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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의 총장 선출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면, 국가나 사립학교 재단 이사회(사학 법인)가 일방적으로 총장을 임명하는 '총장임명제'는 일제 강점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군정 시대, 교육 관련 당국(문교부)은 친일 경향의 인사를 대학의 총장․학장으로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미군정은 서울대(안스테드)와 부산대(아서 린 베커)를 비롯한 일부 국립대학에 미국인을 총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 교육자치제와 함께 '교수추천에 의한 총장선임제도'가 잠시 도입되었으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다시 정부(또는 사학재단)의 '일방적 총장임명제'로 돌아가, 1987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대학의 유일한 총장 선출방식은 임명제였다.

'대학 총장'이 법제도를 통해 '임명'되기 시작한 것은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12월31일 교육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사립대학 총장은 교육법에 의해 학교를 설립·경영하는 법인 또는 사인(私人)이 감독청의 승인을 얻어 채용할 수 있었으며, 1963년 6월26일 사립학교법이 제정되면서 사립대학 총장은 법인 이사회 의결을 거쳐 감독청의 승인을 받아 임명하도록 했다.

사립학교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학교의 장뿐만 아니라 부총장, 교감, 원감 등도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했으나, 1964년 11월10일 개정된 법에서 '학교의 장'만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였으며, 1990년 4월7일 개정에서는 감독청의 승인 없이 이사회가 총장을 임면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 민주화, 대학 민주화와 대학 총장 직선제를 낳다!

우리나라는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대학 설립 초기부터 국가와 학교 법인에 총장 선임을 일임하는 완전 임명제를 유지해 왔다. 현재 국립대에서 볼 수 있는 교수 중심의 총장 직선제는 1980년대에 등장한 것이다. 총장직선제는 1980년대 후반 사회민주화에 대한 민중의 폭발적인 열망에 힘입어 1990년 초반 대학민주화의 근간으로 자리 잡은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수 직선에 의한 총장선출제도는 과거 군사독재 시대의 대학 통제 정책을 극복하려는 학내 구성원들의 대학 민주화, 자율화 투쟁의 성과로서 총장직선제는 한국 대학의 민주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총장직선제는 교수만의 선거 참여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학연과 지연에 의한 줄서기, 편 가르기 등 과열 혼탁선거 양상과 선거 후 논공행상식 보직 나눠먹기라는 폐단이 나타났다.

또한, 총장선출을 교수협의회가 주도하면서 대학 경영전반에 걸쳐 교수협의회의 영향력이 막강하게 되고, 그 결과 많은 대학에서 교수집단의 패권적이고 독선적인 태도가 학교운영에 개입됨으로써 다른 구성원들과의 갈등이 커졌다.

이와 같은 교수직선제의 문제점은 많은 사립대학 재단 이사회가 '교수직선제'를 폐기하고 '재단의 일방적 총장임명제'로 회귀하도록 하는 빌미가 되었다. 실제로, 1987년 이후 교수직선제를 실시해오던 90여개 대학 중 2/3 이상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재단의 일방적인 총장임명제로 돌아갔다.

국립대학의 비민주적인 총장 선거 제도

국립대학에서의 총장 선임제도는 8·15해방 후 잠시 시행되었던 교육자치와 함께 당해 대학교수 추천에 의하여 선임되다가 최초로 법적 근거를 갖게 된 것은 1953년 교육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부터다. 이후 4·19혁명으로 대학자치와 민주화 열망을 담아 총장선출의 움직임이 일어났으나 5·16 이후 군사정부의 학원통제로 일방적인 정부임명제로 다시 바뀌었다.

정부가 일방적인 임명해 오던 국립대학의 총장 선임 방식은 1987년 6월 항쟁과 함께 비로소 직선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국공립대학의 경우, 1991년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통해 대학 자체적으로 총(학)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것이다. 그 이후 교수들만의 선거로 국립대학 총장이 선출되었으나, 이 방식은 비민주적이기에 교수들만의 총장 선거를 반대하는 대학 구성원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2000년 들어 국립대 총장 선거 참여를 요구하는 많은 국공립대학 직원(공무원직원, 기성회직원)들과 학생들이 '총장 직선제 선출권 쟁취투쟁'을 결의, 법적 처벌을 감수하고 대부분 국립대학에서 진행된 총장 후보자 유세장을 점거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본관 앞 컨테이너 농성과 총장실 점거까지 하는 우여곡절끝에 비록 부분적이나마 직원, 학생이 총장 선거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때인 2012년 3월 당시 이주호 교과부장관은 '2012년 교육역량강화 지원사업' 선정을 하면서 '총장직선제 폐지 지표'를 신설하여 '총장직선제 포기 MOU'를 체결하지 않은 대학들은 국립대학 교육역량강화 지원사업비 지급을 중단시켰다. 

그 결과 박근혜 정권까지 대부분의 국공립대학 총장 직선제는 사라졌다가 문재인 정권 들어 총장직선제가 부활해 실시되고 있다. 물론, 국공립대 총장 최종 임명권은 과거도 현재에도 정부가 행사한다.
  
[표1] 국립대학 총장 선출방식 변천 과정
 [표1] 국립대학 총장 선출방식 변천 과정
ⓒ 김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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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20년 현재 교수직선제, 아니 '교수 독점 총장선출' 방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학의 총장이 '교수만의 대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교수만의 선거'로 총장선출이 이루어짐으로써 비정규교수, 직원과 조교, 학생들의 의사가 무시되고, 결과적으로 구성원 간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다.

아래 [표2]를 보면 2009년 당시 국립대 총장 선거에서 교수들은 1인1표를 행사하고 있다. 반면 직원들은 투표권 비율이 대학 평균 12%에 불과하다. 조교는 경북대와 경상대, 한국해양대, 서울산업대 등 극소수 대학에서만 참여할 수 있다.

당시 국립대 학생들은 경북대, 경상대, 창원대, 한국해양대, 서울산업대, 대구교대 등에서 투표권을 확보했는데 그 비율은 2% 정도에 불과해서 참담할 지경이었다.
 
[표2] 2009년 10월 현재 국·공립대학 총장선출 구성원 참여 현황
 [표2] 2009년 10월 현재 국·공립대학 총장선출 구성원 참여 현황
ⓒ 김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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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 부활한 국공립대 총장 선거는 민주적으로 바뀌었을까? 아래 [표3]은 2019년 현재 각 국립대학별 총장 선거 구성원 투표 비율인데, 직원의 투표 비율이 조금 올라갔고, 조교와 학생들의 투표 참여가 늘었지만 여전히 민주적인 투표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표3] 2019년 현재 국공립대학 총장 선거 구성원 투표 비율
 [표3] 2019년 현재 국공립대학 총장 선거 구성원 투표 비율
ⓒ 김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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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1일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학생회 연합단체인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이하 국공련)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금의 총장 선거를 '직선제'라 부를 수 있습니까?'
2019년 현재,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공립대학교에서는 총장을 직선제로 뽑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거에서 구성원별 투표 반영 비율을 살펴보면 저는 이 선거가 어떻게 직선제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교수는 1인 1표로 전원이 투표하고, 직원, 조교를 비롯한 학생들은 1인 1표를 해야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교수 대비 20%도 되지 못한 비율을 놓고 서로간의 비율만을 위해 다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 학생은 3퍼센트의 전국 평균 투표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총장 후보자들에게 '학생들을 위한다.'는 구실만을 허락한 채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공약을 실현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대학의 총장은 교수들만의 대표가 아닙니다. 모든 구성원들의 대표입니다. 대학을 교육과 연구를 위한 특수성을 가진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금의 총장 선출 방식은 결코 민주적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교수를 제외한 대학의 다른 구성원들은 총장 선출에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으며, 최종 결정을 하기 까지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회의조차 참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저희는 그러한 상황을 제공한 것이 바로 교육공무원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교육공무원법 제24조 3항 2호에 명시된 '교원'의 합의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인해 총장 선거에서 교원을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들은 법이나 학칙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전국의 국공립대학교의 대표들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저희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는 국회에 조속한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대학이 교원만의 연구소가 아닌 구성원들의 대학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국공립대, 민주적 총장선거를 위해 교육공무원법 24조 즉각 개정해야!

이처럼 국공립대 총장선거에서 교수들이 투표권을 독점하게 된 문제의 원인은 현행 교육공무원법 때문이다.

교육공무원법 24조③항2호에는 국립대학에서 총장 직선제를 할 경우 '교원의 합의된 방식'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즉 대학의 총장을 선출하는 데 그 대학 교수들만 모여서 정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진행하다보니 이런 불합리한 교수 독점 선거 제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잘못 만들어진 법제도로 국립대학에서 총장 선거는 교수들의 일방적인 권리 주장이 가능해지고, 총장 선출 과정에서 대학 구성원의 민주적 참여는 막혀 있어서 교수와 직원, 조교, 학생 간 학내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올해 초 치러진 부산대 총장선거는 총학생회가 투표 참여를 거부했고, 강원대 총장선거는 직원과 학생이 투표에 불참했다. 경북대 총장선거는 비정규직 교수와 학생들이 '선거공고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내 법적 다툼 끝에 진행됐고, 부경대도 교수와 직원, 학생 간 거센 충돌이 벌어져 투표가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총장선거가 진행될 수 있었다. (관련 기사 : 교수 1표, 학생 0.0011표... 부경대 총장 선거 결국 무산 http://omn.kr/1nykg

전국 국공립대학의 학생, 직원(공무원직원, 대학회계직원, 비정규직), 조교, 비정규직교수(시간강사) 들은 2019년 여름  비민주적인 총장선거 제도 핵심인 교육공무원법 24조3항2호를 아래 [표4]와 같이 개정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벌여 국회와 교육부에 전달했다. 당시 정의당 영국 의원은 관련 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교육부와 국회는 대학 구성원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평등하게 참여하는 국립대학의 민주적인 총장 선거 제도 마련을 위해 하루빨리 교육공무원법 24조를 개정해야 한다.
 
[표4] 교육공무원법 개정 요구안
 [표4] 교육공무원법 개정 요구안
ⓒ 김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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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정부(국가권력)나 재단(사립대 법인)의 일방적 통제에서 벗어나, 대학 구성원이 참여하는 '대학 자치(자율)'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대학운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개혁', '학령인구의 감소' 등 대학이 당면한 위기에 맞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해 대학발전을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요구받고 있는 시기, 대학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대학 발전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하는 총장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대학 민주화의 상징처럼 되어 온 총장 선출은 반드시 대학 구성원들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대학 운영에 교수, 직원, 조교, 학생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고 대학발전을 위한 각 구성원의 노력과 열정이 적절하게 투입될 때 진정한 대학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구성원들의 참여를 배제한 교수들만의 총장선출방식으로 인해 구성원 간의 필연적인 대립과 갈등을 양산하는 지금의 교수 독점 총장 직선제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대학발전에 역행하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기획 /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① 기형적인 국공립대와 사립대 비율 http://omn.kr/1nzkj
② 고등교육 공교육비 84% 민간 재원, 정부 재원은 16%에 불과http://omn.kr/1o2ia 
③ 국립대 운영, 국가 아닌 '학부모 주머니'에서 시작된다 http://omn.kr/1o7pn
④ 왜 대학에 추가로 지원하냐고요? 이 법이 말합니다 http://omn.kr/1oa36 
⑤ 국립대 역할과 사회적 책임, 법률로 뒷받침해야 한다 http://omn.kr/1ocpj
⑥ 대학이 많아 학생이 없다? 사실이 아닙니다  http://omn.kr/1ofes
 

태그:#고등교육공공성강화, #국공립대총장선거, #교육공무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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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대학 개혁을 위한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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