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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자전(康熙字典)』에 우리 한자독음 방식이 나온다?

중국의 최대 자전(字典), 한자사전인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지금 우리의 한자 독음 방식이 그대로 나온다.

예를 들어, '학(學)' 자는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쉐(xue)'이다. 그런데 이 글자를 『강희자전』에서 찾아보면 그 발음에 대하여 '唐韻, 胡覺切'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의미는 "'學'의 당나라 시대 발음은 '胡'의 첫머리 발음과 '覺'의 발음 중 첫머리 발음을 제외한 부분을 연결시켜 읽는다"는 뜻이다. 이를 현대의 중국어 발음으로 이해하려면 불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한자 독음이 절대적으로 유용하다. 즉 '호(胡)'의 'ㅎ'과 '각(覺)'의 'ㄱ이 빠진 각'을 연결시키면 '학'으로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당나라 시대에는 중국인들도 이렇게 발음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쑤(su)'인 '속(束)'자의 발음은 『강희자전』에서 '당운(唐韻)의 書玉切'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書의 첫머리 발음과 玉의 발음 중 첫머리 발음을 제외한 부분을 연결시켜 읽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정확히 '속'이라는 발음으로서 현재의 우리 한자 독음과 동일하다. '격(激)' 역시 『강희자전』에서 당운이 '吉歷切'로서 현재의 중국어 발음인 '지(ji)'와 전혀 상이하고 우리의 한자 독음인 '격'의 발음으로 정확하게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이것이야말로 한자를 우리 민족이 만들었다는 증거라고 강변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현재 한자 독음 방식이 당나라 시대에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당나라와 교류가 잦았던 신라로 전래된 뒤 그 원형이 거의 변함없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반해, 정작 중국에서는 기존의 발음에서 받침이 없어지고 혀를 말아서 발음하는 권설음화(捲舌音化)의 경향이 많아지는 등 크게 변화하였다.

이백과 두보는 자신들의 시를 우리 한자 독음으로 읊었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이태백(李太白)과 두보(杜甫)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대시인이다. 그런데, 이백과 두보는 자신들의 시를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자 독음 방식으로, 최소한 거의 유사한 발음으로 읊었다. 믿기 어렵지만, 이는 사실에 부합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도록 하자.

중국 고대의 오언시(五言詩)나 칠언시(七言詩)에서 제1, 제2, 제4 구(句) 마지막 글자의 음은 압운(押韻) 혹은 각운(脚韻)을 반드시 맞춰야 했다. 그래서 그 발음(韻)이 같아야 했고, 당시 이러한 규칙은 엄격하게 지켜졌다.

이백이 지은 유명한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이를 살펴보도록 한다.

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 시에서 압운은 '산(山)', '한(閑)', '간(間)'의 세 글자이고, 이것을 현대 중국어로 읽으면 각각 'shan(샨)', 'xian(시엔)', 'jian(지엔)'이다. 동일 범주의 발음으로 간주하기에는 어쩐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의 한자독음으로 읽으면 각각 '산', '한', '간'으로서 운이 '-an'으로 정확히 일치하고 그래서 압운도 정확하게 맞게 된다.
우연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이백(李白)의 시「추포가(秋浦歌)」를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白髮三千丈 離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위의 시에서 압운은 '장(丈)', '장(長)', '상(霜)'의 세 글자다. 이것을 현대 중국어로 읽으면 각각 'zhang(장)', 'zhang(장)', 'shuang(솽)'이다. 동일한 범주의 발음으로 보기에는 어딘지 좀 어색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한자독음으로 읽으면 각각 '장', '장', '상'으로서 운이 '-ang'으로 정확히 일치하게 되고 그리하여 압운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게 된다.

우리의 한자 독음 방식은 당나라 시대 전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 중국어는 당나라 등 고대의 중국어와 달라졌을까? 예를 들어, 현대중국어 발음에서 많이 출현하고 있는 권설음(捲舌音) 발음은 원래 권설음이 많았던 북방의 몽골족이나 만주족 발음에서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잘 알다시피 몽골족은 원나라를 세우고, 만주족은 청나라를 개국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 바로 그 시기에 중국어는 권설음의 발음이 많은 몽골어와 만주어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중국어 발음은 원래 중국어 자체의 변화와 함께 북방민족의 영향이 수백 수천 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북방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즉 남부지역으로 갈수록 북방 민족 언어의 영향을 적게 받아 중국 고대의 원래 발음이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 남부의 광둥어(廣東語)에서는 '三'을 '삼'으로 발음하고, '學'을 '각'으로 읽는 등 우리의 한자 독음과 유사한 발음이 많고 받침(입성)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남방어에 해당하는 상하이어에도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고가도로'를 의미하는 '고가(高架)'는 표준 중국어로 '가오자-gaojia'이지만 상하이어로는 '고가'이다. 우리말과 완전히 동일하다. 상하이 교외에 위치해있는 '송강(松江)'이라는 지명도 표준 중국어 발음은 '쑹장-songjiang'이지만 상하이어로는 '송강'이다.

광둥어나 상하이어 등 남방어에서는 복모음의 발음이 거의 없이 우리의 경우처럼 단모음의 독음(혹은 발음)으로서 우리의 독음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또 우리가 식용하는 '가지'가 중국어로는 '치에즈-qiezi'이지만 상하이어로는 '가즈'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서진(西晋) 시대에서 동진(東晋) 시대로 되면서 상층 귀족들이 남쪽으로 피신하여 상하이, 양저우 등 장강(長江) 유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해당 지역에 이러한 발음들이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존 중국어 발음에 존속했던 'p', 't', 'k'의 발음은 송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현대중국어 발음은 계속 변화중

사실 현대 중국어는 계속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스웨덴(Sweden)을 'ruidian-瑞典'이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이 '瑞典'의 현대 중국어 발음은 '루이뎬'이다. '스웨덴'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발음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한자음을 그대로 읽어 지금도 스웨덴을 '서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서전 안경' 등의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들이 100년 전 근대 시기 중국이 서방 세계에 문호를 개방할 무렵 스웨덴이라는 발음에 맞춰 'S' 발음인 '瑞'를 사용하여 스웨덴의 국명을 표기해 놓고는 그 뒤 정작 자신들의 발음이 변화되어 현재와 같은 엉뚱한 발음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실제 『강희자전』에서 '서(瑞)'의 '당운(唐韻)'을 살펴보면 "是僞切"이고 그밖에 '정운(正韻)'도 "殊僞切"로서 모두 's' 발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스위스도 '瑞士'라고 표기하고는 'ruisi-루이스'로 읽는다.

남미의 '페루'를 지칭하는 중국어 국명도 이와 유사하다. 중국에서는 '페루'를 '秘魯'로 표기하고 'bilu-비루'라고 읽는다. 그런데 이를 '비루'라고 읽는 것을 제외하고 '秘' 자의 현대 중국어 발음은 모두 'mi-미'로 바뀌었는데, 사전에 따르면 옛날 발음은 'bi-비'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는 모두 우리의 독음과 비슷했던 중국어의 발음이 상이한 발음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구체적 증거들이다.

태그:#강희자전, #한자독음방식, #당나라, #압운, #이백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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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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