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오산 탱고> 포스터

영화 <카오산 탱고> 포스터 ⓒ ㈜영화사 그램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늘 과거를 돌아본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과거에 경험했던 어떤 기억을 꺼내 그것을 가만히 추억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낸다. 지금 현재의 공간을 살아가면서도 과거의 기억들은 문득 떠올랐다가 물이 흐르듯 서서히 빠져나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과거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즐거운 생각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아픈 과거를 떠올리며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픈 과거를 완전히 잊고 싶어 하지만 그 모든 기억들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종종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가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과거의 일들을 잊으러 가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추억을 다시 한번 느껴보려고 갔던 여행지를 방문하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어느덧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을 찾아 방콕을 찾은 주인공 지하
 
 영화 <카오산 탱고> 장면

영화 <카오산 탱고> 장면 ⓒ ㈜영화사 그램

 
영화 <카오산 탱고>는 태국 방콕, 특히 카오산 로드에 방문한 주인공 지하(홍완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사고로 형을 잃었다. 형과 형수가 사랑을 시작했던 카오산 로드에 방문하여 그 당시 그들이 처음 만나 같이 시간을 보냈던 장소를 둘러보던 지하는 한 숙소에서 하영(현리)을 만나 자신만의 추억을 만들어나간다. 

영화감독으로서 작품을 준비하는 지하가 방콕을 방문하게 된 건, 자신의 의지보다는 과거 형과 형수의 기억 때문이다. 방콕의 거리와 가게들을 방문하면서 형과 형수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곳에 어떤 특별함이 있지 않을지, 아직까지 형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극복할 답이 있지 않을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방콕을 방문하여 돌아다니는 지하는 사실 자신이 그곳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를 전혀 모른다.  

지하가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만들어가게 된 하영 역시 여행자다. 그는 여름엔 한국에서 보내고, 겨울은 따뜻한 태국으로 건너와 머무른다. 영화 내내 하영이 왜 그런 삶을 살고, 어떤 과거가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그저 지하의 시선에서 관찰되는 하영은 '현재'라는 시점을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지하가 '과거' 때문에 태국을 여행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하영은 그저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지하는 그런 하영의 삶을 계속 의심한다. 

현재의 여행에 충실한 하영과 함께 현재를 보기 시작하는 지하

어쩌면 여행이란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일지 모른다. 지하가 방콕 곳곳을 다닐 때, 영화가 비추는 거리의 풍경들은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숙소에서 누군가가 연주하는 음악이 흐를 때, 지하는 과거 형과 형수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 흑백의 과거 모습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는 지하의 모습은 그가 과거의 일에 여전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반면 하영은 음악을 들으며 그저 그것을 만끽한다. 현재에 흐르는 그 음악을 몸으로 느끼고, 반응한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은 묘하게 다른 분위기에 이끌린다. 그렇게 시작된 호감은 두 사람이 서로의 행동이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도 계속 만남의 여지를 이어나가게 만든다. 한 수상시장에 함께 갔다가 배를 탄 두 사람이 하는 대화에서 이 둘 간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하영은 '지하씨는 지금 뭐가 보여요'라고 여러 번 묻는다. 반면 지하는 '지금 이렇게 사는 거 행복해요?'라고 묻는다. 하영의 물음에는 그저 현재만이 포함되어있지만, 지하의 물음에는 현재의 삶의 행복에 대한 의심과 과거에 대한 의구심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장면 속 인물들의 질문이 두 캐릭터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사라고 할 수 있다. 

각자 그 질문을 서로에게 한 이후, 두 사람은 대립한다. 한 사람은 현재를 보고, 한 사람은 과거를 보며 신경 쓰기 때문에 두 사람의 충돌은 꽤 오랜 시간 이어진다. 싸우고, 말다툼 등의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나 지하는 상대방이 왜 화가 났는지 추측조차 하지 못한다. 무엇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사과를 할 뿐이다. 사실 하영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지만 그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상처 때문에 오히려 과거를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가 가진 삶의 태도에서 중요한 건 그가 여행에서 방문하고 상대방과 시간을 보내는 바로 지금이다.  

영화 내내 지하는 자신의 과거와 다른 사람의 과거를 듣거나 말하고 다닌다. 그가 수집하고 취재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 경험한 것들이다. 하지만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하영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그 과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많은 방법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 겪은 어떤 일도 지나고 보면 다른 감정으로 기억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거의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되 그것에 너무 얽매이거나 묻혀있을 필요는 없다. 영화 후반부, 지하와 하영이 일본인 부부들이 겪은 과거의 에피소드를 듣는 장면에서 그들은 과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꽤 즐거워한다. 그들은 과거의 일들을 들으며 같이 공유하지만, 결국 그것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건 현재다. 

결국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중요한 건 바로 현재
 
 영화 <카오산 탱고> 장면

영화 <카오산 탱고> 장면 ⓒ ㈜영화사 그램

 
우리의 삶 자체가 긴 여행이다. 그 여행을 하다 보면 무엇인가를 아주 오랜 시간 기다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기적 같은 일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카오산 탱고>는 삶이라는 긴 여행 속에 현재를 어떤 태도로 보내야 할지를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지하와 하영이 우연히 만나 잠시 여행의 동반자가 되면서 그들이 바라보는 풍경을 우리에게 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여행을 떠나기 전 나누는 대화에서 다시 묻는다. '지금은 뭐가 보여요?'. 그건 극 중 하영이 지하에게 여러 차례 묻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말미의 질문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제일교포 배우인 현리가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에 충실한 여행을 하고 있는 하영의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하고, 상대적으로 바보 같고 순진하지만 과거의 이야기에 빠져 현재를 모르는 지하는 배우 홍완표가 연기한다. 두 사람은 영화 속에서 꽤 흥미로운 조합을 보여주며 관객과도 밀당을 나눈다. 관객은 두 인물 사이에 어떤 사람에게 정을 줄지 고민하다 결국에는 두 인물 모두를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방콕의 풍경과 현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모든 풍경 배경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은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현재의 관객들이 다시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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