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유물의 저주>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치매는 완치가 어려운 병이다. 약물을 복용하면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서서히 기억을 잃어간다. 단어를 잊어버려 말을 잃고 서서히 자신까지 잃어버리는 슬픈 병이다. 기억은 가장 최근 것부터 사라지고 먼 기억만 희미하게 남는다. 그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랑했던 가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돌봐주어야 하는 아이만 남게 된다. 최근 디지털 기계의 범람으로 디지털치매가 젊은 층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치매를 꼭 노인만의 질환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가족력이 높은 병이기도 하다.
영화 <유물의 저주>는 <유전>을 잇는 하우스 호러를 표방한다. 빠른 템포로 오감을 자극하는 공포가 아닌 차곡차곡 쌓아가는 점진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현대적 소재인 치매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가 할머니, 딸, 손녀 3대를 휘감고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에드나를 연기한 로빈 네번과 딸 케이(에밀리 모티어), 손녀 샘(벨라 헤스킨)로 전해지는 여성 가족의 이야기다. 나탈리 에리카 제임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2020년 선댄스영화제에 첫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유령의 보다 무서운 치매를 공포로 녹여내
▲ 영화 <유물의 저주>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근 일이 바빠 혼자 사는 엄마를 찾아뵙지 못한 케이는 엄마의 실종 소식을 듣고 딸 샘과 시골집을 찾는다. 하지만 오래된 고향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고, 벽에는 메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좀처럼 사태 파악이 힘들다. 예전과 너무나 달라진 집안 풍경, 엄마가 이렇게 오래 집을 비운 적은 없기에 더욱 걱정이다 커진다.
며칠 후, 엄마는 흙투성이가 된 채 돌아왔지만 지난 며칠을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사라진 적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하는 엄마. 케이는 엄마가 치매를 앓고 있음을 깨닫고 고향집에 2주 동안 남아 좀 더 지켜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엄마의 피 묻은 옷, 멍 자국, 이상한 소리 등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알 수 없는 기운이 집안 전체를 잠식하며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영화 <유물의 저주>는 치매를 앓는 본인과 돌보기 힘든 가족의 이야기를 호러 장르와 결합해 가족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치매가 대를 이어 유전되는 과정이 저주가 된다. 무엇보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을 호러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인 악령, 괴물, 살인마가 아닌 노화, 질병, 외로움, 죽음, 죄책감에서 찾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에 맞서 모녀 삼대는 그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연대한다.
전체적으로 천천히 진행되는 서사의 구조상 오랜 시간에 걸쳐 정신과 몸을 좀 먹는 치매를 온전히 경험해 볼 수 있게 한다. 불길한 존재에 대한 공포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커지는 외로움이란 일상의 공포가 서늘함과 서글픔을 동시에 안긴다.
▲ 영화 <유물의 저주>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원제 'Relic'은 유물이라는 긍정성 보다 퇴물이라는 부정적 요소로 해석된다. 혼자 남겨진 노인의 외로움과 기억의 퇴화가 무너질 것 같은 유물(집) 안에서 맴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간다.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나이 듦 앞에서 실낱같은 가족의 끈을 발견했다면 그나마 희망적이라고 보아야 할까. 영화는 그 답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그 슬픔이 오랫동안 가슴속에서 잔류하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무서운 장면 없이도 충분한 공포감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