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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회원에세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여성들Ⅱ] 코로나 바이러스가 보여준 낯설지만 익숙한 ‘돌봄’과 마주하기
 [릴레이 회원에세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여성들Ⅱ] 코로나 바이러스가 보여준 낯설지만 익숙한 ‘돌봄’과 마주하기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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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돌봄'은 다른 여성에게 빚진 삶을 살게 했고, 코로나 이후에는 빚의 액수가 배로 증가했다.

난 재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재난급의 쫄깃함과 긴급한 순간에도 다음을 기민하게 생각해내고 시간을 분 단위로도 사용해야 하는, 마이크로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워킹맘의 삶이 6년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삶을 엄청나게 바꿨다고 하지만,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닥 바뀐 것도 없는 것 같다. 워킹맘의 '돌봄'은 다른 여성에게 계속 빚진 삶을 살게 했고, 코로나 이후에는 빚의 액수가 배로 증가하게 했을 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항상 '돌봄'의 영역은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 상황에서 그 취약성이 더 드러날 뿐 사회에서 '게토'의 영역과도 같지 않은가?

그나마 난 전생에 나라를 열 번 구한 여자만 쓸 수 있다는 친정엄마의 찬스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독박육아를 하는 분들의 어려움은 말해 뭐하랴. 내가 접한 '웃픈' 에피소드를 통해 현 상황을 이해하는 정도로 이 글을 그냥 읽어주면 좋겠다.

왜 여성은 항상 돌봄 앞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낄까

2월 3주부터 시작된 유치원 방학으로 지난해 간암 3기로 간의 70%를 절제한 아이의 고모(이하 '언니'라 칭하겠다. 한 번도 가족관계 호칭인 '형님'이라 불러본 적이 없는 남편의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관리를 꾸준히 해야 하는 언니에게 도움을 받아 미안하고 고맙고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육아기 여성은 분열적일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육아 빚쟁이는 코로나19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심각으로 격상되고 3주가 되는 시점에는 워킹맘을 끼워주고 정보까지 제공해주는 천사 같은 엄마들이 방역을 마친 키즈카페를 통으로 빌려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엄마 중에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일을 그만둔 엄마, 남편은 해외에서 일하고 본인은 워킹맘이라 긴급돌봄을 신청하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눈물을 흘린 엄마도 있었다. 왜 항상 여성은 돌봄 앞에서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가 생각했다.

여성은 사적 공간에서도 엄마라는 직무를 맡아
노동이 가중되는 구조 아래에 있다


SNS에 올라오는 엄마들의 다양한 홈스쿨링은 재택도 못 하는 나를 조금 위축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업맘 역시 삼시세끼를 챙기며 아이들과 엄가다(엄마 노가다라는 뜻으로 인터넷 맘카페에 올라온 학습지를 프린트하고 코팅하여 아이들 놀이 도구를 만드는 것)까지하며 지치고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은 사적 공간에서도 엄마라는 직무를 맡아 노동이 가중되는 구조를 아래에 있다.

코로나로 재택 업무를 하는 아빠들이 육아를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엄마들의 고충을 100분의 1이라도 느껴봤으면. 이 과정에서 당사자성이 반영된 성평등한 돌봄 정책이 훨씬 더 설득력을 얻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오! 이번 기회에 재택 업무를 하는 아빠들이 겪은 육아기에 대한 내용을 아카이빙해도 좋겠다.

코로나로 멈춘 돌봄의 시곗바늘, 같이 돌린다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유치원 가기를 즐거워하지 않은 딸이 마스크를 끼고 온종일 있는 것이 맘에 걸리고, 아이를 돌보는 언니가 한두 시간만이라도 쉴 수 있게 알아본 아이 돌봄 서비스는 진입 장벽이 매우 높았고, 민간 기업 아이 돌봄 서비스는 세 번이나 선생님께 바람을 맞았다. 좌절된 시도로 인해 언니를 6주나 잡아두게 되었다.

아직도 개학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다시 친정엄마 찬스로 육아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연세가 있으신 엄마도 걱정, 아이의 돌봄도 걱정인 나는 지금도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원고는 주겠다고 말한 기한은 벌써 넘어갔고, 밤은 깊어만 간다.

돌봄으로 얻어지는 비언어적, 언어적 의사소통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기회를 이제는 여성이 아닌 남성들에게 양도하자. 양도하는데 드는 나의 속 터짐의 양도세는 인내심으로 대신하자.

코로나로 멈춘 돌봄의 시곗바늘을 같이 돌린다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글/써비(민우회원)]

태그:#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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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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