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Z> 드라마 포스터

▲ <리얼리티 Z> 드라마 포스터 ⓒ 넷플릭스


2008년 영국의 '채널4'에서 방송한 5부작 드라마 <데드 셋>은 리얼리티 쇼와 좀비를 결합한 작품이다. 작가 찰리 브루커는 리얼리티 쇼 '빅 브라더'(실제 유럽과 호주에서 인기리에 방송한 프로그램으로 <데드 셋>은 영국의 '빅 브라더' 세트장에서 촬영했다)를 무대로 삼아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소설 < 1984 >를 통해 묘사한 전체주의적 정신풍토와 절대 권력의 위험성, 미디어를 활용한 이데올로기 주입과 생각의 통제를 좀비 장르로 표현했다.

조지 로메로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과 <시체들의 새벽>(1978)으로 보여준 좀비의 정치적, 사회적 은유법을 21세기에 맞게 되살린 <데드 셋>은 <레지던트 이블>(2002), <28일 후>(2003), <새벽의 저주>(2004)와 함께 2000년대 좀비를 소재로 삼은 영화와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작가 찰리 브루커의 비판 의식은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블랙 미러> 시리즈로 이어지는 중이다.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10부작 드라마 <리얼리티 Z>는 <데드 셋>을 브라질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화 '올림포스', 2화 '쇼는 끝났다', 3화 '가게를 털어라', 4화 '제우스', 5화 '끝과 시작'까지는 니나(아나 하르트만 분)와 PD 브란당(길헤르메 웨버 분)을 중심으로 원작 <데드 셋>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배경이 브라질로 바뀌었고 고어함이 높아졌다는 점, 후반부를 위한 인물 등장만이 다르다.

<리얼리티 Z>의 진가는 새로운 인물과 서사로 전개되는 6화 '난투극', 7화 '소집령', 8화 '새로운 미래', 9화 '올림포스의 문', 10화 '더 인간답게'에서 드러난다.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체계를 풍자한 <데드 셋>의 시각에서 벗어나 좀비의 공격을 피한 소수의 생존자가 벌이는 권력투쟁과 폭력으로 재편되는 질서란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감시를 담고 있던 공간 '빅 브라더'는 인간의 내면, 하나의 사회, 브라질이란 국가, 세계의 모습을 상징하는 공간 '신들의 궁전'으로 의미가 변화한다.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리얼리티 Z>의 후반부는 '마키아벨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마키아벨리즘은 도덕과 윤리가 배제된 채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 행동을 뜻한다. 극 중에서 국회의원 레비(에밀리로 드 멜로 분)는 마키아벨리즘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권모술수를 부리며 자신이 세운 기준에 맞춰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람만 살린다. 모든 판단과 행동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길이라고 강변한다.

광기의 질서를 구축하는 캐릭터 레비에겐 "난 독재를 찬성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투표를 통해서는 이 나라를 바꿀 수 없다. 내전을 통해서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브라질의 트럼프'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하는 극단적인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레비의 반대편에 위치한 인물은 '신들의 궁전'의 설계자인 아나(카를라 리바스 분)와 빈민가 출신의 흑인 여성 테레자(루엘렘 데 카스트로)다. 아나는 다른 곳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신들의 궁전'으로 불러 함께 힘을 모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인간의 선함을 믿고 연대와 공존을 희망한다.

테레자는 무기와 '신들의 궁전'의 통제권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입맛대로 처형하는 레비 일당에 반대한다. 이곳을 바로잡아 같이 협력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친다. 아나와 테레자는 마키아벨리즘에 맞서는 도덕이자 윤리를 형상화한 인물이다.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이런 전개 속에서 제목 <리얼리티 Z>는 다양한 의미로 확장을 꾀한다. Z는 소재인 좀비(Zombie)를 뜻한다. 한편으론 인간, 사회, 국가, 세계가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다. 인종·성·동성애·난민·원주민 등 여러 차별, 세계에 만연한 민족주의, 경제의 양극화, 계급의 강화 등을 좀비를 빌려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Z는 강력한 힘을 뜻하는 제우스(Zeus)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리얼리티 쇼 '신들의 궁전'을 통제하는 힘은 처음엔 미디어 권력인 PD 브란당에게 있었다. 그 후 정치권력인 국회의원 레비가 통제권을 거머쥔다.

<리얼리티 Z>가 보여주고자 한 건 단순한 좀비 살육극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과 권력의 탐욕으로 멸망한 인류의 마지막 순간과 전체주의적 감시와 통제가 빚은 최후의 풍경을 목격하길 원한다. 알파벳의 마지막 철자인 제트(Z)를 붙인 건 현재 우리의 현실(Reality) 세계가 종말로 치닫고 있음을 경고하는 목소리다.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리얼리티 Z> 드라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리얼리티Z>는 좀비 장르가 잃어버렸던 정치성을 완벽하게 회복한 수작이다. 또한, 리메이크의 모범 답안을 보여준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맞이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코로나19가 대유행되기 이전에 만든 작품이나 우연은 필연적인 해석을 낳고 말았다.

코로나 19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주어지면서 마키아벨리즘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등장했다.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힘을 얻고 혐오와 차별을 앞세워 마음의 장벽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이 연대의 중요성, 도덕과 윤리란 가치를 잃어버렸을 땐 살아도 산 자가 아니다. 그저 현실의 좀비일 따름이다. <리얼리티 Z>의 테레자는 현실 세계의 우리를 향해 간절히 호소한다.

"한땐 사랑이 넘치고 연인과 우정이 있는 그런 곳이었죠. 하지만, 결국 끝까지 남은 건 증오와 거짓말, 이기심, 배신. 밖에서 늘상 보던 것들이었어요. 우리의 실수를 반복하지 마세요. 우리보다 더 잘하고 더 인간답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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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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