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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을 놀이와 활동을 접목한 과제해결 수업으로 진행하는 호주 초등교육
▲ 구구단 빌딩 구구단을 놀이와 활동을 접목한 과제해결 수업으로 진행하는 호주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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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친구 중에 연두(별칭)는 방학이 되면 아이를 데리고 내가 사는 멜버른에 가끔 놀러 온다. 그는 20여 년 넘게 한국에서 특수교사로 근무 중이다. 애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가면 다운 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친구들과 레슨을 받고, 다른 한쪽엔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청소년이 물에 몸을 맡기고 물놀이를 한다. 볼링장에 가면 단체로 온 장애를 지닌 청소년들이 일반인들과 섞여서 볼링을 즐긴다.

가는 곳마다 연두는 '부러워요'를 연발한다. 한국에서 본인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단체로 볼링 한번 치려면 관계자에게 겨우 사정을 해서 허락을 받는다고 했다. 그나마 일반인들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아주 이른 시간에 배정해 주는데도 그나마도 감지덕지라고 했다. 호주살이 첫 1~2년은 나도 연두처럼 매일 놀라고 또 감탄했었다.

초반기에는 두 국가의 차이가 관련 제도의 부족일 거라 여겼다. 그런데 열심히 검색하고 공부해서 제도를 소개하면 연두뿐만 아니라, 호주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다른 특수교사나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답했다.  

"한국 학교엔 호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좋다는 제도들은 거의 다 들어와 있어요."

지난 토요일, 아이랑 같은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가족을 초대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강력한 제한들로 인해 이웃과의 만남이 금지된 이후 두 달여 만에 가능해진 일이다.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대화 소재는 5주째 시행되고 있는 온라인 가정 학습과 호주의 교육이 주를 이뤘다.

"어메이징(amazing) 이란 단어로는 충분하지 않아. 슈퍼 어메이징(super amazing) 자체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보닌(가명)이 교사들의 수업과 학교의 시스템을 극찬했다. 교사들의 수업 준비, 학습의 체계성, 자료를 수준별로 제시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법 등이 더할 나위 없이 전문적이고 친절해서 가정 학습이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멜버른에서 선망받는 대학의 교수이고, 그녀의 아들도 내 아들처럼 ADHD를 지녔다.

아들 둘(초 1, 초3)을  키우는 다른 가정도 재택근무와 가정 학습의 병행이 어렵지, 교사들의 온라인 수업은 만족스럽다고 하는 걸 보니, 온라인 수업 과정에서 보이는 호주 교사의 전문성과 자질에 홀딱 반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담임은 매주 금요일마다 일주일 간의 온라인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 설문지를 보낸다. 결과를 수집해서 다음 주 교육활동에 반영하여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흥미를 유지시킨다.
▲ 일주일 간의 온라인 수업에 대한 피드백 설문지  담임은 매주 금요일마다 일주일 간의 온라인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 설문지를 보낸다. 결과를 수집해서 다음 주 교육활동에 반영하여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흥미를 유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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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 전공 안했지만... 호주 교사들은 달랐다

"교무실은 콜센터요, 한국의 교육은 일주일 대계다"

코로나 발 온라인 수업의 최전선에서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한국의 교사들은 이제는 등교 수업을 준비하며 떨고 있다. 아침마다 모닝콜을 날리고, 학교에서는 각종 공문과 학부모의 민원을 처리하고, 이제는 방역 전문가로서 거듭나야 할 상황이다.

한국 학부모들도 온라인 수업이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초등 4학년 자녀를 둔 한 친구는 온라인 수업이 아이에게 "딴짓하는 요령"을 가르치고, 결국은 사교육으로 보충을 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하루에 제공되는 5가지 과제(5교시분)가 대부분 동영상 강의 위주라 지루해진 아이는 유튜브에서 놀기 일쑤라 했다. 그나마도 스크롤 바를 밀면 5초 안에 수업 완료가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전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수준의 엘리트 집단이다.

북유럽의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몇 국가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교사들의 대학 입학 성적과 학력은 세계적인 상위 그룹이다. 교사들의 높은 학력이 학교 현장에서 언제나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믿지는 않지만, 호주의 교육 전공과 관련한 대학입학 성적은 한국보다 낮고 교사들의 학력도 상대적으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사들은 코로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건가?' 의문이 들 정도로 교육자로서의 전문적 자질을 능수능란하게 발휘하는 호주의 교사들은 어떻게 탄생할까?

한국의 교사들은 아이들의 다양성(neuro diversity)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지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도 한국에서 교사를 오랫동안 하면서 전혀 알지 못하던 세상이었다. 내 아이가 정형인(neuro typical)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오묘하고 신비로운 세상이 동떨어진 채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늘상 내 눈앞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내가 준비가 안되어서 학생들이 보내는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호주의 일반학교 교사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특수교육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이들 마다 선호하는 학습의 방식이 다르고(시각, 청각, 운동감각 등), 발달 장애를 지닌 아동들의 뇌 회로가 다르게 작동하여 정보의 인지(perception),  처리과정(process), 반응(response) 등이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즉, 다양한 아동들의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각, 청각, 몸을 통한 놀이 수업을 접목한 전인적인 교수 학습과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인들이 교실 현장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들, 일상에서 해 오던 수업을 온라인 수업에서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수학 과제 중 하나로 코딩을 통해 스포츠 게임을 만들고 완성된 게임으로 가족과 게임을 즐기기
▲ 아이가 만든 스포츠 게임(수학 과제의 일환인 코딩) 수학 과제 중 하나로 코딩을 통해 스포츠 게임을 만들고 완성된 게임으로 가족과 게임을 즐기기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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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의 진정한 자질

반면에 한국의 교사들은 다양한 학생들을 이해하고 지원하고 싶어도 배움의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장애 진단을 받은 중증의 학생들은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으로 보내기 바쁘고, 교실에 있는 경증의 아이들은 또다시 위기학생이나 문제학생이라 분류되어 WEE 센터나 상담실로 보낸다.

한국의 학부모들도 다양한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배우고 생활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한 발달 장애 아동의 엄마가 초등교육만이라도 일반 학교에서 받게 하려고 노력하는 고군분투기를 그린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류승연 지음' 은 슬프다 못해 처량하다. 결국 아이는 일반학교에서 밀려나 특수학교로 교육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

<우리는 공교육에서 "분리하지만 평등"의 원칙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결정한다. 분리된 학교 시설은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p.78>

1954년 백인과 흑인 아동의 학교를 분리했던 정책을 철폐하게 만든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처럼, 분리된 학교 시설은 장애(특별한 요구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의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평등하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공교육에서 현재와 같은 분리와 배제의 방식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었을 때와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이 철학을 공유했을 때이다.

호주의 "다름"을 끌어안고 함께 성장하는 교육과 한국의 "다름"을 밀어내며 별개로 이루어지는 교육의 결과는 이번 온라인 수업에서 보여주는 교사들의 수업의 질과 비례한다.  교사 개개인의 자질과 전문성은 매년 수많은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한 사회의 중요한 자원이고, 한 사회를 질적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원동력이다.

아동 각자의 타고난 자질과 특성에 맞춘 개별화 된 교육,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곧 교육자의 자질이고 전문성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원격수업, #온라인 수업, #호주이민, #코로나 팬데믹,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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