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프로야구 개막일인 5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4회 초 1사 상황에서 타석에 선 NC 나성범이 솔로홈런을 치고 있다.

2020 프로야구 개막일인 5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4회 초 1사 상황에서 타석에 선 NC 나성범이 솔로홈런을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팬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찬호나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선발 경기를 보기 위해 꼭두새벽 일어나거나 뜬눈으로 밤을 지샌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5일에는 미국의 야구팬들이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KBO리그 개막전을 보기 위해 밤샘을 불사하는 재미 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야구와 축구를 비롯한 전 세계 프로 스포츠들이 '올스톱'됐고 스포츠를 유난히 좋아하는 미국인들에게 야구가 없는 밤은 큰 고통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스포츠 전문 방송국 ESPN에서는 모범적인 방역으로 시즌 개막이 결정된 KBO리그의 중계권을 구입했고 미국 야구팬들은 무료한 밤을 달래기 위해 TV앞으로 모여 들었다. 바야흐로 한-미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가 아닌 KBO리그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5일 개막전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 삼성이 NC에게 0-4로 무기력하게 패했지만 NC에서 3개의 홈런포가 나오며 야구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미국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거의 보기 힘든 한국 야구만의 독특한 액션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경쾌한 스윙 후 배트를 강하게 튕겨 던지는 '배트 플립'이 그것이다.

양준혁-김재현-홍성흔-박병호로 이어지는 '배트 플립 장인'들
 
 지난 2009년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한화 이글스전에서 삼성 양준혁이 1회말 2사 후 한화 투수 안영명을 상대로 역대 최다홈런(340개) 타이기록을 세우는 1점짜리 홈런을 터트린 뒤 타구를 바라보며 뛰어나가고 있다.

지난 2009년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한화 이글스전에서 삼성 양준혁이 1회말 2사 후 한화 투수 안영명을 상대로 역대 최다홈런(340개) 타이기록을 세우는 1점짜리 홈런을 터트린 뒤 타구를 바라보며 뛰어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배트 플립은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거의 볼 수 없었다. 1990년대 중반,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면서 타격 후 방망이를 던지는 타자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시기 KBO리그에서 배트 플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선구자(?)는 바로 '만세타법'으로 유명했던 '양신' 양준혁(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무시무시한 스윙스피드를 자랑하던 '캐넌' 김재현(SPOTV 해설위원)이었다.

양준혁과 김재현 모두 현역 시절 '배트 플립의 장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두 선수의 타격 스타일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통산 351홈런을 자랑하던 '거포' 양준혁은 양손으로 어퍼스윙을 하기 때문에 스윙 후 자연스럽게 방망이를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중장거리 타자였던 김재현은 빠른 배트스피드로 타구를 날린 후 주루플레이를 이어가기 위해 연결동작으로 방망이를 던졌다. 

양준혁과 김재현의 자리를 이어받은 선수는 포수로 2번, 지명타자로 4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홍성흔(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팀 필드코치)이었다. 홍성흔 역시 양준혁처럼 기본적으로 스윙이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윙 후 방망이를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홍성흔은 워낙 쇼맨십이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에 관중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홈런성 타구를 날린 후 한 박자 느리게 배트를 던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4년 연속 홈런왕(2012~2015년)과 함께 홈런왕 5회에 빛나는 박병호(키움 히어로즈)는 현존하는 최고의 '배트 플립 전문가'다. 좌타자의 경우 우측, 우타자의 경우 좌측에 홈런타구가 집중돼 있는 다른 타자들과 달리 박병호는 유난히 가운데 담장으로 넘어가는 홈런이 많다. 가운데 담장으로 엄청난 타구를 날린 후 시크하게 방망이를 던지는 박병호는 어느새 2010년대를 대표하는 KBO리그 홈런왕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반면에 KBO리그 통산 467홈런, 한-일 프로야구 통산 626홈런을 기록한 '국민타자' 이승엽은 현역 시절 배트 플립을 거의 하지 않는 타자로 유명했다. 이승엽은 자신에게 홈런을 맞고 의기소침해 있는 투수를 배려하기 위해 언제나 홈런을 친 후에도 배트 플립이나 과한 액션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그라운드를 돌았다(물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4강전 결승 홈런 때는 두 팔을 번쩍 들며 기쁨을 만끽했다).

야구팬들을 열광시켰던 결정적인 배트 플립 'BEST 3'

타자들은 배트 플립이 스윙 후 팔로 스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후속동작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배트 플립은 워낙 동작이 크고 화려하기 때문에 투수나 상대를 향한 도발로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KBO리그에서도 암묵적으로 과도한 배트 플립은 지양하는 편이다. 하지만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배트 플립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 중에는 야구팬들을 열광시키거나 폭소하게 만든 배트 플립도 종종 생겼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통쾌했던 배트 플립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본선 2라운드 일본전에서 나왔다. 7회까지 0-1로 뒤져 있던 한국은 8회 1사 2,3루 기회에서 이종범(주니치 드래곤즈 2군 연수코치)이 일본 최고 마무리 투수였던 후지카와 큐지(한신 타이거즈)를 상대로 좌중간을 가르는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때렸다. 당시 이종범은 벼락같은 스윙 후 빠른 배트 플립을 선보였는데 주루플레이 대신 세리머니에 집중하다가 3루에서 아웃됐다.

비록 안타가 되진 못했지만 2015년 제1회 프리미어12 일본과의 4강전에서 나온 오재원(두산 베어스)의 배트 플립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괴물투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마운드를 내려 간 후 9회 초 공격에서 대거 4점을 뽑으며 역전에 성공한 한국은 이어진 2가 만루 기회에서 9회 선두타자로 나와 안타를 친 오재원이 다시 한번 타석에 섰다.

오재원은 2볼1스트라이크의 볼카운트에서 일본의 4번째 투수 마쓰이 히로토시의 4구째를 강하게 받아친 후 홈런을 직감한 듯 방망이를 크게 내던졌다. 물론 오재원의 타구는 일본의 중견수 아키야마 쇼고(신시내티 레즈)의 호수비에 걸리면서 홈런도, 적시타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오재원의 당당한 표정과 통쾌한 배트 플립은 도쿄돔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들을 절망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반면에 롯데 자이언츠의 전준우는 성급한 배트 플립으로 단번에 유명세를 탔다. 2013년 5월 NC와의 홈경기에서 이민호의 공을 강하게 잡아당긴 전준우는 홈런임을 직감하고 멋진 배트 플립과 함께 관중석을 향해 손을 들며 포즈까지 취했다. 하지만 타구는 펜스 앞에서 잡혔고 전준우의 설레발은 야구팬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전준우의 플레이는 얼마 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됐고 전준우는 하루 아침에 '월드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 야구팬들까지 열광시키는 'K-배트 플립'의 매력

이처럼 KBO리그에서는 배트 플립이 하나의 볼거리 정도로 가볍게 여겨 지는데 비해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라운드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플레이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언론에서는 배트 플립에 대한 두 나라의 정서 차이를 비교하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자신의 홈런 타구를 오래 응시하거나 투수를 노려 보거나 팔로 스루가 끝난 후 배트를 세게 던지는 행동을 했을 경우엔 다음 타석에서 빈볼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로 2010년, 2011년 메이저리그 홈런왕에 올랐던 호세 바티스타는 배트 플립 이후 끔찍한 선수생활 말년을 경험했다. 2015년에 있던 배트 플립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 감정이 좋지 않았던 바티스타는 2016년 5월 텍사스전에서 14살 어린 루그네드 오도어와 신경전 끝에 난투극을 벌였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됐던 바티스타는 난투극 이후 공갈포로 전락했고 2018 시즌을 끝으로 빅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메이저리그에서는 철저하게 금기시되고 있는 배트 플립이기에 미국 야구팬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배트 플립을 구사하는 KBO리그 선수들이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미국 야구팬들은 SNS와 야구 커뮤니티 등을 통해 모창민의 능숙한 배트 플립을 칭찬하거나 2020 시즌 1호 홈런을 터트리고도 배트 플립을 하지 않았던 김현수(LG 트윈스)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한국 선수들의 배트 플립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물론 한국 선수들이 미국 야구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트 플립을 남발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한국에서는 자연스런 문화라지만 투수 입장에서는 분명 기분이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는 몸 맞는 공 이후 투수가 모자를 벗어 사과하고 타자도 괜찮다고 손짓해주는 한국야구의 수준 높은 예의를 미국팬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굳이 배트 플립이 아니더라도 한국 야구에는 메이저리그에 없는 독창적인 매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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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배트 플립 양준혁 박병호 전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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