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즈음..푸르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이즈음..푸르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푸르다. 온 천지가 푸르다. 산과 바다를 향한 색감이 온통 초록과 파랑으로 나타난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들 외친다. 이럴 때 우리에게 남해가 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의 여파로 움직임이 멈춘 듯 하지만 자연은 여전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이미 더워지기 시작했지만 더 더워지기 전에 길을 걷고 싶었다. 남해의 남파랑 길 걷기 프로그램이 있어서 걸어볼까 덥석 마음이 동했다. 요즘 걷기 열풍에 힘입어 무수한 길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중에서 경남 남해군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이 담긴 남해 바래길을 걸어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코스 설명과 리더십 강의, 입체 영상 관람도 함께 연계되어 있어 걷기 여행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 남해 바래길 14개 코스 중에서 열세 번째 코스인 이순신 호국길은 과거 400여 년 전 충무공의 호국정신과 역사의 숨결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남해 이순신 호국길을 걷다

남해 자연 속으로 다가가니 공기 맛부터 다르다. 비로소 마음껏 숨 쉬게 한다. 여름 햇살 속의 남해는 산과 들과 바다와 호국의 길이 조화를 이루어 한꺼번에 맞아준다.

남해에 들어서 차를 타고 달리다가 멈추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위 물목에 V자형으로 설치된 '죽방렴'은 고기를 잡는 이곳만의 특별한 방식이었다. 참나무 말목을 박고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 세워 물이 빠진 후 갇힌 고기를 잡아 올린다. 이렇게 잡는 고기는 상처도 없고 조수간만의 빠른 물살에 적응해서 육질도 담백하고 쫄깃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쫄깃하고 맛있는 죽방멸치를 잡아올리는죽방렴이 평화롭다.
 쫄깃하고 맛있는 죽방멸치를 잡아올리는죽방렴이 평화롭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죽방렴은 남해 12경 중 하나다. 문화재청의 명승 71호 및 생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지족해협에 23개가 보존되어 있다. 이런 고유의 전통 어업 방식으로 잡는 죽방 멸치는 믿고 찾는 으뜸 상품이다. 거리 곳곳에 죽방멸치를 파는 가게가 보였고 멸치회, 멸치 찜, 멸치쌈밥 거리 등 죽방멸치를 이용한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은근히 미각을 자극한다. '오늘 밥상은 멸치 요리다' 마음 속으로 메뉴가 정해진다.

남해 노량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의 사당 충렬사가 자리 잡고 있다. 노량해전의 승리로 7년간의 임진왜란이 끝을 냈지만 이 전투에서 왜적의 흉탄을 맞고 쓰러진 것이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고 한 후 죽음을 맞이한 당시 나이 쉰넷이었다.

이곳은 1958년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자리다. 바로 그 자리에 사당을 짓고 잠시 머물렀던 곳에 가묘를 조성했다. 우암 송시열이 추도사를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 비(碑)가 세월 속에 있다.  
 
충무공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곳, 사당 충렬사
 충무공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곳, 사당 충렬사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충렬사에서 시작되는 남해 바래길의 명칭은 생명길과 연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옛날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추어 갯벌에 나가 바지런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을 뜻하는 남해 사람들의 토속어다. 그때 다니던 길을 바래길이라고 한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이런 노래가 떠오르는 길이다.

어머니의 발걸음마다 애타는 마음과 눈물이 고였던 바래길을 걷는다. 이 뿐 아니라 바래길을 걷다가 듣는 신비로운 전설과 어촌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남해 바래길 13길(남파랑 46코스)를 걷는다. 바래길은 이순신 순국공원으로 이어졌다.
      
남해 바래길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에 선정된  남해군 해안의 특별한 자연환경을 가슴에 담으며, 즐겁게 걷는 10개 코스에 총 128.5km 거리이며 44시간이 소요되는 도보여행길이다. - 안내문 가운데  
  
바다를 가로지른 웅장한 노량대교가 마을에서도 산에서도 늘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가로지른 웅장한 노량대교가 마을에서도 산에서도 늘 눈에 들어온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걷는 길마다 충무공의 훈시 정렬이 잘 되어 있어서 저절로 읽어보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는 물론이고, '차승약제 사즉무감(此讎若除死卽無憾) 이 원수 모조리 무찌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등의 말씀을 남해 바래길 13코스를 걷는 내내 볼 수 있다. 걸으며 좋은 말씀을 마음에 새길 기회다. 역시 우리들의 불멸의 영웅과 함께 하는 호국 길이다.    

모내기를 마친 논과 밭을 지나고 산길을 오르고 평화로운 어촌마을을 지나며 어민들과 인사도 나눈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늘 눈앞에 있고 바다내음 풀내음이 발걸음마다 이어진다. 갯벌에 던져진 듯 무심한 돛배가 긴 밧줄에 매어져 물이 차오르면 바다로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바닷길에서 반기는 들꽃과 들풀은 덤으로 기쁨을 준다.
 바닷길에서 반기는 들꽃과 들풀은 덤으로 기쁨을 준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노량대교와 남해대교의 우뚝 선 모습이 어디서든 눈에 들어온다. 남파랑 46길을 걷다 보면 물이 빠진 갯벌도 지나고 바다 건너편의 화력 발전소와 광양제철소도 멀리 보인다. 햇볕 쏟아지는 뜨거운 갯벌 위로 바다새가 날고 있다. 보기만 해도 뜨겁지만 헉헉거리며 걸을수록 마음속엔 단단함이 생겨난다.     

바람조차 후끈했는데 숲길로 접어드니 시원하다. 땀 한 바가지 쏟다가 나타나는 짧은 몇 미터의 그늘로 고마움이 방언처럼 터져나온다. 걷기 좋게 매트가 깔려 있는 숲길을 지나고 마늘밭을 지난다. 보랏빛 탐스러운 마늘 꽃을 처음 본다. 소박한 꽃 무더기가 또 다시 기쁨을 준다. 마늘 꽃 너머로 남해 바다가 반짝인다.   
 
힐링을 느끼며 호젓하게 남파랑길을 걷다.
 힐링을 느끼며 호젓하게 남파랑길을 걷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뜨겁던 날의 남해 바래길 13코스

긴 길은 아니었지만 땡볕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다. 안경 속으로도 땀이 흘러서 앞이 보이지 않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야 했다. 다행히 길이 거칠거나 험하지 않고 대체로 완만해서 큰 어려움은 없다. 날씨가 더웠지만 이 또한 내게는 걷기에 굳이 필요한 요소다.

역사의 숨결도 느껴보며 인내심 부족을 단련시키기 위한 스스로의 채찍이기도 하다. 청정 자연 속에서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는 걷기 여행의 가치를 얻는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온 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마음은 개운하다. 그리고 뿌듯하게 가슴에 차오르는 건 이게 행복감인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풍경 중에서 남해는 여전히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 땅의 한결같은 모습과 체취를 그대로 간직한 느낌이 편안하다. 그곳엔 청정한 바다와 바람이 늘 거기 있다. 또한 조용한 해안가와 산천의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가 가슴 설레게 하는 노을이 있다. 소소함과 다채로움이 공존하는 남해다. 훌쩍 떠나 홀로이 심신을 다스리고 싶을 때 남해가 생각날 것 같다.
 
△남해 바래길 13코스(이순신 호국길) : 남해 충렬사-1.5km-감암위판장-1.7km-월곡항-3.0km-차면항-0.9km-이순신영상관-0.1km-관음포 이순신전몰유허 7.2km // 소요시간 2시간 30분.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055-863-8778)
  
'빠를수록 삭막해 집니다. 느리면 느릴수록 행복해 집니다. 남해 바래길은 삶의 제안입니다.' 바래길의 말을 새겨본다.
 "빠를수록 삭막해 집니다. 느리면 느릴수록 행복해 집니다. 남해 바래길은 삶의 제안입니다." 바래길의 말을 새겨본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간 김에 조금 더 보기 & 맛집
 
붉은 지붕으로 잘 정돈된 독일마을 앞으로 남해 바다가 시원하다.
 붉은 지붕으로 잘 정돈된 독일마을 앞으로 남해 바다가 시원하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남해를 생각할 때 아마도 독일 마을을 떠올릴 수 있다. 1960년대 초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돈을 벌러 떠나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분들이 벌어들이던 소중한 외화가 우리나라의 경제건설의 바탕이 되었다.

그 후 기적처럼 개발도상국이 되었고 그 종잣돈의 주역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모여 사는 곳이 남해 독일마을인 것이다. 전통방식의 소시지나 맥주를 맛보고 이국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이곳에는 파독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 있다. 가난극복을 위한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흘린 땀과 눈물,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지하 100미터 아래서 배웠다. 끝나지 않는 어둠은 없다는 것을."
"지금도 그때 받았던 봉급표를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 내 젊음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울다가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힘을 냈어요."


그분들의 역사와 애환을 들여다보며 오늘의 우리를 되짚어볼 시간이기도 하다. 독일 마을로 오르는 초입에 자리 잡은 아주 오래된 숲 남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 300년이 넘는 숲의 역사에 걸맞게 1.5Km의 거대한 규모의 방풍림은 마을 주민들이 가꾸어낸 숲이다. 남해 바래길의 일부로 깊은 휴식을 제공하는 멋진 숲도 빠뜨릴 수 없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그윽하다. 해질 무렵 오래된 숲의 깊은 맛이 마음을 가라앉힌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그윽하다. 해질 무렵 오래된 숲의 깊은 맛이 마음을 가라앉힌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앵강만은 우리나라 해안선의 특징을 모두 품고 있다. 꾀꼬리 눈물이 강이 되었다는 꾀꼬리 앵(鶯), 물 강(江), 앵강만. 바래 2코스에서 만나는 남해군 이동면 신전숲과 산책길과 바다가 펼쳐져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름다운 해안가의 방풍림이다. 수백 년 나이 먹은 상수리나무 수백 그루가 멋진 자태로 숲을 이루고 연꽃단지와 생태관광단지가 만들어졌다. 30년 넘게 전투경찰·군부대가 신전숲에 주둔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신전숲 내에 다양한 체험시설과 숙박과 편의시설을 갖춘 앵강다숲마을이 되었다. 야생화가 자유롭게 피어난 숲길을 호젓하게 걷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을 듯하다(이곳은 바래길 2코스다).
 
죽방멸치 요리를 현지에서 맛보는 즐거움~
 죽방멸치 요리를 현지에서 맛보는 즐거움~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죽방렴 멸치의 고장 남해에 왔으니 당연히 죽방멸치 요리를 먹어야 한다. 멸치회가 나오고 멸치 쌈장이 뚝배기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밥도둑이다. 
*남해 사랑채  : 멸치쌈밥정식, 멸치쌈밥.

태그:#남해, #이순신, #남파랑길, #남해바래길, #걷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행에세이 - 잠깐이어도 괜찮아 -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