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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14일(현지시간)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인간사슬'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인종차별 반대" 인간사슬 시위 독일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14일(현지시간)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인간사슬"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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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시의회는 2020년 6월 4일 회의에서 반차별법(Landes-Antidiskriminierungsgesetz, LADG)을 통과시켰다. 이는 독일에서 최초로 발효된 법으로 공권력 행사 영역에 적용된다. 베를린시는 이 법이 무엇보다도 배척과 낙인의 관행을 타파하고 사회의 개방성과 연대, 그리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사회정치적인 경종을 울리는 기능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의 제1조 1항에 명기된 법의 목적은 "모든 형태의 차별의 억제와 제거, 더 나아가 다양성의 가치 함양"이다. 제1조 2항에서는 "이 법 적용 범위는 모든 공권력 행사에서 인종, 출신 민족, 성차, 종교, 세계관, 장애, 연령, 성적지향, 사회적 지위에 의한 모든 차별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1조 4항에서는 이 법이 "다른 개별법에서는 제대로 적용할 수 없는 구조적·제도적 차별에 관련된 사안에 적용"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법 제10조에서는 "제1조 2항에 명기된 이유로 어떤 사람이 차별을 받았는지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을 경우 이 법의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는 근거를 그 상대방이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곧 공권력의 차별을 당한 시민이 법정에서 차별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 행사자가 그러한 차별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는 당연히 정부, 특히 경찰에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법으로 베를린 시민들은 공권력에 의해 차별을 받을 경우 법적 절차를 거쳐 시정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구체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공무원, 차표 검사관, 경찰 등에 의해 차별을 받을 경우 배상 소송을 진행할 길이 열린 것이다. 이러한 소송을 제기하는 주체에는 개인만이 아니라 단체도 포함된다.

치열한 논쟁

독일의 대표적 주간지 <슈피겔>의 편집장인 레만(Timo Lehmann) 말대로 이는 공권력에 의한 차별에 맞서 싸워온 긴 여정에서 작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권력은 구체적으로 베를린 시정부당국을 대표하는 이들, 곧 경찰, 교사, 법관은 물론 교통과 주택 담당 관청과 그 소속 관리들을 의미한다. 사실 이 법은 이미 10년 전 베를린 시의회의 좌파당이 제안한 것이었으나 보수적인 기민당(CDU)과 사민당(SPD)이 연정을 이루던 시기에는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6년 지방선거에서 적-적-녹, 곧 사민당(SPD), 좌파당(Linke), 녹색당(Die Grüne)이 연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 법을 통과시키기로 합의가 됐다. 그러다 마침내 4년 만에 이 법이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안에 따라 시정부는 경미한 경우에는 300유로(약 40만 원)에서 1000유로(약 136만 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심각한 차별의 경우는 그 이상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돼 있다. <슈피겔>의 기사 제목대로 이 법의 통과는 '미친 짓' 아니면 독일만이 아니라 세계사적 차원에서도 '기념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수립된 이 법은 마침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맞물려 독일 내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베를린 시정부의 법무장관인 베렌트(녹색당)는 이 법의 통과가 "베를린 정부의 차별 반대 정책의 기념비가 되는 일로, 독일 전체에 파급력이 있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내무장관인 세호퍼(기사당)는 독일 <타게스슈피겔>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이 "근본적으로 미친 짓"(im Grunde ein Wahnsinn)이라고 평가했다. 튜링엔주의 기민당 소속 의원인 발크는 이 법으로 베를린에서는 이제는 경찰이 사건과 의심되는 정황과 무관한 경우에는 검문을 할 수 없게 되고, 누구나 검문을 당하면 차별을 당했다고 제기하고 나서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멕켈렌부르크-포어포먼주의 내무장관인 카피너(기민당)는 "이 법이 경찰에 대한 불신의 신호를 주게 될 것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것은 베를린 시정부가 다른 주에 경찰 병력 지원 요청을 할 경우 이 법을 이유로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베를린 시정부 내무장관인 가이셀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다른 주의 경찰이 베를린에서 직무를 수행하다가 이 법에 저촉되는 경우 벌금을 베를린 주정부가 지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티쉬비렉 베를린훔볼트대학교 법과대학교수와 빌 베를린자유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도 이러한 가이셀의 주장이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개별 경찰이 민형사적인 피해를 입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법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이와 관련된 판례가 이미 있기 때문에 판결도 합리적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이제 독일은 한 동안 이 법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논쟁이 좌우 대립이나 흑백 대결과 같은 진영논리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독일에는 인권과 관련된 제도 개혁의 뿌리가 상당히 깊기 때문이다. 그러한 개혁은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보다 인종차별 범죄가 극도로 적은 이유 
  
독일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 아래에서 유대인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비인도주의적 만행을 저지른 나라다. 때문에 역사적 부채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독일 정부차원에서는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원의 차별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 왔다. 그 결과 독일은 인종차별에 있어서 매우 모범적인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인종차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2019년 독일의 극우적인 정서에 대한 연구보고서인 '잃어버린 중심 적대적 상황'(Verlorene Mitte Feinselige Zustände)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7%가 피부색과 인종을 근거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19%는 외국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54%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2014년의 조사에 비하여 10%p나 늘어난 수치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2018년 연구 보고서인 "권위주의적인 것으로의 탈출(Flucht ins Auotoritäre)"의 결과도 비슷한 수치를 말해주고 있다. 곧 약 26%의 독일 국민들은 자신이 외국인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독일 연방정부 내무부의 통계로는 인종을 이유로 한 범죄는 2019년 7909건이 발생했다. 이를 포함한 증오범죄는 총 8500건 정도였는데, 이는 2016년 1만 건에 비해 줄어든 수치다. 그런데 개인이 아닌 정부 기관, 특히 경찰이 인종차별적인 심문을 한 경우, 이른바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을 한 것에 대해 항의를 받은 경우는 독일연방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단 58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유럽연합 기본권위원회가 2017년 발간한 자료인 '제2차 유럽연합 소수자와 차별 조사보고서(Second European Union Minorities and Discrimination Survey)'에 따르면, 독일 거주 흑인 가운데 14%가 지난 5년 동안 인종 프로파일링을 당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독일은 헌법 제3조를 근거로 경찰이 인종차별적인 검문을 하는 것을 이미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22조에서는 독일 연방 경찰이 불법 입국자를 막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곧 경찰은 기차 안, 기차역, 공항 등에서 의심되는 인물을 검문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짐을 검색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헌법 제23조와 주경찰법은 경찰이 이른바 '위험지역'에서는 의심스럽지 않은 인물에게도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자연스럽게 인종 프로파일링을 실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위의 통계에서 본대로 독일 국민들이 개인윤리 차원에서 각성을 하여 마음속에서 인종차별 의식을 완전히 걷어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독일의 인종차별과 관련된 범죄가 미국에 비해 극도로 적은 것은 바로 사회윤리의 원칙에 입각한 제도 개혁 때문이다.

독일은 '개인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것을 애도하는 미국 미니애폴리스 주민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그가 경찰에 연행됐던 현장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것을 애도하는 미국 미니애폴리스 주민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그가 경찰에 연행됐던 현장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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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베를린 시의회가 통과시킨 반차별법은 이러한 경찰의 '합법적' 행위 과정에서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도적인 반박을 할 기회를 마련한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만이 아니라 합법적인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도 시민이 불만을 제기하고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은 정말로 기념비적인 일이다.

사실 어느 나라든 공권력에 의해 부당한 피해를 입어도 개인이 그에 맞서 자신의 권익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 공권력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당해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하고 견딜 수밖에 없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는 꼭 독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제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은 전대미문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인권 개선이라는 문제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세계적인 일이 될 것이다.

독일은 인권, 특히 약자의 인권 보호가 개인의 윤리적 선의에 맡겨서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하고 제도적 보장에 힘써 왔다. 그래서 윤리적 사회의 건설에 개인윤리적인 양심에 호소하기 보다는 사회윤리적인 제도의 수립과 실행에 더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때 초토화된 패전국으로 분단됐지만 오늘날 통일국가로서 다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독일연방공화국의 저력은 바로 차별금지법과 같은 인권 개선을 위한 제도 개혁의 역사에 있다. 흔히 철혈재상으로 알려진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에서 시작된 근대 독일국가의 면모가 면면히 지속돼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극보수주의자인 비스마르크는 이른바 문화투쟁(Kulturkampf)를 통해 당시 그 만큼이나 극보수적인 가톨릭 세력과 정면 대립하면서 혼인제도와 교육제도를 교회와 분리시켜 국가의 권한으로 관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그는 노동자계급의 요구에 정면으로 맞서고 사회주의자들의 국가 위협 활동을 법적으로 제재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법'을 제정해 사회주의자들의 준동은 차단하였지만, 결코 사회주의 노동당의 정치 활동은 제한하지 않았다.

곧 이데올로기와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구분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배격해도 그를 추종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자본주의가 탄생한 영국에 앞서 독일에서 먼저 산재보험, 의료보험, 재해보험, 노령연금을 국가적 제도로 확립한 목적은 그가 스스로 말한 대로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확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국가를 그들을 위해 수립되고 그들의 안녕을 돌보고자 하는 사회적 제도로 여기도록 하는 것에 있었다.

후일 비스마르크의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이러한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은 모든 정파의 반대를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단을 내려 추진한 혁명적인 정책이었다. 반차별법으로 독일은 혁명적 제도 수립이라는 비스마르크의 전통을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

개인윤리적 교육을 통하여 각성을 한 '윤리적' 개인들이 모인 이상적 사회라는 허구를 독일은 믿지 않은 지 오래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사회윤리적인 제도 개혁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윤리적으로 개선된 제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의 본심이 무엇이든 말이다. 그래서 독일의 사회윤리를 바탕으로 한 제도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반대 길 고집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을 나와 라파예트 공원을 지나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인근 세인트 존스 교회로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옆의 건물 벽에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낙서가 적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을 나와 라파예트 공원을 지나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인근 세인트 존스 교회로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옆의 건물 벽에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낙서가 적혀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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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미국서 들려오는 소식은 미국이 독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고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만든다.

지난 1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경찰 업무에 관한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6개 항으로 이루어진 이 행정 명령의 주요 골자는 2항에 나온다. 곧 플로이드 사건으로 문제가 된 경찰의 목 조르기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치명적 무력(deadly force)'의 사용이 법으로 허용된 경우에는 해당이 안 된다. 경찰이 얼마든지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를 준 것이다. 나머지 항은 기존 관행으로 이미 이뤄지는 조치, 곧 '문제 경찰에 관한 정보 공유' '경찰 예산의 적절한 분배' '경찰의 정신 건강 증진 촉진' 등과 같은 것이다.

CNN은 이를 두고 '경찰을 포함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흑인들 대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조치'라고 혹평했다. 그저 11월 대선을 앞두고 성난 민심을 달래면서 표밭 관리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오히려 그는 여전히 경찰의 행위를 두둔하고 미국 국민들이 '법과 질서'를 바란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아마 트럼프는 독심술이라도 배웠나 보다. 그러나 제도 개혁은 독심술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태그:#베를린 반차별법, #제도개혁, #인종차별, #독일 역사, #사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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