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7 07:58최종 업데이트 20.07.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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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공개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 ⓒ CDC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 4월 29일자 기사 '왜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렇게 혼란스러운가'(Why the Coronavirus Is So Confusing)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린아이에게 이 팬데믹을 뭐라고 설명하겠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대답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공식적으로 10만 명을 넘어서던 3월 27일 백악관 브리핑에서의 일이다.
 
이걸 세균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독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이걸 아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거죠. 이게 대체 뭔지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기사는 이어 '그것은 백악관에서 나왔던 가장 중차대한 말도, 최악의 말도 아니지만, 아마 가장 모순적인 말일 것이다. 엄청난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팬데믹에서, 전문가들이 정확히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관련 병원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스 바이러스와 가까운 SARS-CoV-2라는 바이러스다'라고 적고 있다.

원인 불명의 폐렴 증상과 확인되지 않은 사망률 등 베일에 싸인 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을 당시 유일하게 알려진 것은 이것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한 종류라는 것이었다. 6개월이 넘는 시간, 파도타기하듯 세계 곳곳으로 퍼져간 이 바이러스는 7월 14일 공식집계된 확진자 수만 총 1300만 명을 넘어섰다. 


새로 등장한 바이러스의 특성을 이해하는 일은 온전히 자료수집과 분석, 모델링 등을 통해서 가능했고, 그런 만큼 전세계의 연구자들은 바빠졌다. 전례 없이 빠른 자료수집과 분석, 그리고 그 결과의 공유를 통해, 우리는 이 바이러스가 매우 빠른 전파력과 꽤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는 것, 노인들과 비만이나 당뇨, 호흡기 질환 등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히 치명적이라는 것, 아무런 증상도 없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환자들이 꽤 많다는 것 등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다. 상충하는 결과들이 발표되거나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혼란을 야기한 적도 더러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방대한 관찰 결과들이 모여 합의된 이해로 나아가고 있다. 

 

스페인의 행정구역별 항체 침투율 7월 6일 <란셋>에 실린 스페인 항체 연구가 발표한 행정구역 단위로 집계한 항체 침투율이다. ⓒ 스페인 과학기술부

 
드러나는 사실

최근에는 스페인에서 1075명에게 형성된, 현재까지 가장 큰 규모의 코로나19 항체 연구 결과가 의학 저널 <란셋>에 발표돼 CNN, BBC, 로이터 통신 등 전 세계 매체들이 그 내용을 보도했다. 

스페인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은 유럽 국가 중 하나다. 갑작스럽게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던 2월 말-3월 초 옆나라 스페인에서도 빠른 속도로 확진자 수가 증가했고, 몇 주 만에 이탈리아를 앞서기 시작했다. 3월 중순 국가 위기 상황을 선포한 스페인 정부는 이후 거의 두 달여 간 국가 봉쇄를 단행했다. 불가피한 출근이나 장보기 외에는 산책마저 철저하게 금지하는 금족령과 같았던 봉쇄 전략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4월 말로 접어들면서 확진자 수 증가세가 더뎌지면서 5월 중 단계적인 봉쇄 해제에 들어갔다.

발표된 코로나19 항체 연구는 스페인 정부의 지원 아래 전국적으로 진행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3차에 걸쳐 진행될 항체 검사 계획의 첫 번째 분석 결과다. 스페인에서 확진자 증가세가 정점을 찍고 하향세로 돌아서는 무렵이던 4월 27일에서 5월 11일 사이 스페인의 모든 주와 시를 대상으로, 연령층과 성별, 소득 수준을 대표할 수 있는 6만여 명의 거주자들을 무작위로 선택해 진행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항체 연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료 종사자들이나 특정 도시에 제한되었던 연구들에 비해 일반성을 띤다. 더불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항체 검사 방식을 사용해 교차 검증의 효과도 있다.

항체 검사는 '이미 코로나19를 앓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될 것이다'는 가정에 기반하는 만큼, 그간 공식 집계에 감지되지 않은 실제 침투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것을 가장 큰 질문으로 한다. 결과에 따르면, 침투율은 약 5%대다. 이것은 스페인의 인구 4700만 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235만 명가량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것으로, 5월 11일 기준 27만 명에 달하던 누적 확진자 수의 8~9배 수준에 달하는 것이다. 물론, 그간 모델링을 통해 실제 스페인 거주자들 사이의 침투율을 적어도 10% 이상으로 유추하던 연구들에 비해서는 훨씬 낮다. 

외신에서 이번 연구를 보도하면서 강조한 것도 '코로나19 침투율이 가장 높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던 스페인마저 5%대라는 결과'라는 것이었다. 백신 개발이 언제 완료될지 알 수 없는 만큼, 주기적으로 언급되어 오던 집단 면역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5월 11일 기준 스페인의 공식 코로나19 사망자가 2만 6천 명을 넘었는데, 도출된 숫자를 그대로 대입하면 집단 면역에서 기대하는 인구의 60% 이상 면역은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야기한 뒤에나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사이 의료 체계가 완전히 마비되고 사회적으로 혼란이 오게 될 것이 자명하다. 백신이나 그에 준하는 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와 같은 수칙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방역에 충실하고, 최대한 지역감염의 폭발을 막는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5%는 스페인 전체 평균이다. 바다에 맞닿아 있는 지역들이 3% 전후인 데 비해 마드리드 지역과 같이 감염 폭발이 심했던 지역들은 10% 이상 올라간다. 스페인 제 2의 도시 바르셀로나도 7% 안팎으로 나왔다. 전체 성별 비교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 5% 수준으로 차이가 없었다. 사망률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훨씬 높다고 보도되던 것에 비해 침투율 자체에는 성별 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연령대별 비교에서는, 검사방식에 따라 성인들은 연령대별 차이가 크지 않거나 65세 이상의 경우 조금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고,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그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세에서 9세 사이의 아이들은 3% 수준의 침투율로 계산되었는데, 이것은 같은 조건에서 성인에 비해 어린아이들의 감염 비율이 훨씬 낮다는 것이라고 연구진들은 해석하고 있다. 

도시의 크기 비교를 보면, 인구가 10만 명 이상인 큰 도시들의 침투율이 그보다 작은 도시들에 비해 눈에 띄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밀집도가 높아지면 감염이 높아진다는 전반적인 예측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가구원의 수가 많아지는데에 따른 일반적인 상관 관계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예측 가능하다시피, 확진자나 확진되지 않았더라도 증상이 있는 사람과의 접촉 반경에 있었던 사람들은 함께 살고 있는 경우와 따로 살고 있는 경우 모두 침투율이 현저히 높아졌다.

코로나19가 이렇게 폭발적인 감염력을 가진 데에는 무증상 환자들의 '조용한 전파'가 일조했다는 보도도 많았다. 그간 발표된 연구들에서 무증상 환자의 비율은 4%대부터 41%까지로 예측되는 등 수치의 간극이 컸다. 이번 연구는, 항체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들 중에서 30%가량이 무증상이었던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는 상당한 비율인데, 연구진은 이것을 '적게는 37만 명, 많게는 100만 명의 사람들이 증상이 없어 감염을 전혀 모른 채 지나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7월 14일 현재 스페인의 누적 확진자 수가 30만 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수치인지 실감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스페인 국적자들과 외국인들의 침투율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또, 소득 구간에 따른 비교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그간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여러차례 불거졌던 계층 간 코로나19 침투율 편차의 심각성에 대한 보도들과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수치들만으로 스페인에 계층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식의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실제로, 미국·독일·영국 등에서 문제가 되었던, '도축 공장'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작업환경의 가난한 노동자들 사이의 감염 폭발은 스페인에서도 예외 없이 보도된 바 있다. 다만, 이 연구 결과가 코로나19가 미친 계층별 영향의 심각성이나 양상이 나라별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드리드 도심에 투입된 스페인 공수부대원 (마드리드 EPA =연합뉴스) 스페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민들에게 2주간 외출 자제를 요구한 가운데 수도 마드리드 도심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공수부대원들이 배치돼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폭발적 감염 또 일어날라

현재 스페인은 다시 확진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미 부분 봉쇄에 들어간 곳들도 있는 상황이다. 예로,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두 시간 떨어진 도시 레이다는 지역 감염이 감지된 지난 일주일간 단계적으로 도시가 봉쇄되고 며칠 뒤에는 산책도 제한하고 집에 머물게 하는 수준으로 봉쇄 수준이 높아졌다. 바르셀로나도 계속 증가 중이라고 보도되고 있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곧 봉쇄로 돌아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져있다.

불과 몇 주 전에 10월쯤 다시 파도가 올 수 있다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최근 분위기로는 여름 중 이미 도래해도 놀라울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스페인 정부는 최근 야외에서도 무조건 마스크를 쓰도록 지침을 바꿨다. 아직까지 스페인은 슈퍼마켓과 같이 밀폐된 곳에서만 마스크를 필수로 하고, 야외에서는 거리두기와 함께 마스크는 권고사항으로 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야외에서도 마스크가 없으면 벌금형을 받게 됐다.

바야흐로 여름, 예년이라면 유럽 내에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는 시기다. 스페인의 각 도시가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한창 붐빌 시기다. 물론, 관광이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스페인인 만큼 정부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애쓰는 상황이지만, 동시에 코로나19의 지역 감염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유럽 각국이 해외여행을 가능한 한 자제하게 하고 있는 분위기인 만큼 여름 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두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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