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기 힘든 풍경이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실적이고 익숙한 판타지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반도> 연상호 감독 홍보 인터뷰 중에서)

이쯤 되면, 성공이다. 한국판 아포칼립스 장르를 표방한 <반도>는 규모나 볼거리 면에서 전작 <부산행>을 훌쩍 뛰어넘는다.

<부산행>이 한정된 공간에서의 액션 아이디어가 중요했다면, <반도>는 동시대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을 그럴싸하게 그리는 게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스크린에서 만나는 서울 오목교 인근의 광경은 일반적인 재난 영화 속 풍경과는 달리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시각적 재미를 선사한다. 이를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간만 약 10개월이 걸렸다고.

<반도>는 소리엔 민감하지만 어두워지면 앞을 못 보는 좀비를 피하기 위한 시간적 제약에 근거, 주로 밤 시간에 주요 사건이 펼쳐진다. 이런 배경과 함께 '<부산행> 그 후 4년'이란 설정에 충실하기 위해 홍수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들이 휩쓸고 간 도심 풍경이란 점을 감안하는 것도 <반도>의 화면 구성을 만끽하는 팁이 될 터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낯익은 거리가 이렇게 폐허가 될 수 있구나라고 놀라실 것"이라는 정황수 VFX 슈퍼바이저의 자신만만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또 하나, 좀비의 외양 역시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흥미롭다.

"<부산행>의 좀비들이 감염된 지 얼마 안 되어 팔팔했다면, <반도>의 좀비들은 폐허가 된 땅에서 오랫동안 지내 노후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 그래서 흙투성이가 되고 지저분한 외형의 좀비가 탄생하게 되었다." (연상호 감독)

세심하게 구현된 KTX 열차 세트가 눈길을 끌었던 <부산행>과 달리 <반도>는 컴퓨터그래픽의 비중이 월등한 작품. 이를 <대호>의 '호랑이 크리쳐'로 인정받고, 이후 중국에 진출했던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가 전체 분량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컴퓨터그래픽을 책임졌고, 250여 명의 VFX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반도>는 한국영화에서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20여 분여의 카체이싱 장면을 야심만만하게 펼쳐낸다.

이와 함께 600여 평 규모의 631부대 세트나 연 감독이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클라이맥스의 인천항 장면 역시 <반도>의 대규모 볼거리 중 하나다. 한 마디로, 아이맥스나 4DX 상영관 관람료가 아깝지 않을 때깔이라고 할까.

강동원과 이레, 그리고 구교환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강동원의 눈빛이 너무 좋아서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연상호 감독의 애정(?)고백처럼, <반도>는 <인랑> 이후 강동원의 복귀작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미 전작들에서 액션 연기에 친숙했던 만큼, '잘생김'을 연기할 필요 없는 강동원의 눈빛과 액션은 <반도>의 또 다른 볼거리다. 

특히 앞서 할리우드 영화 <쓰나미 LA>의 캐스팅 소식을 알렸던 만큼, 영화 초반부 등장하는 강동원의 영어 연기는 수준급이라 할 만하다. <반도>의 사전 제작기간 동안 LA에 머물렀던 강동원은 연 감독과 화상통화를 통해 시나리오 회의를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부산행>에 마동석이 있다면, <반도>에는 이레가 있다. 이레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행운이었다." (연상호 감독)

이처럼 <반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가 바로 이레가 연기한 준이다. 괄목할 만한 SUV 운전 실력으로 좀비 떼를 쓸어버리는 준이는 카 체이스 액션이 주를 이루는 <반도>의 액션 히어로라 할 수 있다.

준이를 연기한 2006년생 배우 이레는 2013년 이준익 감독의 <소원>에서 성폭력 피해 아동을 연기하며 데뷔, 이듬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이끌어가는 지소를 맡아 빼어난 연기를 자랑한 바 있고, 이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영화 <오빠생각>,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목소리 연기를 거쳤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운전 연기를 연습했다는 이레는 <반도>를 통해 향후 성인 연기자로서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른바 '미쳐버린 사람들'의 두 '빌런' 중 한 명인 (일본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631부대의 서대위를 연기한 구교환 역시 눈길을 끈다. 언론 시사 당시 "이렇게 큰 무대가 처음이라 떨린다"던 구교환은 그간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남우상을 안겨준 <꿈의 제인>을 필두로 독립예술영화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배우다.

2013년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란 28분짜리 단편영화에서 각본, 감독, 제작, 미술, 편집, 주연을 도맡고, 이후 여러 편의 중단편 영화를 이옥섭 감독과 공동연출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능력을 자랑하는 구교환은 <반도>에서 꽤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서대위 역할을 무리 없이 연기했다.

향후 <반도>가 해외에서 흥한다면, '한국의 조커'란 별명을 얻을 수 있을 만큼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이렇게 눈에 띄는 세 배우 외에도 최고참 권해효부터 이정현, 김민재, 김도윤, 그리고 아역배우 이예원까지, <반도>의 배우들 모두 안정적인 연기를 자랑한다. 

<부산행>의 바통을 이어 받아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한국영화가 개봉했을 때 전세계에서 다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배우로서 뭘 할 수 있나,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사실 애국심이 되게 강하다. (웃음)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더 생기더라. 미국에서 일하면서 한국이 정말 큰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 <기생충>이 상 받을 때는 심지어 나한테도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버닝> 개봉했을 때도 왜 나보고 저거 안 찍었냐고 묻더니, 이번에는 왜 <기생충>을 안 했냐고… 내가 한국영화를 다 찍는 게 아닌데. (웃음) 이번에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초청받은 연상호 감독의 좀비영화에 네가 나오는 것이냐며 미국에서 이메일로 축하를 많이 받았다. <반도>로 드디어 칸국제영화제에 가보나 했는데 정말 운도 지지리 없다. (웃음)" (강동원, <씨네21> 1236호 '커버' 인터뷰 중에서)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칸 레드카펫은 밟지 못했지만, "애국심 강한" 강동원이 <반도>로 해외에서 연락을 받을 기회는 적지 않을 듯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부분적으로 초청작을 공개한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반도>는 이미 185개국 선 판매를 확정했고, 일부 아시아 국가는 한국 개봉과 동시기 개봉 일정을 조율 중이다.

한편 컴퓨터그래픽 등 특수효과 비중이 높은 만큼 예산 또한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 터. 이를 통해 160억가량의 순제작비 중 일정 수익을 회수했고, 그로 인해 국내 개봉시 손익분기점 역시 250만 명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부산행>은 전 세계 156개국에 선판매 된 바 있고, 전 세계 기준 9천 2백만 달러(박스오피스 모조 기준)의 수익을 올린 바 있다. 이를 뛰어 넘어 전 세계185개국에 선판매된 <반도>가 전작의 해외 성적을 뛰어넘을지도 관심사다. <부산행>의 경우, 2억 5천만 달러를 넘게 번 <기생충> 개봉 전까지 해외 흥행 1위를 달린 바 있다. 

"코로나로 전세계, 특히 영화계가 힘든 상황이다. 전세계 동시 개봉을 준비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아쉽게 됐다. 사실 마블 시리즈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세계 동시 개봉이라는 게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선판매돼야 하기에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반도>는 각국에서 선구매했고 국내 개봉에 맞춰 마케팅과 개봉을 준비하려 했으나 나라별 상황이 다르다 보니 힘들어졌다. 홍콩, 대만 등 몇몇 국가에서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것 같다." (<반도>의 제작자인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무비스트> 인터뷰 중에서)


오는 15일 개봉을 앞둔 <반도>의 실시간 예매율(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은 12일 오후 4시 현재 71%까지 치솟은 상황. 전작 <부산행>이 1157만1432명을 동원했다. 당시만 해도 좀비물의 흥행에 반신반의했던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제는 다르다. 'K-좀비'물이 국내외로 각광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가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한국 영화계의 활력을 불어 넣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반도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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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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