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6일은 공교롭게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역 체계가 완화된 첫날이다. 이후 홍대와 신촌 등지에서도 확진 사례가 잇따르면서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급기야 일각에서는 생활방역체계를 사회적 거리두기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에서 입국했거나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은 반드시 14일간 자가 격리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자가 격리됐거나 격리 중인 사람은 총 23만여 명에 달한다. 16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14일간의 고독한 싸움' 편에서는 조용히 사투를 벌여온 자가 격리자들을 밀착 취재하고,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우리의 자가 격리 시스템을 살펴봤다.

14일간의 사투, 자가 격리자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최성숙씨의 집이다. 누구든 이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문밖에서 손과 전신을 소독해야 하고, 이후 거실에 들어서기까지 총 네 단계에 걸친 소독 과정을 밟아야 한다. 흡사 공공방역시설을 연상케 할 정도로 촘촘한 방역이었다.

부직포로 양쪽 통로를 막은 방은 일본에서 돌아온 막내아들 박태효씨가 지내는 공간이다. 박씨는 2주 전 일본에서 입국하여 자가격리 대상자가 됐다. 가족들은 부직포를 구입하여 아들과 동선이 겹칠 만한 곳을 일일이 차단시켰다. 아들의 자가 격리 기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봐 자신도 집밖으로 일절 나가지 않았다는 최성숙씨. 그녀는 "우리 애가 집에 오니까 나 나름의 무게감이 생겼다"며 "나도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의무 격리자는 아니지만 혹시라도 무증상 감염이라는 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SBS <뉴스토리> ‘14일간의 고독한 싸움’ 편

SBS <뉴스토리> ‘14일간의 고독한 싸움’ 편 ⓒ SBS

 
대전에 사는 간호사 김성덕씨. 그녀는 지난 3월, 대구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김씨는 봉사 활동을 마친 뒤 전북 장수에 위치한 본가 근처 폐가에서 남몰래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잠복기를 감안하여 스스로 격리 생활을 택한 것이다. 김씨는 "감염됐는지도 모른 채 집에 들어가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또 병원까지 큰 피해가 있을 것 같아서 저희 본가 부근의 빈집을 택했다"고 말한다.

외진 산골 폐가에서 홀로 지내온 그녀를 가장 두렵게 한 건 무서움 따위가 아니었다. 남편과 세 자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2주만 견디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던 자가 격리, 하지만 복귀를 불과 하루 남겨두고 오한과 기침이 그녀를 덮쳤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김씨는 아직까지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 의무 격리 대상이 아니었던 그녀는 굳이 왜 이런 고행을 택한 것일까?

김씨는 "'굳이'가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저로 인해 제 이웃들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자가 격리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그때 제가 친구를 만나러 갔거나 먹고 싶은 것을 사러 편의점을 가거나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고 말한다.

자가 격리 대상자가 아닌데도 자기보다 가족 그리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스스로 가족과 떨어져 외딴곳에서 지낸 덕분에 지역사회로의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SBS <뉴스토리> ‘14일간의 고독한 싸움’ 편

SBS <뉴스토리> ‘14일간의 고독한 싸움’ 편 ⓒ SBS

 
지금까지 자가 격리됐던 누적 인원은 23만8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격리 지침을 위반한 사람은 384명이다. 자가 격리 도중 사우나에 가거나 카페와 식당을 활보하는 등 다양한 사례들이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자기중심적 소망 사고를 가지기 때문에 '뭐 잠깐 나갔다 와도 큰 문제 생기겠어?' '나 하나쯤이야'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이런 것들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 급히 귀국한 김하영씨. 그녀 역시 2주간 자가격리 생활을 했다. 그녀는 캐나다를 떠나 자가 격리를 마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귀국하며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녀는 "텅텅 빈 채 손세정제만 갖춰져 있던 캐나다와 미국 공항에 비해 한국의 공항은 달랐다"며 "인천공항은 눈을 돌리면 다 소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또 뿌리고 이런 걸 보고 많이 놀랐다. 되게 자랑스러웠다"고 말한다.

자가 격리자에게는 격리 첫날, 상자와 쇼핑백 하나가 전달된다. 그 안에는 마스크와 소독제, 격리생활지침서, 그리고 갖가지 식료품 등이 들어 있다. 이를 받아 든 김씨는 우리 정부와 지자체의 세심한 배려에 다시 한 번 놀라는 눈치였다.

김씨는 힘겨운 14일간의 사투를 끝냈다. 그러자 정부에서 또 하나의 상자를 보내왔다. 상자 안에는 '잘 견뎌주어 고맙다'는 글귀와 함께 유기농 채소와 과일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이 영상을 올리자 이를 본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그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보았고 IT강국이라는 사실까지는 알았지만, 의료 쪽으로도 강국이라는 말은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한국은 이런데 캐나다는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반응"이었다고 말한다.

해외에서도 엄지척, 우리의 자가 격리 시스템

그렇다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자가 격리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걸까? 취재진이 찾은 곳은 서울 송파구 보건소. 코로나19 상황센터에는 지금까지 송파구에서 발생한 자가 격리자 2700여 명의 상황이 관리되고 있었다. 자가 격리 대상자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담당 공무원이 배정된다. 송파구청과 주민센터 공무원 천여 명이 1인당 자가 격리자 한두 명씩을 맡아 관리하는 방식이다. 담당 공무원은 앱에 올라온 자가 격리자의 체온과 건강상태를 매일 확인하고, 하루 두 차례 전화를 걸어 이들이 집에 있는지를 점검한다.

자가 격리자로 지정될 경우 지침서와 함께 격리 물품을 받게 되며, 다음날 집 근처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된다. 정부는 자가 격리자에게 10만 원의 현금 또는 생필품을 지원해주는데, 공무원들이 격리자가 원하는 것을 일일이 전화로 물어보고 장을 본 뒤 문 앞까지 이를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제공해준다.
 
 SBS <뉴스토리> ‘14일간의 고독한 싸움’ 편

SBS <뉴스토리> ‘14일간의 고독한 싸움’ 편 ⓒ SBS

 
체계화된 자가 격리 시스템과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일부 이탈자들을 제외한 자가 격리자들의 자발적인 협조. 방송은 우리를 방역 선도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소로 앞서의 것들을 주저 없이 꼽는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 기모란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은 이것을 운영하지 않고 환자만 찾아 치료하니까 접촉자가 환자가 되고 그 사람 주변이 또 환자가 되고 계속 못 막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가 격리자 대부분은 그동안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코로나19와 맞서 싸워온 덕분에 지역사회 감염이 현저히 줄어들게 됐다. 해외에서 엄지척하는 우리 방역 당국의 자가 격리 시스템도 이러한 결과에 한 몫 단단히 거드는 요소다.

이런 가운데 불거진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 사태. 이는 개인의 방심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지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이자, 생활방역체계 전환 이후 다소 느슨해진 사회 분위기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자칫 감염병의 대유행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마스크 착용과 개인위생, 거리두기 등 생활 방역의 자발적 참여에 다시금 고삐를 죄어야 할 시기이다.
자가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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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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