 이미 국민들이 많이 알고 있고 피해자 증언을 통해 상당한 실체가 드러났다"면서 "이젠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해당 상임위를 통과했고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과거사법은 마음만 먹고 합의만 되면 바로 처리할 수 있다. 이 법안은 꼭 처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시 북구 주례동에서 운영되던 복지시설이었지만 실제로는 거리의 부랑인들을 감금해 구타, 학대, 성폭행, 인권유린, 강제 노역을 자행하던 강제수용소였다. 12년간 형제복지원에 강제 입소된 사람은 3000 여명에 달하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이다. 박인근 당시 형제복지원장은 수용자들을 이용해 10억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횡령했다.

태그:#최승우, #형제복지원, #과거사법, #민주당,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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