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누군가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 적는 행위'.

한국언론진흥학회는 '따옴표 저널리즘'을 이렇게 정의하며 "'he said, she said coverage(보도)'라고도 말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특정한 주장의 진위는 파악하지 않고 주장 자체를 부각해 보도하는 경향"이라고 부연했다.

검증도, 진위 파악도 없이 오로지 자사의 정파적·경제적 '유불리'만이 중요시되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작금의 한국 언론을 지배하는 중이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미국 역시 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은 1950년에 "찰리 채플린도 빨갱이다"라고 지목했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 닥쳤다. 이게 무려 70년 전이다. 

우리의 경우, 언론이 인터넷 포털에 종속되고, 독자들이 기사를 온라인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따옴표 저널리즘'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각한 형태를 나는 '복화술'이라 부른다. 기자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해당 발언자를 통해 전달하거나, 모종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공식적인 기사를 통해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바꾸어 사람들의 의식 안에 침투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결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복화술 저널리즘을 마주한다. 기자 스스로 대기업의 입이 되고, 특정 정치세력의 대변자가 되고, 공익과는 무관한 이해관계의 목소리를 받아쓰면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불쾌감을 넘어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지난 2019년 3월 방송기자연합회가 발간하는 <방송기자>에 기고한 <따옴표 저널리즘의 딜레마② 관행이란 이름의 범속함, 그 악의 평범성> 중 일부다. 정 교수는 이러한 '따옴표 저널리즘'의 횡행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너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그중 가장 심각한 형태의 '복화술 저널리즘'을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대개의 '따옴표 저널리즘'은 온라인 속보 경쟁 시대 저널리즘의 맨얼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자의, 편집자의, 언론사의 의도와 편집 방향이 배제된 발언의 경우 단순 전달이 과연 가능할까. 이같이 정 교수가 '복화술 저널리즘'이라 일컬은 보도와 편집 행태야말로 언론사와 기자의 각종 의도를 발언자의 발언을 통해 전달하는 고도의 저널리즘 행위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따옴표 저널리즘'과 '복화술 저널리즘의'의 정점을 찍는 기사들이 6.15 공동선언 20주년 당일인 15일 소셜 미디어를 장식했다. 다름 아니라, 최근 북한의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이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인 <조선의 오늘>에서 이른바 '옥류관 국수' 발언을 제목으로 내세운 기사들이었다.
  
6.15 공동선언 20주년 수놓은 '따옴표 저널리즘'
   
 
조선일보는 15일 평양 옥류관의 오수봉 주방장의 문재인 대통령 비판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다소 과격한 문장을 제목으로 뽑아 사용했다.
 조선일보는 15일 평양 옥류관의 오수봉 주방장의 문재인 대통령 비판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다소 과격한 문장을 제목으로 뽑아 사용했다.
ⓒ 조선일보

관련사진보기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 떨더니... " 옥류관 주방장까지 文대통령 조롱>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 평화 상징 평양냉면의 '독한 변신'>
<"국수 처먹을땐 요사 떨더니"... 옥류관 주방장까지 대남 비난>


약속이나 한 듯, 엇비슷한 따옴표 속 "요사 떨더니"란 표현이 눈에 콕 박힌다. 차례대로 15일자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가 앞다퉈 지면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내놓은 기사 제목이다.

최근 북한이 연일 대남 강경 기조를 앞세우고,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강경 발언에 이목이 집중되자, '처먹을 때', '요사 떨더니'란 거칠고 자극적인 발언과 '옥류관 주방장'이란 발화 주체가 맞물린 해당 발언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먹고 사는 언론들의 구미를 당겼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발언이 최초 보도된 것은 지난 13일부터다. 북한 선전매체 특유의 강성 발언과 튀는 표현이 기사화되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여기에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 등 보수야권과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 등이 이 발언을 문재인 정부 비판에 활용하며 주목도를 높였다. 이 같은 주목에 종편을 위시한 각종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소재로 활용되는 중이다.

이렇게 해당 발언은 15일 6.15 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으면서 경색된 남북 분위기를 상징하는 '워딩'으로 사흘째 활용되고 있다. 과연 이 옥류관 주방장의 발언이 이 정도 기사가 쏟아질 만큼 기사 가치가 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조중동'만의 문제도 아니다. 13일 이후 사흘간 보수경제지, 통신사, 인터넷 매체 할 것 없이 해당 발언이 제목으로 포함된 기사들을 내용만 바꿔 재활용하고 있고, 보수 유튜브 채널들도 가세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매체들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은 '따옴표'뿐 만이 아니다. 사진으로 그 의도를 드러내는 매체도 부지기수다. 지난 사흘간 관련 기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에서 평양냉면으로 식사하는 평양사진공동취재단의 사진을 게재한 곳이 부지기수였다.
 
중앙일보는 15일 <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평화 상징 평양냉면의 '독한 변신' > 제목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배치했다. 기사 전체의 불분명한 의도보다 제목과 사진에 먼저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
 중앙일보는 15일 <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평화 상징 평양냉면의 "독한 변신" > 제목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배치했다. 기사 전체의 불분명한 의도보다 제목과 사진에 먼저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
ⓒ 중앙일보

관련사진보기

 
이들 매체의 편집 효과에 의해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의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 떨더니"란 비난은 문재인 정부가 아닌 대통령 개인을 겨냥한 발언으로 둔갑해 버렸다. '따옴표 저널리즘'과 사진 편집 효과가 극대화된 경우랄까.
    
<중앙일보>의 15일 자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 평화 상징 평양냉면의 '독한 변신'> 기사가 대표적이다. <중앙일보>는 해당 사진을 첫머리에 내세운 뒤 "평양냉면의 정치적 의미도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며 오 주방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기사 전체의 의도보다 제목과 사진에 눈길이 가게 했으나, 이 기사의 결론은 제목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평양냉면이 다시 평화의 상징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옥류관 주방장을 대남 막말공세에 동원한 것은 북한 정권이 남북관계에서 평양냉면의 함의를 잘 꿰뚫고 있다는 방증이다. 어쨌든 평양냉면의 정치적 위상은 위태로운 지경이 됐지만, 날이 급속히 더워지면서 전국의 평양냉면 집들은 때 이른 대목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따옴표 저널리즘'이 애호하는 또 하나의 이름, 삼성

15일 오후, <조선의 오늘> 홈페이지에서 오수봉 주방장의 발언이 담긴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언론이 앞다퉈 인용하는 탓에 북한 측이 삭제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난 사흘간 해당 발언을 '뜨거운 논란의 대상'으로 부각시킨 것은, 남조선 당국을 비판해온 <조선의 오늘>이 아닌 우리 언론일 것이다. 6.15 공동선언 20주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남북관계 현안을 분석하는 기사들보다, 이 '따옴표 저널리즘'에 입각한 기사들이 누군가에겐 더 주목받고 훨씬 더 '클릭'을 받지 않았을까.  

'따옴표 저널리즘'을 애호하는 언론들은 절대 "누군가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 적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대체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장 자체를 부각"할 때 적극 활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옥류관 주방장의 발언이 문 대통령의 냉면 시식 사진과 함께 6.15 공동선언 20주년 즈음에 부각된 이유도 미루어 짐작 가능할 것이다. 
  
 
14일, KBS <저널리즘토크쇼J>는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feat. 언론)'라는 주제로 삼성에게만 유독 관대해지는 언론사들의 '따옴표 저널리즘'을 비판했다.
 14일, KBS <저널리즘토크쇼J>는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feat. 언론)"라는 주제로 삼성에게만 유독 관대해지는 언론사들의 "따옴표 저널리즘"을 비판했다.
ⓒ KBS

관련사진보기

 
물론 그 반대도 존재한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구태여 왜곡할 필요도 없는 따옴표 제목이 등장할 때도 있다. 바로 삼성 관련 보도다. 옥류관 주방장의 독한 워딩은 6.15 공동선언 20주년 특수에 따른 것이지만, 대다수 언론은 삼성이 내는 보도자료나 이재용 부회장 관련 기사의 제목들을 따옴표 안에서 '대동단결' 시키고 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지난 8일,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라는 정체불명의 연구소가 제공한 보도자료와 제목을 고스란히 따옴표 안에 인용한 매체들은 "8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그 따옴표 안에 들어있던 제목은 이랬다.

"국민 60% 이재용 부회장 선처 의견."

태그:#따옴표저널리즘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