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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추행 신고한 직원, 되레 해고한 국립대
ⓒ 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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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상은 지난 2019년 전남대 산학협력단의 송년 회식 장면이 담긴 노래방 CCTV 화면이다. A과장(남)이 B직원(여)을 상대로 ▲ 어깨를 두 차례 눌러 의자에 주저앉히고 ▲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손을 잡아끌며 ▲ 어깨동무를 하고 얼굴을 만지는 행위 등이 영상에 담겨 있다.

사건 발생 3주 후, B직원은 A과장을 전남대 인권센터에 신고했다. 2016년 개소한 인권센터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의 장엄한 선언에 의거해 학생과 교직원의 인권과 행복을 구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내 기관이다.

그런데 피해를 호소한 B직원은 되레 해고를 당했다. 피해 사실을 증언한 동료 C직원도 정직 3개월(수습 기간 중 정직 징계를 받아 채용 취소) 처분을 받았다. 전남대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1시 10분 B직원이 노래방 복도 엘레베이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1시 10분 B직원이 노래방 복도 엘레베이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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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 전남대에서 벌어진 일

산학협력단 직원들은 지난 2019년 12월 26일 송년 회식 3차로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을 찾았다. 이들은 오후 10시부터 약 1시간 15분 동안 이 노래방에 머물렀다. B직원은 이 자리에서 A과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다음은 CCTV에 담긴 장면과 B직원의 증언을 종합한 내용이다.

오후 10시 29분 : A과장, 소파에서 일어나려는 B직원의 어깨를 눌러 주저앉힌 후 옆자리 착석.
오후 10시 42분 : A과장, 말리는 C직원을 밀치고 B직원 옆 자리에 앉음.
오후 10시 43분 : A과장, C직원에 의해 자리에 일어나면서 B직원의 손을 잡아 끎.
오후 10시 43분 : A과장, C직원이 말리자 B·C직원 모두를 상대로 어깨동무.
오후 11시 08분 : A과장, 한편에 서 있는 B직원 쪽으로 향하더니 손으로 얼굴을 만짐.


CCTV에는 B직원이 노래방 복도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는 장면도 담겨 있다. 영상을 통해 ▲ 10시 44분 B직원이 한 직원에게 하소연 하는 모습 ▲ 10시 49분 C직원이 분을 참지 못한 B직원을 가로 막는 모습 ▲ B직원이 울면서 복도로 나오는 모습 ▲ C직원이 B직원을 위로하는 모습을 A과장이 지켜보는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29분 A과장이 C직원이 바라보는 와중에 B직원의 어깨를 눌러 주저앉히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29분 A과장이 C직원이 바라보는 와중에 B직원의 어깨를 눌러 주저앉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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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43분 A과장이 C직원에 의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B직원의 손을 잡아끌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43분 A과장이 C직원에 의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B직원의 손을 잡아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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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43분 B직원의 손을 잡아끌어 앞으로 나온 A과장이 C직원이 말리자 B·C직원을 상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43분 B직원의 손을 잡아끌어 앞으로 나온 A과장이 C직원이 말리자 B·C직원을 상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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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1시 8분 방으로 들어온 A과장은(①·②) B직원을 향해 손을 뻗어 다가간 뒤(③) B직원의 얼굴을 만졌다(④).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1시 8분 방으로 들어온 A과장은(①·②) B직원을 향해 손을 뻗어 다가간 뒤(③) B직원의 얼굴을 만졌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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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B직원은 지난 1월 6일 A과장을 찾아가 자신을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1월 10일 산학협력단장을 찾았고, 같은 날 A과장의 요청에 따른 두 번째 면담을 진행(이때는 A과장의 타부서 이동 요청)했으나 분리 조치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던 중 B직원은 산학협력단 관계자로부터 'A과장의 인사이동을 위해선 인권센터에 사건을 접수하라'는 전화를 받았고, 이에 따라 1월 14일 인권센터에 해당 사건을 신고했다. 인권센터는 A과장, B직원, C직원(참고인)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1월 30일 B직원은 인권센터로부터 자신과 C직원이 징계 대상에 올랐고, 이제부터는 '허위신고 및 무고' 가해자가 됐으니 출근해선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황한 B직원은 인권센터 조사 과정에 대해 알아봤고, A과장이 '휴대폰으로 찍은 4배속 노래방 CCTV 영상'을 인권센터에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피해자 "무엇 때문에 해고됐는지 납득 안 돼"

인권센터 성희롱·성폭력 방지대책위원회는 B·C직원의 진술이 이 CCTV 영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당시 위원회는 "CCTV 전체를 검토한 결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거나, 복도에서 신고인을 끌어당기거나, 노래방에서 신고인의 손을 잡아당기는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다"라며 "(B·C직원이 A과장에게) 불이익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신고했다고 판단해 인권센터 규정 19조에 의거해 총장에게 (B직원의) 징계를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B직원은 '휴대폰으로 찍은 4배속 영상'이 아닌 노래방 측이 저장하고 있던 1배속 원본 영상을 확보해 2월 18일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에 제출했다.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가 인권센터에 재조사를 요구하자, 2월 21일 인권센터에도 이 영상을 제출했다.

하지만 인권센터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4월 27일 인권센터는 ▲ 손을 잡아당겼는지 현재 영상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 설사 손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앞 장면에서 서로 손을 잡은 적이 있어 특별한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 어깨를 누르는 행위에 불쾌감을 느꼈을 수 있으나 이것을 성적 굴욕감,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로 보긴 어렵다 ▲ 얼굴을 만지는 행위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그러면서 "(B직원의) 허위신고는 산학협력단의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켰으며 직원으로서 품위 유지 의무에 대한 위반으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는 B직원을 해고하고 C직원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 직전 산학협력단장이 결재한 징계의결 요구서에는 "B직원의 허위신고는 A과장을 억울한 성폭력 가해자로 만들어 명예훼손, 가정파탄 등의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A과장은 이번 사건으로 5개월 동안 치욕을 당한 스트레스로 병원 치료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란 내용이 담겼다.
 
전남대 인권센터에 A과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했다가 되레 허위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전남대 산학협력단 B직원.
 전남대 인권센터에 A과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했다가 되레 허위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전남대 산학협력단 B직원.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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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B직원은 "아직도 내가 무엇 때문에 해고가 됐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며 "그날 내가 겪은 일을 어렵게 진술했는데 나와 증언해준 C직원까지 잘린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어떻게 해야 내가 억울하단 점을 들어줄까, 그(걸 호소하던)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병원도 다니고 살도 너무 많이 빠지고 거의 잠을 자지 못하며 몇 달을 지냈다"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 B직원은 "이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제 자신이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라며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서 잘못된 사람이 벌을 받고 제가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B직원은 전남대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법률대리인 "허위신고? 면밀히 검토하지 않아"

이 사건의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A과장의 행위를 왜 성추행으로 보지 않았는지, 둘째는 B·C직원의 신고 및 증언을 허위신고나 무고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인권센터 및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는 '성적수치심을 줄 만한 행위는 아니다'라는 판단과 함께, 'B·C직원의 진술이 CCTV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놨다. 두 사람의 증언 일부가 CCTV 내용과 다르다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B직원의 법률대리인인 김수지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인권센터가) 가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 CCTV 영상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피해자가 성적수치심을 느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피해자 진술이 영상과 어떻게 다른지에만 집중하다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B직원을 지원하고 있는 김미리내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도 "1배속 원본 영상을 보면 피해자가 거부하는 몸짓, 울면서 복도로 나오는 모습, 다른 직원들이 위로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다"라며 "CCTV에 이런 모습이 명백히 담겼음에도 피해자를 의심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허위신고 및 무고로 판단한 것과 관련해서도 인권센터 및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는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A과장의 행위를 행여 성추행으로 판단하지 않았더라도, 이것이 곧 B·C직원의 허위신고 및 무고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선 증언이 실체적 진실에 명확히 반하는지, 신고자가 무고의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야하기 때문이다.

인권센터 및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는 징계 관련 문건을 통해 "(B·C직원이 A과장에게) 불이익을 줄 목적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럴 만한 정황이나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김수지 변호사는 "설령 성추행이 아니라고 가치판단을 내리더라도, 피해자 진술의 많은 부분이 CCTV 영상과 일치하는 상황에서 이를 허위신고로 판단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며 "허위신고임을 판단하기 위해선 피해자의 진술이 객관적 진실과 완전히 반하는지, 피해자에게 무고의 의도가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김미리내 소장은 "사법시스템이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대학 내 인권센터가 오히려 피해자를 심의하고 징계를 요청한 상황"이라며 "피해자를 매우 위축시키는 행태이며, '앞으로는 해고를 무릅쓰고 피해 신고를 해야 한다'는 안 좋은 신호를 남긴 사례"라고 비판했다.

형사 절차에서도 무고 판단은 매우 엄격하게 이뤄진다. 피고소인의 '혐의없음'을 결정한 검찰이라도 고소인에게 무고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2017~2018년 기준 성폭력 무고죄 고소 사건(824건) 중 유죄로 인정된 건은 6.4%에 불과했다. 84.1%에는 애초에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고, 기소되더라도 15.5%에 무죄가 선고됐다.

위증과 관련된 대법원 판례(2007도5076 판결)도 "증인의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인지 여부는 그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절차에 있어서의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해 판단해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남대 "CCTV 수차례 검토해 결론내려"
 
광주 북구에 위치한 전남대.
 광주 북구에 위치한 전남대.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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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의 직원대표 위원 및 외부 위원도 B직원의 해고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위원회는 위원장을 비롯해 총 7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5인은 산학협력단 고위간부 직원이고, 여기엔 A과장도 포함돼 있다(이번 사건의 경우엔 배제). 직원대표 위원 1인은 노동조합이 추천한 인물, 외부 위원 1인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나 변호사로 채워진다.

직원대표 위원으로 징계위원회에 참여한 김형민 전남대산학협력단지부장(노동조합)은 "성추행 여부와 상관없이 (인권센터에 신고했단 이유로) 해고까지 내려진 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외부 위원인 변호사도 '이 신고는 징계가 아닌 상을 주고 칭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면서 "반면 대부분 위원들은 인권센터의 (징계 요청)안을 존중해야 한단 분위기였다"라고 전했다.

<오마이뉴스>는 전남대 대외협력과를 통해 A과장·산학협력단장·인권센터장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전남대 대외협력과로부터 서면 답변만 받을 수 있었다.

이 답변에서 A과장은 "(손을 잡아 끈 것은) B직원의 인사 부탁을 거절하는 와중에 C직원이 무대로 나가자며 나를 이끌었고 이때 B직원에게 함께 무대에 나가자고 손을 잡아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어깨를 누른 것을 두고는 "비좁은 공간에서 (B직원이) 통로를 만들어주려고 해서 괜찮다는 의미로 한 행동"이라고, 얼굴을 만진 것을 두고는 "기억이 없다"라고 답했다.

전남대 대외협력과는 "신고인(B직원) 피해내용을 행동으로 재연하고 현장상황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했으나 CCTV에서 이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다"라며 "신고인과 참고인(C직원)이 복도에서 목격했다는 동일한 진술도 영상에서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CCTV를 수차례 보면서 검토해 결론내린 사안이고 신고인에 대한 소명 기회를 부여했다"라며 "인권센터는 성희롱·성폭력 사안에 대해 중립적 입장에서 무관용 원칙으로 조사·심의하고 있다. 외부기관을 통해 (이 사건과 관련해) 이의제기가 있다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전남대, #산학협력단,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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