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미의 관심사>의 한 장면.

영화 <초미의 관심사>의 한 장면. ⓒ 레진스튜디오


주한미군의 역사가 깃든 곳, 일제강점기 일본인 전용 숙소가 있던 곳. 그만큼 이태원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아픔과 다양성이 공존한 공간이다. 여전히 지금도 많은 외국인과 유흥을 즐기려는 내국인이 이태원을 찾고, 그만큼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상권이 잘 발달해 있다.

엄연히 이태원도 주민이 있는 곳이다. 배우 조민수, 그리고 가수 치타(아래 김은영)가 주연을 맡은 영화 <초미의 관심사>는 이태원에서 나고 자라, 그곳을 맴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것도 꽤 유쾌하게 말이다. 

두 여성은 모녀 관계다. 딸을 버렸거나 혹은 놓아주었거나, 아님 엄마에게 버림받았거나 스스로 가출해 자신의 삶을 선택했거나. 서로를 미워하는 것 같지만 깊은 곳엔 그 누구보다 그리워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배다른 둘째 딸이 행방불명 됐다는 소식에 오랜 시간 소원했던 첫째 딸 순덕(김은영)을 찾아온 엄마(조민수)는 다짜고짜 윽박부터 지른다. 

영화는 이런 모녀 사이에 내재한 불안감과 불만 의식을 연료 삼아 사건과 여러 인물을 등장시킨다. 십 대에 싱글맘이 됐고, 그 딸을 낳기 위해 가수의 길을 포기한 엄마는 철없어 보이지만 매사에 따뜻한 시선을 두는 전형적인 외강내유형 인간이다. 엄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이태원에서 블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꽤 잘나가는 재즈 뮤지션이 된 순덕 역시 그렇다. 

강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여리고 또 서로의 보듬기가 시급히 필요한 모녀다. <초미의 관심사>의 가장 큰 축은 바로 결코 화해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이 몇몇 사건을 겪으면서 극적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따라서 가족의 해체, 가족이란 단어의 재정의가 화두인 요즘 다시금 애정과 사랑에 기반을 둔 혈연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영화적 속도는 빠르지 않다. 이태원과 한남동, 그리고 굽이진 골목과 가파른 언덕으로 가득한 보광동 달동네 일대 구석구석을 화면에 등장시키며 이 모녀와 관련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스쳐지나간다. 그 과정에서 관객에게 두 모녀 각각의 사연과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에 등장하는 대다수가 흔히 사회적 편견이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라는 사실이다. 게이바를 운영하는 사장은 순덕의 이모고, 둘째 딸의 행방을 아는 걸로 보이는 낯선 남자는 게이바 호스트다. 또한 잠시 둘째 딸을 보호한 것으로 나오는 타투이스트는 동성애자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의상점 사장은 뭔가 음흉해 보인다. 
 
 영화 <초미의 관심사>의 한 장면.

영화 <초미의 관심사>의 한 장면. ⓒ 레진스튜디오

 
사건을 해결해 가는 주체로 등장하는 정봉(테리스 브라운)의 존재도 흥미롭다. 일반적 영화였으면 역시 주변 인물로 소모되고 사라졌을 법하지만 순덕의 가까운 지인이자 조력자로 등장한다. 외형은 외국인이지만 영어를 전혀 못하는 순수 한국인으로 표현된 지점이 재밌다.

이런 다양한 캐릭터로 영화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우리가 무의식에 품고 있을 법한 편견과 차별의 심리를 건드린다. 선입견이 있다면 영화를 감상하는 자체에 다소의 방해가 있을 순 있지만 그 심리적 장벽만 살짝 넘는다면 우리 주변 이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다소 과장된 액션과 대사로 영화가 전하려는 유머가 모두 통하는 건 아니다. 담담하거나 담백한 정서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부담스러울 순 있지만 그런 투박함을 영화는 진심의 힘으로 상쇄시킨다. 만듦새 자체가 세련되지 않지만 영화적 메시지와 몇몇 장면은 꽤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이 영화는 김은영의 배우 데뷔작, 그리고 그의 연인이자 배우인 남연우의 두 번째 연출작이기도 하다. 조민수를 제외하곤 한국 상업영화에선 아직 낯선 배우들이 제 몫을 해내는 만큼 애정을 품고 지켜봐도 좋을 것이다.

한줄평: 더이상 편견은 그만!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
평점: ★★★☆(3.5/5) 

 
영화 <초미의 관심사> 관련 정보

감독: 남연우
출연: 조민수, 김은영
제공 및 제작: 레진스튜디오
배급: ㈜트리플픽쳐스
러닝타임: 92분
관람등급: 15세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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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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