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과 비

바람과 구름과 비 ⓒ 티비 조선

 
'TV조선' 사극 <바람과 구름과 비> 12회 방영분(27일)이 자체 최고 시청률(6.327%)을 올렸다. 총 21부작으로, 현재 중반을 넘어섰음을 감안했을 때 제작진이 희망했던 시청률 10%도 기대해 볼 만하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 11시에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만에 정통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기 때문 아닐까? 특히 배우들의 열연과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한 장면 한 장면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 것은 아닐지 예상해본다.
 
세도 정치와 무능한 권력으로 인해 사그라진 조선말의 역사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소재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점쟁이'와 '사주 명리학'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를 조금 다르게 재해석해내며 호평을 얻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드라마에는 '옛 것을 통해 오늘을 살펴보고자 하는' '온고지신'의 배움이 가득하다. 특히 12회에 등장한 조선을 뒤덮은 역병은 아직까지 '코로나19 팬데믹'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거울이다.
 
왕재를 둘러싼 파워게임  
 
 바람과 구름과 비

바람과 구름과 비 ⓒ 티비 조선

 
후사가 없던 철종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던 이하전(이루 분)은 부당하게 재산을 축적했다는 이유로 장동 김문의 김병운(김승수 분)을 공격했지만 외려 그의 농간에 결국 사약을 받고 목숨을 잃고 만다. 그를 앞세워 자신은 물론, 자기 가문의 앞날을 보전하려 했던 신정왕후 조씨(김보연 분)는 그만 자리를 보전하고 눕고 만다. 그런 대비 앞에 송전이라는 점쟁이가 철종 이복 형님 아들이라는 영운군을 데리고 등장한다. 자신이 '애정'했던 이하전과 똑같은 사주에다, 그와 비슷한 흉터까지 가지고 있는 영운군에게 마음을 빼앗긴 대비는 철종에게 어서 빨리 후사를 정하라 재촉한다.
 
거기에는 앞서 최천중(박시후 분)이 왕재라 천명한 이재황(박상훈 분)의 아버지 이하응에 대한 견제 심리와 보다 만만한 영운군을 앞세워 자기 가문의 득세를 기도하고자 하는 '권력욕'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장한 영운군 뒤에는 정작 실세 장동 김문이 있었으니, 후사를 둘러싼 파워 게임의 향배가 점입가경이다. 
 
이에 철종은 이재황을 왕재라 천명한 바 있던 최천중을 부른다. 두 점쟁이 최천중과 송전은 과연 누가 진짜 왕재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두 사람은 나라의 앞날에 대한 예언을 놓고 그들이 선택한 왕재의 진실성을 결정하기로 한다. 
 
송전은 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라의 앞날이 태평성대가 될 것이며 세손까지 올해 안에 볼 것이라 장담한다. 반면 최천중은 최근 한 달간 천기를 살펴본 결과 나라에 역병이 돌 것이라 예언한다. 이미 철종 3년에 역병으로 한바탕 위기를 겪은 조정은 최천중의 예언에 발칵 뒤집히고, 결국 그의 목숨까지 겁박한다. 
     
최천중은 왜 불길한 예언을 했을까?

그런데 왜 최천중은 철종 앞에서 가장 불길한 운세를 예언했을까? 사실 이미 빈촌을 중심으로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구토를 하다못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상황이지만 이를 담당해야 할 혜민서와 한성부의 관리들은 팔짱을 낀 채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는 상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철종은 당연히 그 사실을 알아야 하지만, 실세인 장동 김문의 방해로 '보고'의 계통조차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천중은 차기 왕재를 가리는 자리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왕에게 역병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충언한 것이다. 
 
또한 <바람과 구름과 비>는 역병을 둘러싼 권력의 민낯을 까발린다. 역병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고 이 치료에 필요한 예산이 필요한데, 그 긴급성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동 김문은 빈촌은 습해서 역병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며 콧방귀를 뀌며 일축한다. 한 술 더 떠 나랏돈을 쓸데없이 백성들에게 쓰지 말란다. 그들에게 나랏돈은 자신들의 뒷배이지 백성들에게 쓸 돈이 아니다.
 
이렇게 권력의 실세와 그 밑의 관리들이 빈촌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역병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상황은 김씨 세도의 조선이 왜 '침몰하는 배'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게 '권력'의 중심이 백성의 일에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 역병의 중심지로 달려간 사람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명성황후의 캐릭터를 떠올리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온 민자영(박정연 분)과 그의 청을 받은 봉련(고성희 분)이 빈촌으로 달려간다.
 
봉련이 '왜 너여야 하는가'라고 묻자 민자영은 '장동 김문에 의해 부서진 유접소를 구하기 위해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던 천중의 말을 대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민자영을 감화했듯 천중은 자신의 돈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구한 역병 치료약을 들고 등장한다. 
 
앞서 강가에서 천문을 보고 역병을 예감한 천중은 자신의 오른팔인 용팔용에게 미래를 묻는다. 침몰하는 배, 그곳에서 탈출할 것인가, 그 침몰하는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려 애쓸 것인가. 멸문지화를 입고 홀로 살아남아 사주 명리학을 익히며 이미 조선의 운명을 예감한 천중이 말하는 침몰하는 배는 바로 조선이었다. 
 
침몰하는 조선에서 탈출하는 대신, 그곳의 사람들을 구하기로 결심한 천중은 혜안으로 역병 치료약을 구하는 등 대비한다. 하지만 정치적 위기에 몰린 장동 김문 등 조정은 그런 천중의 '선한 의도'를 외려 '천중이 역병을 퍼뜨렸다'는 '마타도어'로 대응한다. 역병 치료에 앞장섰지만 외려 잡혀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가 왕재인가? 
 
 바람과 구름과 비

바람과 구름과 비 ⓒ 티비 조선

 
역병이 돌자 이하응은 지금 왕재를 논할 때가 아니라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역병의 역습은 과연 누가 진짜 '왕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 역병 관련 예산을 편성해주지 않는 김문에게 분노하고, 복지부동하는 관리들에게 빈촌의 진흙 세례를 퍼붓는 이하응이라면 충분히 여러 패착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다시 재건하고자 했던 대원군의 기세를 읽을 만하다.
 
그에 반해 그저 철종 이복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등장하여 대비를 등에 업은 영운군이야 말로, 제 2의 철종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바람과 구름과 비>는 그렇게 조정의 왕재 싸움 중에서도 역병에 대비하기 위해 왕에게 간언을 서슴지 않고 자신의 사재를 털어 역병 치료약을 사들인 천중의 행보를 쫓는다.
 
봉련의 어머니는 천중에게 '슬피 우는 용'이라 했다. 용이야말로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 아닐까. 혈통으로 '인증'받는 왕재의 나라에서 그의 언행에 탄복하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 아래로부터의 움직임, 침몰하는 배에서 사람들을 구하고자 애쓰는 천중이야말로 그 시대에 진정 필요한 '왕재', 즉 리더가 아닐까.
 
알량한 혈통에 연연하며 왕재에 매달리는 조정은 침몰하는 배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까발려진 권력의 민낯은 그저 왕조 시대의 잔해라고 보아 넘기기에는 씁쓸함을 남긴다. 반면 침몰하는 조선을 예감했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천중의 모습은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의 조건을 묻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바람과 구름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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