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리꾼>에서 몰락양반 역을 맡은 배우 김동완.

영화 <소리꾼>에서 몰락양반 역을 맡은 배우 김동완. ⓒ office DH

 

'1세대 아이돌', 그리고 '배우'. 김동완에게 이 두 수식어는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다. 짐짓 가수 출신 배우를 향한 어떤 선입견이나 의심의 눈초리를 그 역시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김동완은 묵묵히 작품으로 증명해왔다. 드라마와 영화, 최근까진 연극으로 말이다.

그는 오는 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으로 모처럼 극장 관객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극중 몰락한 양반 역을 맡은 그는 영화에서 내내 허술하고, 속없는 성격을 내보인다. "찌질한 역은 자신 있었다"며 그는 오히려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달라,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칠 정도였다. 

"고정관념 깨지길" 

<서편제>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판소리 영화에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추레하고 하찮아 보이는 캐릭터라는 게 되게 매력 있었다. 사극 역시 꼭 해보고 싶은 장르였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젠틀맨스 가이드>라는 뮤지컬을 하면서 제가 하찮아 보이는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는 걸 알았다. 근데 영화 보시면 알겠지만 마냥 하찮지만은 않다(웃음). 사극에 관심이 갔던 건 뭔가 더욱 캐릭터에 빙의해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연극적 요소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사극 같다. 

물론 현대 말투를 쓰는 사극도 있지만 사극 말투를 쓸 수도 있으니 관심이 갔지. 촬영 전까지 다들 그렇듯 여러 사극을 본 것 같다. 사극 영화가 꽤 많았더라. <관상> 3부작도 보고, <서편제>도 다시 봤다. 역시 사극이 주는 감동이 있다는 걸 알았다. 대충 준비하면 안 되겠더라."


설정상 그가 직접 소리를 하는 장면은 영화에 없다. 소리꾼 심학규(이봉근)의 노래에 추임새를 넣거나 장난스럽게 따라 하는 식이다. 그런데도 김동완은 종로구 낙원동, 퇴계원 등을 오가며 판소리 기본기부터 배웠고, 서예 또한 배웠다. "붓글씨 쓰는 장면이 편집되긴 했지만 취미로 지금까지 서예를 하고 있다"며 그는 "배운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소리꾼> 관련 사진.

영화 <소리꾼> 관련 사진.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판소리라는 것도 단순히 몇 개월 해서는 되는 게 아니더라. 제 사부님도 저보고 재능이 있다면서 1, 2년 해보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꾸준히 해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함께 출연한 이봉근씨가 실제 명창인 만큼 여러 얘길 나눴는데 철성(쇳가루가 낀 것 같은 목소리)을 내기 위해 목을 혹사하는 시기가 있다고 하더라. 

전 좋은 컨디션, 맑은 목 상태에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소리가 잘 안 나온다면 안 나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게 봉근씨 철학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날마다 컨디션이 다르기 마련인데 왜 난 그동안 노래하면서 컨디션에 속박됐을까. <소리꾼>을 하면서 의외로 가수로서 깨달은 바도 크다. 아마 영화를 보시면 관객분들 역시 판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질 것이다." 


1세대 아이돌답게 영화 촬영 현장 곳곳에선 팬들의 물질적, 심적 응원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특히 김동완은 신화 멤버 중에서도 팬들에게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어느새 팬들 역시 사회 중년생이 되어 물심양면 그를 지지하고 있었고, 김동완은 감사한 마음을 새삼 전했다.

"현장에서 음식도 전해주시고 그랬다. 곳곳에 팬들이 포진해서 제 돈벌이에 힘을 주신다(웃음). 작가가 될게요! 피디가 될게요! 했던 분 중에 진짜 되신 분들이 제게 일을 주시니 정말 감사하지. 제가 영양제 광고를 찍었는데 광고주분도 신화창조 출신이시더라. 제가 소싯적에 '신화가 여러분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이상한 말을 했는데, 팬들이 제 인생을 책임져 주고 계신다.

신화, 그리고 가수 활동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좋다. 배우 하려면 가수 색깔을 벗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 제게 그런 말씀을 하는 분은 없다. 그건 마치 출신을 버리라는 말인데 어떻게 버리나 오히려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제가 가수 출신이라는 편견을 만들 정도로 대충하진 않았다. 아, 이거 너무 자만인가(웃음)."

 
 영화 <소리꾼>에서 몰락양반 역을 맡은 배우 김동완.

"날마다 컨디션이 다르기 마련인데 왜 난 그동안 노래하면서 컨디션에 속박됐을까. <소리꾼>을 하면서 의외로 가수로서 깨달은 바도 크다. 아마 영화를 보시면 관객분들 역시 판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질 것이다." ⓒ office DH

 
김동완의 작품 선택법

그의 말이 맞다. 2002년 드라마 <천국의 아이들>로 연기를 시작한 이래 그에게 숱한 작품 제안이 이어졌다. 톱스타였고, 연기 열정 또한 남달랐던 만큼 많은 제작사에서 그를 탐낼만했다. 그것과 비교하면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그리 많진 않다. 제법 냉정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작품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4년 전 저예산 독립영화 <글로리데이>, 상업영화 <연가시>가 마지막이었다. 

"연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억지로라도 만들어질 수는 있는데 저도, 제작진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큰 영화보단 주로 규모가 작은 영화들이 들어오긴 했는데 제가 출연하면서도 동시에 작품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글로리데이> 때도 죄송했던 게 제가 출연함으로써 뭔가 흐름을 깨는 느낌이 들더라. 제가 너무 유명해졌다는 게 애로사항이었다. 배우로도 가수로도 입지를 다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스스로 돌파해야 할 게 참 많다는 걸 느꼈다.

영화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음, 이런 말 해도 되려나.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 '아니, 저 사람이 여기 왜 나오지?' 싶을 때가 있다. 어울리지 않는 작품에 나오면 그 배우에게 갖고 있던 좋은 기억마저 없어지더라. 차라리 배가 고플지언정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장르 같다." 


그럼에도 연기 갈증은 더욱 커질 법하다. 그런 갈증을 그는 연극으로 풀고 있었다. 현재 출연 중인 <연극열전> 등으로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넓히는 중이다. 
 
"연극배우 특유의 감성이 있다. 뮤지컬은 노래할 때와 좀 비슷한 면이 있는 반면, 연극은 오롯이 연기만 해야 하더라. 지금 하는 게 2인극인데 정말 반복되는 연습이 필요했다. 다른 연기보다 더 깊고, 지루할 정도로 반복의 연속이다. 사실 연극을 늘 하고 싶었거든. 그러다 올해 상반기에 계획됐던 게 어긋나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제가 배종옥 선배님과 같은 곳에서 필라테스를 한다. 인사드리고 가야겠다 싶어서 기다렸다가 뵀는데 당신께서 지금 연극을 하고 계신다더라. 그래! 나는 왜 진작 안 했을까 싶더라."
 
 영화 <소리꾼>에서 몰락양반 역을 맡은 배우 김동완.

"제가 너무 유명해졌다는 게 애로사항이었다. 배우로도 가수로도 입지를 다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스스로 돌파해야 할 게 참 많다는 걸 느꼈다." ⓒ office DH

 
재충전 후 각오... "공무원이 되겠다"

알려진 대로 그는 4년째 서울을 떠나 경기도 가평에서 전원생활 중이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도시 생활이 잘 맞지 않다고 느낀 게 계기였다고 한다. 인터뷰하는 기자에게도 권할 정도로 그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가평에 무작정 간 게 아니다. 2013년에 단기 어학연수를 핑계로 캐나다 휘슬러라는 곳으로 도피했는데 거기서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를 처음 느꼈다. 활동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안락함을 알게 됐다. 거기서 벌도 처음 만났다. 캐나다 원주민이 양봉하는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자연으로 가야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겠더라. 평소에도 펜션에 1, 2주 묵던 게 어느새 3, 4주가 되곤 했는데 그럴 바에 아예 시골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처음 내려갈 때만 해도 일은 거의 안 하고 싶었다. 근데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으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힘이 생기더라. 사실 서울과 거리가 있어서 일하며 살기엔 좀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제가 얻는 게 더 많으니 이 생활은 계속 할 것 같다. 좋은 마음은 건강에서 나온다는 확신이 생겼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가 시골 생활을 좋아할지 테스트할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편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젠 주기적으로 얼굴을 비춰야 할 것 같다. 반 공무원처럼 지내보려고 한다"며 새삼 각오를 다지는 그의 향후를 좋은 마음으로 지켜보자. <소리꾼>이 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완 소리꾼 이유리 조정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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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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