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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A과장이 B직원의 얼굴을 만진 직후인 오후 11시 10분 B직원이 노래방 복도로 나오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A과장이 B직원의 얼굴을 만진 직후인 오후 11시 10분 B직원이 노래방 복도로 나오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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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를 학내 인권센터에 신고했다가 되레 해고당한 전남대 직원은 신고를 전후로 2차 피해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해당 징계가 총장 승인 하에 이뤄졌고 피해자의 총장 면담 요청도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정병석 전남대 총장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전남대 산학협력단 소속 A과장(남)이다. 같은 산학협력단의 B직원(여)은 "지난 2019년 12월 26일 송년회 중 노래방에서 A과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지난 1월 14일 인권센터에 신고서를 제출했다. 앞서 B직원은 A과장과의 (근무)분리를 요청한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산학협력단 관계자가 '인사이동 절차를 위해 인권센터에 사건을 접수해야 한다'고 안내해 신고 절차를 밟은 것이었다.

하지만 인권센터는 A과장의 행위를 성추행으로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B직원 및 참고인 C직원(여)의 진술을 허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는 B직원을 해고하고 C직원에게 정직 3개월(수습기간 중 정직 처분으로 채용 취소)의 징계를 내렸다.

최초 A과장이 제출한 '휴대폰 촬영 4배속 CCTV 영상'으로 조사가 진행됐는데, 이후 재조사 과정에서 B직원이 '1배속 CCTV 영상 원본'을 제출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첫 보도 : 성추행 피해자 해고하고, 증언한 직원 채용 취소한 국립대)
 
▲ 성추행 신고한 직원, 되레 해고한 국립대
ⓒ 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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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뀐 다음날

B직원은 지난 1월 30일 인권센터로부터 '허위신고로 징계 대상에 올랐고 다음날부터 출근해선 안된다'고 통보받았다. 피해자인 B직원이 한순간 '허위신고'의 가해자가 돼버린 것이다. 인권센터 신고 접수 후 피해자·가해자 분리 차원에서 출근하지 않았던 A과장은 다음날부터 출근할 수 있었다.

A과장은 출근한 당일 직원들을 모아 회의를 주재했고 이 과정에서 B직원을 거론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직원이 A과장의 말을 받아 적은 메모지에는 ▲ (노래방 CCTV) 영상에 신체접촉이 없었다 ▲ 최근 10년간 노래방에 다니지 않았고 양꼬치 집(송년회 2차)에서 유혹해 노래방에 감 ▲ (B직원과 C직원이) 만든 드라마 ▲ 노래방에 유인 당했고 진실이 아닌 거짓말로 영혼 황폐화 됨 ▲ 인사 거절 청탁에 따른 보복 행위 ▲ 이색적인 경험으로 견뎌보자는 마음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 21일 만난 B직원은 "그 회의 자리에서 A과장이 '(B직원이) 나를 음해하려고 (인권센터에) 신고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라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직원들을 모아 놓고 했다는 생각에 너무도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A과장은 내가 인사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다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라며 "직원 한 명이 승진해 그 업무를 누가 할 것인지를 두고 다른 직원들이 다 있는 상황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A과장이 이를 두고 인사 청탁을 주장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B직원을 지원하고 있는 김미리내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가해자가 기관으로 복귀해 직원들을 모아놓고 피해자를 공격한 행위"라며 "한국사회의 통념상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피해자를 거론하며 사건을 공개한 건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A과장은 전남대 대외협력과를 통해 "업무가 바쁜 중에 자리를 비워 직원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업무에 집중해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였다. B직원의 업무를 어떻게 분담할지도 이야기했다"라며 "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1시 13분 노래방 복도에서 울고 있는 B직원을 C직원 등이 위로하고 있고, 방에서 나온 A과장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1시 13분 노래방 복도에서 울고 있는 B직원을 C직원 등이 위로하고 있고, 방에서 나온 A과장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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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협력단장, 사회규범 이야기하며 진정하라고 해"

B직원은 인권센터 신고 전 A과장 및 산학협력단장과 면담한 자리를 거론하면서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B직원은 1월 6일, 1월 10일 두 차례 A과장을 만났다. 1월 6일엔 B직원이 A과장을 찾아갔고, 1월 10일엔 A과장이 B직원을 불러 면담이 진행됐다. B직원은 1월 6일 자신을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문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1월 10일 A과장의 부서 이동을 요청한 바 있다.

B직원은 "제대로 사과하기보다 저를 구슬려 이 상황을 넘기려는 듯한 느낌을 (면담 당시 A과장으로부터) 받았다"라며 "(A과장은) 주로 '술을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때 '미안하다. 어떻게든 해결해보자'라고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 요구는 큰 요구가 아니었다. 그냥 사무실 문 열고 몇 걸음 옆 사무실로 옮겨달라고 한 것이었다"라며 "그것조차 받아주지 않으니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던) 내 고민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B직원은 1월 10일과 이후 자신의 징계 절차가 진행되던 도중에 산학협력단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B직원은 "우리 조직의 대표이고 이런 문제를 적극 해결해주실 것으로 생각해 직접 찾아간 것"이라며 "하지만 '사회규범을 너무 엄격히 적용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네가 원하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진정해라'는 식의 말이 돌아오니 너무 당황스러웠다"라고 떠올렸다.

김미리내 소장은 "산학협력단장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을 처리할 책임이 있는 기관장"이라며 "최초 피해자는 어찌됐든 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산학협력단장은 자신의 책임을 방기했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말까지 했다"라고 비판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29분 A과장이 C직원이 바라보는 와중에 B직원의 어깨를 눌러 주저앉히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29분 A과장이 C직원이 바라보는 와중에 B직원의 어깨를 눌러 주저앉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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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43분 B직원의 손을 잡아끌어 앞으로 나온 A과장이 C직원이 말리자 B·C직원을 상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광주 북구의 한 노래방 CCTV에 담긴 2019년 12월 26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송년회 모습. 오후 10시 43분 B직원의 손을 잡아끌어 앞으로 나온 A과장이 C직원이 말리자 B·C직원을 상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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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협력단장은 전남대 대외협력과를 통해 "면담의 주된 내용은 사실관계 파악이었으며 피신고인(A과장)에 대한 인사조차 요구는 객관적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B직원은 자신의 징계 관련 문서 결재라인에 A과장이 들어가 있는 것을 놓고도 "제게 통보된 문건을 보면 다 A과장의 결재를 거친 것들이었다. (전남대가) 완전히 나를 가해자로 생각하고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지적했다.

전남대 대외협력과는 "피신고인은 산학협력단 인사업무에 관한 중간 검토자"라며 "피신고인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는 중간 검토 절차상의 결재였기 때문에 피신고인이 의견 제시 또는 수정한 내용이 없다"라고 밝혔다.

B직원의 법률대리인인 김수지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피해자에 대한 징계 문건에 가해자가 결재권자로 돼 있으면 당연히 피해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며 "형식적인 결재라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는 전남대가 이 사안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광주 북구에 위치한 전남대.
 광주 북구에 위치한 전남대.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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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승인한 총장... 전남대 측 "모든 사안 다 면밀히 볼 수 없다"

정병석 전남대 총장 또한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남대 인권센터 규정'에는 "사건 내용이 허위로 판명될 경우에는 허위 신고자에 대한 적절한 징계 조치를 총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제19조)"고 나와있다. 규정대로 진행됐다면 정 총장이 B직원을 징계해야 한다는 인권센터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실제로 인권센터 성희롱·성폭력방지대책위원회 보고서는 정 총장의 결재를 거쳐 산학협력단으로 전달됐고, 이에 따라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는 B직원의 해고를 결정했다. 전남대 대외협력과 역시 "인권센터 규정에 따라 해당 사건의 조사 결과는 총장 승인 후에 통보됐다"라고 밝혔다.

B직원은 징계 통보 후 재조사 과정에서 총장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B직원은 "총장실에 찾아갔지만 만나지도, 의견을 전달하지도 못했다"라며 "(총장실) 직원이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했고, 나중에 '재조사 중인 건이라 (총장이) 입장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전화를 받았다"라고 떠올렸다.

김수지 변호사는 "총장이 모든 결재 사안을 세세히 검토할 순 없겠지만, 이 사안의 경우 인권센터에서 허위신고를 이유로 징계를 요청한 첫 사례이고 재조사까지 진행된 사안이니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으리라고 본다"라며 "총장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미리내 소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7월 29일 정 총장에게 면담을 신청했으나, 총장실에선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가 결정한 사안'이라며 이를 거절했다"라고 전했다.

전남대 대외협력과 관계자는 "인권센터, 산학협력단, 산학협력단 징계위원회 등 절차에 따라 실무기관을 거쳐 (징계가) 결정된 사안이고 총장은 통상의 절차대로 품의가 올라와 결재를 한 것"이라며 "총장이 모든 사안을 면밀히 검토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징계 전엔) 인권센터 조사 중이었고, (징계 후인) 현재는 해고무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라며 "신고인(B직원)과의 면담은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총장으로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진행할 수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B직원은 A과장을 강제추행 및 성폭력처벌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 산학협력단장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소했다. 또 전남대를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도 제기했다. 

태그:#전남대, #산학협력단,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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