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대중영화 출사표였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사이비>에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 두 애니메이션은 호감이 가는 그림체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서 복잡다단하게 얽힌 문제를 솔직하고 아플 정도로 정면으로 다뤘다. 거친 편집으로 어둡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 잔인한 사회를 반영하는 아픈 대사를 '못생긴' 캐릭터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시각적인 매체인 영화의 총 책임자, 감독은 크게 두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기술이 뛰어난 감독과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한 감독이 있다. 연상호는 후자의 성향이 강하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욕망과 능력은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통해 증명했다. 그는 이 두 애니메이션으로 영화 관계자들과 영화광들을 사로잡았다. 그래픽 노블 <얼굴>(세미콜론, 2018)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오는 고통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감독이라면, 이런 번뇌에 빠질 필요가 없다.

그는 거대한 대중영화 시장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실사 대중영화는 애니메이션과 동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관객층은 훨씬 넓다. 행인들을 통제하고 장소를 빌려 로케이션을 하거나 세트를 만들어 수백 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고가의 장비를 활용해 이미지를 기록한다. 극장 내에서 현실과 같은 일루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이 거대한 프로덕션은 자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본은 냉정하고, 자본은 관객에게서 나온다. 더 많은 사람, 보편적인 감성을 판단하고 적용해 관객의 마음을 얻어야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좀비 4종: 부산행, 서울역, 반도, 집으로
 
 영화 <부산행> 스틸 컷

영화 <부산행> 스틸 컷 ⓒ (주)NEW

 
왜 좀비였을까? 묵시록의 시체들이 깨어날 것이라는 구절 때문에 종말을 연상시키는 좀비 장르는 < 28일 후 >로 더욱 대중적인 소재가 되었고 <좀비랜드>같은 코믹 액션이나 <웜 바디스>같은 틴로맨스로도 변주되고 있다. 대다수의 좀비영화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추악한 인간의 모습, 복잡한 심리, 역동성을 가진 캐릭터와 스토리를 보여주었던 연상호 감독이 '못생긴' 좀비영화를 선택한 것은 놀랍지 않았다.

대중영화는 스토리텔러 감독에게는 어려운 시험이다. 자신이 가진 주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중이 호감을 갖도록 매력 있게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적당히 보여주고 적당히 감추는 테크닉과 감각은 필수다. 그는 <부산행>만이 아니라 <서울역> <집으로> <반도>에 이르는 좀비 장르로 4개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각기 다른 4개의 이야기를 통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4개의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서울역> <부산행> <반도>를 보면 그의 색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부산행>은 <설국열차>와 < 28일 후 >가 만난 것 이외에도 흥미로운 캐릭터로 가득하다. 딸을 위해 부산행 KTX에 타는 이기적인 펀드매니저 아빠 석우(공유)를 뼈대로 근육질이지만 임신한 아내(정유미)에게는 꼼짝 못하는 상화(마동석),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는 용석(김의성)과 그에게 선동당하는 군중, 살고 싶지만 임산부와 어린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노숙자와 같은 다양한 캐릭터에서 관객들은 각각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타심이라고는 없는 줄 알았던 기성세대가 이기적으로 변한 것은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이었고, 그들은 깊은 곳에서 선함을 잃지 않았고 이들의 희생으로 희망은 이어진다. 겁에 질린 아이의 노랫소리처럼 <부산행>의 가늘고 떨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수 있지만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은 '연상호식 해피엔딩'으로 읽을 수 있었다.

한국 상업영화의 공식이자 트레이드마크가 된 소위 '신파'조차 약간의 양념으로 작용했다. 아버지 석우가 좀비로 변하며 딸을 처음 안았던 순간을 떠올리는 장면의 느린 편집은 관객에게 '레디' 사인이며, 밝고 화사한 아이를 안는 공유의 회상은 관객에게 이제 울 시간 (혹은 뭉클함을 느낄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액션' 사인이다. 그러나 <부산행>에서는 이 단점을 압도할 만큼의 연출력을 보여주었고, 이 코드는 영화를 대중적으로 만들기 위한 철저한 계산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거의 동시에 개봉한 <서울역>은 프리퀄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4년 후, 올해 개봉한 <반도>에서는 이 코드가 '연상호 표'의 장점을 압도해 버린다. 광기로 가득한 군인들이 그의 장점을 드러낼 기회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저 그런 악당으로 그치고 말았다. 높은 건물과 북적이는 서울이 폐허가 되었을 때의 황량한 모습은 대부분의 해외 좀비영화에서 보는 지평선이 보이는 넓게 트인 공간 속 외로운 주인공들의 장면과 시각적으로 다르다는 것 외에 반도에서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연상시키는 자동차 추격 장면은 분명 볼거리지만, 영화 전체를 좌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개인 성향과 보편적 정서 사이의 갈등

<염력>(2018)에 이은 <반도>의 부진함을 냉혹하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염력>은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왜 연상호답지 않은 영화가 나왔을까?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기술을 향상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작업 방식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작가의 천성에서 발전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긴 습관을 버릴 수 없다. 또 작품의 톤, 매너, 깊이에 크게 영향을 준다. 한 가지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그 속의 인간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돼지의 왕>과 <사이비>에서 드러난 스토리텔러 연상호의 아주 뛰어난 능력이다. 이런 작업 표현은 아주 철저한 자료조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자료에 숨어있는 사람들에 창작자의 공감능력이 작용해 복잡다단한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살아 움직이며 놀라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연상호답게' <염력>을 풀었다면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과거 철거민들과 현재 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안전망, 철거민 지위를 역이용하려는 소수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익을 위해 서로 얽혀야 한다. 그가 경제적으로 빠른 발전을 하며 함께 과거와 다른 현재의 철거민의 다층적인 모습을 몰랐을 리 없다.

대중영화에 맞게 2018년의 정서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으로서 상업영화를 만드는 책임감 있는 선택이다. 촬영도 편집도 대중영화답게 매끄러웠다. 의도적으로 과장된 연기도 마케팅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었다. 찌질한 주인공이 초능력을 얻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 그래픽 노블 < Death Ray >와 같은 주제의식도 있었다. 이 영화가 가진 다양한 측면을 부각해주는 마케팅이 있었다면,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섬세한 마케팅과 소신
 
 영화 <부산행> 스틸 컷

영화 <부산행> 스틸 컷 ⓒ (주)NEW

 
자본의 논리를 쫓기만 하면 언제나 관객에게 뒷북일 수밖에 없다. 당장 한 작품의 성공보다는 장기적 포트폴리오를 지키는 것이 훨씬 창작자의 생명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 '자, 이제 울 시간입니다'하고 배우가, 카메라가, 편집이, 음악이 최면을 거는 영화는 누구의 이름을 걸고 나와도 보고 싶지 않다. 배우조차 감정이 바닥나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울만큼 희생과 비극을 짜내어 길게 카메라를 돌리는 건, 관객의 시간과 스텝의 열정, 극장의 공간과 자본의 낭비다.

적은 자본으로 상영시간이나 장소에 제한받지 않는 영화를 만들기 지금처럼 좋은 시대는 없다. 혹시 플랫폼의 귀천이 문제라면, 그 논란은 이미 무의미하다. <킹덤>같은 작품들이 증명하고 있는데, 또 2020 원더키디의 시대인데, 영화는 후퇴하면 안 된다. 새로운 플랫폼이 기존의 질서에 논란을 일으킬 만큼 커졌다면,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봐야 한다. 해피엔딩이나 '신파'로의 타협이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중요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시장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넓어졌고, 타겟은 세분화되었다. 이제 많은 관객들이 극장에서, 집에서 다양한 결말과 표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성이 생겼다. 무엇이 상업적인가는 사회와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에 창작자 이름의 가치를 창작자 본인도, 제작사와 배급사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염력>과 <반도>에서 보여준 마케팅은 감독의 이름이 가진 이미지를 잘못 판단했거나, 세심하지 못했거나, 안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반도>의 시나리오는 연상호 감독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캐릭터와 스토리의 부재에 대한 혹평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이름에서 기대하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닌 인간의 복잡한 심리가 얽힌 비정한 사회의 이야기이다. <반도>의 결과물은 대중이 가진 연상호의 강렬한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반도> 또한 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다른 포인트들을 부각했어야 한다. 과감하게 기획 단계에서 <부산행2>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도 어쩌면 나은 선택이었을 수 있겠다.

연상호 감독이 그의 이름이 가지는 이미지를 어떻게 여기건 간에, 그의 이름이 대중에게 주는 이미지는 이제 변화할 것이 분명하다. 대중영화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면, 온전히 대중적인 연출력만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반도>는 국내에서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아시아에서 개봉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곧 유럽과 북미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해도 거친 편집과 '못생긴' 표현을 과감하게 사용하던 스토리텔러의 모습은 그리울 것이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 부질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두 작품을 만든 창작자라면, 아직은 기대하고 믿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제작사와 배급사가 창작자 개인이 가진 능력은 믿고 자본은 제약을 두되, 시나리오와 표현에 자유를 주면서 리스크 관리를 하면 좋겠다. 또 창작자는 잘하는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에서 좀 더 자신과 관객을 믿었으면 좋겠다. 우리,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높은 수준에 길들여진 한국영화 관객들이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창작자의 작품은 언제든지 보고 싶다. 그의 이름이 걸려있든 그렇지 않든 분명 좋은 콘텐츠일 것이고, 언젠가는 그 능력을 드러낼 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박소연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첨부파일 peninsula_poster.jpg
반도 연상호 대중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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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편집자, 출판사 호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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