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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다. 우리 집 쌀 소비량. 밥을 할 때마다 놀란다. 밑 빠진 독처럼 쌀통 안의 쌀이 쑥쑥 줄어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쌀이 이렇게 빨리 줄어든 적이 없었다. 외려 쌀이 너무 안 줄어 '오늘은 집밥 좀 해 먹을까?' 했던 적은 있었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로 가정용 쌀 판매량이 20~60% 가량 늘었다고 한다. 나처럼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홈다이닝은 트랜드가 됐다. 그러고 보니 외식을 안 한 지 꽤 오래됐다. 냉장고 안에는 반조리 식품이 항상 상비 중이다.

간단한 아침과 학교 급식으로 저녁 한 끼 정도만 정성을 들이면 되던 때완 달리 삼시 세끼를 차려내야 하니 쌀이 헤프게 쓰인다. 회식 금지로 칼퇴 하는 남편까지 합세하자 살다 살다 쌀통에 쌀 비는 걸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곳간에 쌀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다는 옛 서민들 심정이 이런 거겠지 싶다.

이 귀한 쌀을 나는 여태 귀한 줄 모르고 먹고 있었다. 지금껏 내 돈 주고 쌀을 사 먹은 적이 없다. 부모님이 쌀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항상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적당한 때가 되면 갓 도정한 쌀이 딱딱 배송돼 왔다. 그 적당한 때란 순전히 친정엄마의 느낌, 감이다.

"느그집 쌀 떨어질 때 안 됐나?"

엄마는 기가 막히게 우리 집 쌀 떨어지는 타이밍을 안다. 나는 그게 늘 신기했다.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으면 "느그 집 곳간 사정 엄마가 알지, 누가 아노" 하시는데 그 말인즉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친정엄마의 촉수는 늘 딸 집을 향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역에서 보내준 쌀 꾸러미를 받으며 그간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깨닫게 됐다.
▲ 지역 쌀 꾸러미  지역에서 보내준 쌀 꾸러미를 받으며 그간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깨닫게 됐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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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엔 엄마의 감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는지 쌀이 다 떨어져 가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엄마에게 연락하려 했더니 남편이 말린다. 그동안 얻어먹은 것도 감사한데 당연하게 달라고 하는 게 염치없다며 사 먹자고 했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마트에 가려고 맘먹은 찰나, 밖에 나갔다 들어오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문 앞에 쌀 택배 왔어."

'역시, 엄마구나' 싶어 현관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거기엔 엄마표 투박한 쌀 포대가 아닌 농산물 쌀 꾸러미라고 적힌 박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쌀을 보내 준 지자체에 감사한 마음이다. 쌀꾸러미가 반갑긴 했지만 당연히 엄마가 보낸 쌀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엄마의 관심을 기다렸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까?

쌀을 의미하는 쌀 미(米)를 풀어보면 팔십팔(八十八)이 된다. 즉, 쌀 한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여든 여덟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란다. 그간 먹어왔던 밥상의 밥들이 그냥 쌀로 지은 밥이 아니라 엄마의 헤아릴 수 없는 손길이었단 걸 여태 모르다 이제야 깨닫는다.

처음으로 엄마 쌀이 아닌, 지역 특산품 쌀로 밥을 지으며 엄마를 그리워해 본다. 그 귀한 쌀을 매번 이고 지고 택배로 부치던 부모의 마음을. 그리고 그걸 모르고 넙죽넙죽 받아먹던 자식의 염치없음을. 오늘에야 깨닫는다.

태그:#쌀 꾸러미 , #부모마음 , #자식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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