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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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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정갑영 전 총장이 지난해 10월 언론과 전화인터뷰에서 했던 '문재인 정부는 경제학원론과 싸우고 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정 전 총장이 부동산시장을 대상으로 했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공급 확대를 주장하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 집을 사려는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해서 가격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공급량을 줄이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은 그대로 두고 수요 측면에서 규제만 한다는 비판이다.  
 
정부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먹혀들지 않으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쓸 수 있는 모든 정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폭등하는 게 아닌가 하면서 그린벨트까지 풀 기세다. 문재인 대통령도 '발굴을 해서라도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라'는 지시를 내렸고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그린벨트 해제 발언까지 나왔으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지난 10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서도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도 포함했으니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기조로 방향을 잡았다.
 
주택공급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조건
 
공급을 늘리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야성적 충동, 심리가 크게 좌우하는 부동산시장에서 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꺾지 않고 저렴한 주택을 10만 채 공급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면 수십만 명의 무주택자들이 부동산 매매시장으로 뛰어들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판교 신도시, 검단 신도시 공급 발표가 집값을 더 폭등시켰던 기억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를 했는데도 왜 집값이 폭등했을까? 부동산시장에서 공급을 해도 가격이 오르는 건 두 가지 요인, 즉 넘치는 유동성과 부동산 불패신화가 맞아떨어질 때다. 
 
시중에 통화가 너무 많이 공급되어 유동성이 넘치는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집값이 뛸 것이라는 야성적 충동, 즉, 부동산 불패신화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공급은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된다.
 
 <빚으로 지은 집>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지음, 열린책들)
  <빚으로 지은 집>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지음, 열린책들)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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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대 석좌교수 아티프 미안과 시카고대학 석좌교수 아미르 수피는 유동성과 부채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손꼽히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유동성과 부채의 관점으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분석한 <빚으로 지은 집>에서는 유동성과 야성적 충동이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표현한다. 
 
"빚지는 것을 허용하면 집값은 낙관주의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액수에 결정된다."
 
초저금리로 시중에 넘치는 유동성과 빚을 내기 수월한 상황 속에서는 수요와 공급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낙관주의자, 즉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신화에 사로잡힌 이가 내고자 하는 금액에 따라 집값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판교 신도시, 검단 신도시 주택공급 발표가 집값을 폭등시켰던 기폭제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돈이 넘치는 상황에서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MB 정부는 반값아파트의 효과?
 
공급확대론자들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그린벨트를 풀어 보금자리주택 반값아파트를 대량 공급해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집값이 안정되었던 이유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발 금융위기, 2010년부터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 충격으로 글로벌 경제가 침체되어 있었던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대한민국은 참여정부 시절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대출 규제를 상당히 한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기도 했고, 이명박 정부도 경기회복을 위해 4대강 사업,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 대규모 건설사업을 일으켜 힘겹게 3% 조금 넘는 경제성장률을 만들어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변동추이
 한국은행 기준금리 변동추이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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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큰 이유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꾸준히 높이면서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 속에서는 부동산 투기심리가 작동하기가 쉽지 않다. 2010년 2분기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대폭 금리를 내렸지만 2010년 3분기부터는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유동성이 흡수되는 시기였다.

2010년 상반기까지는 세계경제위기로 인해 부동산 투기심리가 살아나지 못하고, 거기에 더해 2010년 하반기부터는 기준금리 상승으로 유동성이 흡수되는 국면이 되면서 부동산 투기심리는 더욱 살아나기 어려웠다. 설혹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을 공급하지 않았더라도 집값 상승은 일어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오히려 하우스푸어가 문제였던 시기였다. 하우스푸어가 언론을 도배하는 상황 속에서는 사람들이 주택매매시장으로 뛰어들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그 시절은 공급한 주택도 다 팔리지 않아 미분양에 전전긍긍하던 시기였다. 공급이 많아서가 아니라 경기침체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없었고 대출금리 부담으로 인해 시세차익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던 시기였다. 공급이 핵심변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무주택자든, 1주택자든, 다주택자든 모두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신화에 빠져있는 상황 속에서 공급 확대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바닷물에 생수 한 병 부어서 바닷물에 염분을 빼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전체 380여만 가구 중 자기 집이 있는 가구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린벨트든, 도심용적률 완화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지가 좋은 곳에 20만 채 공급한다고 가정해보자. 7·10 정책에서 발표한 대로 1주택 내집 마련 실수요이니 취득세도 없애고, 대출규제, 소득요건 등을 대폭 완화한다고 해보자.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지 않은 이상 10만 채를 공급하면 집이 없는 200만 여 가구 중 수십만 가구의 무주택자들이 부동산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라 대출이자 부담도 없고, 1주택 실수요자라 소득이 낮아도 대출을 많이 해준다고 하는데 청약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10만채 중 한 채를 분양받지 못하더라도 부동산 매매시장에 한 번 진입한 사람은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지 않는 이상 빠져나가지 않는다.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꺾이지 않는 이상 부동산 매매시장은 개미지옥과 같은 곳이다. 들어오기는 쉬워도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다.
 
시장 참여자들의 머리 속에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다',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각인되어 있다면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200만 호 건설 수준의 파격적인 공급을 하지 않고서는 공급이 수요을 따라잡을 수 없다. 
 
지금은 특히 참여정부 시절처럼 유동성이 넘치고, 부동산 불패신화가 강화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을 수만 채 공급한다고 부동산 투기심리가 꺾일 수 없다. 

부동산 투기심리를 꺾는 주택 공급 방식
 
공급은 중요하다. 주택공급이 시급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그린벨트를 풀고, 도심 용적률을 높여서라도 주택을 공급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부동산 시세차익을 기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의 공급이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지만 임대주택 한 채당 1억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기에 부담이 크다면 대출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주택분양 시 정부지원대출을 의무화해 대출비율만큼 추후 발생할 시세차익을 환수하는 방식의 지분공유·수익공유·손익공유형 모기지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신혼희망타운에는 수익공유형 모기지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목 좋은 곳에 공급하며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어 주변시세의 60~80%로 공급되고 있기에 일단 당첨만 되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로또분양을 방지하기 위해 수익공유형 모기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신혼희망타운에 분양되는 주택 중 2억9400만원 이상의 주택은 무조건 30% 이상의 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비율만큼 추후 대출금을 완납하거나, 주택 매각을 할 때 거주기간과 자녀수에 따라 발생한 시세차익의 10~50%를 정부가 환수한다.
 
현행 수익공유형 모기지제도는 대출비율과 시세차익을 환수하는 비율이 낮긴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대출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시세의 50% 이상 무조건 수익공유형 대출을 사용하고, 대출비율만큼 시세차익을 환수한다는 조건을 신규주택 공급 시 내건다면 시세차익을 기대하며 들어오는 이들은 상당히 걸러낼 수 있다.
 
수익공유형·손익공유형·지분공유형 대출제도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나온 아이디어라고 망설일 것 없이 부동산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도는 내편, 네편 가리지 않고 국민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취한다는 국민통합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현재 신규아파트가 공급되는 청약시장은 다주택자가 들어갈 구멍이 없다. 무주택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이긴 하지만 여기에서도 여전히 부동산 시세차익은 존재한다. 지금처럼 부동산 불패신화가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청약시장에서 시세차익을 환수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 방식의 공급은 집값을 폭등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핵심은 토지불로소득이다. 1주택자 중심의 분양시장에서도 시세차익,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여 부동산 투기심리를 꺾는 방식의 공급이 일어나지 않으면 공급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된다. 지금은 묻지마 공급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심리를 꺾는 공급이 필요하다.

태그:#수익공유형 모기지, #지분형 주택, #공급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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