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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스키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강사를 섭외해 아이들을 스키장 앞에 내려주었다.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세 시간을 보냈다. 내가 스키를 타다 넘어져서 팔이라도 부러지면 가족 부양의 의무를 다할 수 없다. 아이들이 패러글라이딩에 관심을 보였다. 단양의 한 패러글라이딩 업체에 아이들을 맡겼다. 목이 부러지도록 하늘만 바라보며 두 시간을 보냈다. 타고난 고소공포증은 어찌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아빠다.

나도 강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 20kg짜리 역기도 번쩍 들어 올리고, 마라톤 하프 코스쯤 동네 한 바퀴 돌 듯 가볍게 완주하고 싶다. 하지만 뭘 해도 마음처럼 안 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사실, 그럴 마음도 별로 없다. 괜히 무리하다 다치면 나만 손해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넘어가기만을 바라고 산 지 오래다. 프리다이빙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액티비티에 겨자씨만큼의 관심도 가질 리 만무하다.
 
5m 깊이의 풀장에서 교육생들이 프리다이빙 훈련을 받고 있다.
▲ 프리다이빙 훈련 5m 깊이의 풀장에서 교육생들이 프리다이빙 훈련을 받고 있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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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지인과의 술자리에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취미로 프리다이빙을 한다는 것이었다. 튜브 없이는 1m 깊이의 물도 쳐다보지 않는 내게, 그저 귀 아픈 소음에 불과했다.

한술 더 떠서, 세계 신기록 보유자가 135m 깊이까지 들어갔고, 무호흡을 11분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다. 아빠가 아쿠아맨이고 엄마가 인어공주야? 사람이 어떻게 산소통도 없이 100m 물속으로 들어가냐? 호기심보다 의심이 앞섰다.

50m 이상 들어갈 수 있다는 후배의 과장이 술기운에서 비롯한 만용인지 허풍 없는 진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의심과 시기와 질투는 이웃사촌 간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 없다. 하루만 교육받으면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유혹도 한몫 거들었다. 네가 할 정도면 나도 한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렇게 프리다이빙은 허황과 억지의 산물로 내게 다가왔다.

물보다 들어가기 힘들었던 것
 
프리다이빙은 자연과 하나되는 아름다움이다.
▲ 프리다이빙 프리다이빙은 자연과 하나되는 아름다움이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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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검색창에 프리다이빙이란 단어를 입력했다. 수중에서 무호흡(apnea)으로 하는 모든 활동의 총칭. 프리다이빙의 형태로는 수면무호흡(static apnea), 수평 잠영(dynamic apnea), 수직 다이빙(constant weight/ free immersion) 등의 형태가 있다(출처-위키백과). 통 무슨 소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숨 안 쉬고 물속에서 오래 버티면 되는 거지 뭐. 단순함은 모든 걸 이기는 커다란 무기다.

교육 받기로 약속한 날이 되자 두려움이 생겼다. 수영은커녕 동네 목욕탕에서 잠수도 못 하는 맥주병이다. 괜한 객기를 부린 건가. 늙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과 귀를 열라는 선인의 지혜는 빈말이 아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다이빙 풀장 앞이었다. 마치 물귀신이 나를 홀려 불러온 듯. 후배와 다이빙 강사, 그리고 교육생들 몇 명이 반가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로 풀장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프리다이빙을 위한 호흡법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있다.
▲ 프리다이빙 호흡 훈련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로 풀장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프리다이빙을 위한 호흡법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있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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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장 내 준수 사항에 대한 간략한 교육을 받고 체온을 잰 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풀장에 들어섰다. 나를 더욱 위축시킨 것은 한쪽에 세워진 거대한 다이빙대가 아닌 5m 깊이의 시퍼런 물이었다.

내 키의 세 배나 되는 상대가 바닥을 훤히 드러내며 조롱하듯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긴 당신같이 겁많은 사람이 올 곳이 아니라는 듯 습한 기운으로 내 몸을 밀어냈다. 잠깐 주춤했으나, 나보다 한참 어린 여성 교육생들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건 모양 상하는 일이다. 이를 악물었다.

풀장의 물보다 들어가기 더 힘든 것이 다이빙용 수트 안이었다. 경험자들은 프리다이빙에서 가장 힘든 일이 수트를 착용하는 일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비눗물을 바르면 입기가 수월하다고 하는데, 처음 수트를 입는 일은 아나콘다 배 속에서 아가리를 억지로 벌리고 탈출하는 기분이었다. 간신히 머리와 팔다리를 꺼내는 동안 온몸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 수트에 눌린 아랫배 때문에 벌써 숨쉬기가 거북스럽다.

시작은 호흡

몸풀기 체조를 하고 호흡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호흡은 크게 복식과 흉식 호흡으로 나뉘는데, 프리다이빙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중요하다. 복식호흡은 배의 근육을 이용하는 호흡법으로,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요가의 기본 호흡법이다.

단전 깊은 곳부터 차곡차곡 산소를 저장해야 하므로 평상시에 복식호흡을 훈련해서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일상에서 가슴으로만 숨을 쉬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의식적으로 배에 공기를 불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틈틈이 요가 수업을 받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호흡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는 긴장 완화이다. 의식을 호흡에만 집중시키고 온몸의 긴장을 푸는 것이다. 이때의 호흡은 복식호흡이며, 들숨과 날숨의 비율은 5:8 정도로 진행한다. 날숨이 조금 더 길어야 한다. 이는 숨을 참기 위한 연습의 토대가 된다. 충분한 복식호흡으로 몸의 이완이 이루어지면, 본격적인 호흡에 들어간다. 여기까지는 아무나 할 수 있다.

2단계 최종호흡은 호흡을 최대한 길고 크게 하는 것이다. 연습한 복식호흡을 이용해 배꼽 아래 저 밑바닥까지 숨을 천천히 불어넣는다. 그리고 가슴과 어깨와 목구멍과 입 안까지 채울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숨을 꾹꾹 채워 넣는다.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서서히 날숨을 쉰다. 이때는 온몸을 쥐어짠다는 생각으로 한 모금의 숨까지 내뱉어야 한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본인도 모르게 호흡의 저장량이 증가했음을 느낀다. 몸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서서히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고 나면 어쩐 일인지 마음도 평온해진다. 그리고 잠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실제로 이십 년 넘게 담배를 피워 온 필자도 최종 호흡을 연습한 후에 첫 잠수에서 1분 넘게 숨을 참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호흡 훈련을 받고 처음으로 잠수해서 수중에서 숨을 참은 시간이다. 약간의 훈련만 받으면 누구나 1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다.
▲ 나의 첫 잠수시간 기록 호흡 훈련을 받고 처음으로 잠수해서 수중에서 숨을 참은 시간이다. 약간의 훈련만 받으면 누구나 1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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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의 호흡은 이제 숨을 참는 것이다. 2단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몸의 세포까지 숨을 불어 넣은 후 그때부터 참는다. 한계까지 숨을 참은 후의 날숨은 2단계와는 다르다. 빠르게 내뱉고 더 강하게 들이마신다. 이때 들숨이 더 빠르고 강력해야 한다.

이는 물속에서 잠수하다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행하는 회복 호흡이다. 3단계의 호흡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연습한다면 세 살부터 여든까지 그 어떤 사람도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사분의 설명이었다. 그 말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태그:#프리다이빙, #포항, #복식호흡, #갈라파고스, #수중액티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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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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