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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대선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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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 어머니와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를 둔 캘리포니아주 연방상원의원 카머라 해리스(Kamala Harris)가 마침내 2020년 대선의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관련 기사: 바이든, 해리스 낙점... 미 사상 첫 '흑인 여성 부통령' 나올까)

수십 명 후보군 가운데 그는 이미 처음부터 강한 두각을 나타낸 바 있었다. 그런데 그가 미국 정계에서 주류에 속하는 인물이 됐지만, 트럼프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만큼 그는 미국에서 전국 차원에서는 매우 새로운 현상이다.

카머라 해리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링크)에서 어린이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캐멜라, 커멀러, 카멜라가 아니라 카머라(발음: comma+la)라고 강조하고 있다. 카머라는 산스크리스트어로 '연꽃' 또는 '옅은 붉은색'을 의미하고 힌두교의 최고신인 비슈누(Vishnu) 아내인 여신 락슈미(Lakshmi)의 별칭이기도 하다. 락슈미는 힌두교 신자들이 지혜, 식량, 지식, 재물, 후손, 풍요, 인내, 성공을 얻도록 돕는 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물질적이고 현세적 성취를 대표하는 여신이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답게 카머라 해리스는 이제 미국 정치 권력의 정점에 다가가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 바이든이 그동안 수십 명 부통령 후보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카머라 해리스를 선택한 데에는, 최근에 미국 사회를 흔든 'Black Lives Matter'(BLM: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그러나 카머라 해리스가 대표적인 트럼프 비판자 역할을 해온 것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조 바이든은 미국 정계에서 신사로 알려진 인물로, 트럼프와 대선이라는 진흙탕 안에서 치고받는 일을 하는 데에는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니 자기를 지원할 '전사' 혹은 '투사'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책적으로 소수자를 중시하는 민주당을 대표하는 조 바이든으로서는 무엇보다도 민주당의 지지 세력인 소수인종과 여성 유권자들 표를 의식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언론에서도 카머라 해리스는 최초의 '흑인이자 아시아 출신 미국인'(African and Asian American) 부통령 후보로 소개하고 있다.

트럼프의 첫 반응은 매우 노련했다. 그는 카머라 해리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여성과 인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의 조세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기자 질문에 답했다. 사실 세금과 실업수당은 중산층 백인 남성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는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이 기대하던 답은 아니었다. 기자들은 분명히 피부색과 젠더에 대한 트럼프의 언급을 바라고 있었다.

노련한 트럼프

트럼프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2016년 대선 때에 트럼프는 미국의 언론 전체와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사 가운데 트럼프를 지지한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USA Today와 같은 언론기관조차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 언론의 생리를 트럼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우편 투표'라는 이슈를 들고나오는 것이다.
  
코로나19 예방 마스크를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코로나19 예방 마스크를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 워싱턴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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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자신도 우편 투표에 결정적이거나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런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언론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언론은 논쟁거리를 바란다. 그래서 트럼프는 언론에 먹이를 던져주되 재선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우편 투표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한 그에게 관심을 기울일 뿐 정작 중요한 코로나19나 유색인종의 차별, 여성 차별과 같은 중요한 이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술적 문제와 인간적 실수로 일부 우편 투표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무시할 정도이고 보완이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줄기차게 이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우편 투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트럼프는 만들고자 한다.

사실 2020년 미국 대선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당대회도 군중 집회도 토론회도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대선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민주주의 잔치이다. 그러나 이번 잔치에는 손님이 없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특종에 목말라하는 언론으로서는, 트럼프가 던져주는 미끼를 물게 될 확률이 상당하다.

2016년 대선 결과를 복기해보면, 트럼프 전략이 더 잘 보인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흑인 유권자 88%가 클린턴을 지지한 데 비해 8%만이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백인 유권자의 59%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37%가 클린턴을 지지했다. 여성 유권자 가운데 54%가 클린턴을 지지한 데 비해 42%만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남성의 53%는 당시 클린턴을 지지했고 41%만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백인 남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덕분이었다. 2016년 대선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백인의 67%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클린턴은 28%만 지지했다(퓨 리서치 센터, 관련 자료보기).

이를 잘 알고 있는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도 유색인종과 여성의 표는 아예 포기하고 백인 남성의 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던 차에 조 바이든이 내린 카머라 해리스라는 선택은, 현재 공화당 내부에서 결집력이 어느 정도 약화해 가던 백인 남성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트럼프를 선택하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인종차별 금지나 여성의 권리향상에 큰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자신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조 바이든 함께 뛰는 해리스는 누구

1964년 출생, 55세인 카머라 해리스는 미국에서 소수 인종 출신의 직업여성으로서 전형적인 성공 모델이 된 사람이다. 개인적 이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강한 '전사'인지를 알 수 있다. 50세가 될 때까지 정치적 출세 가도를 달리며 독신으로 살아가던 카머라 해리스는 2014년 변호사로 일하는 더글러스 엠호프(Douglas C. Emhoff, 1964)와 혼인했다. 더글러스 엠호프는 재혼으로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으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카머라 해리스의 어머니 시야말라 고팔란(Shyamala Gopalan, 1938~2009)은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태어나 인도 델리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약관 25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일해온 지식인이었다. 고팔란은 자메이카 출신으로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도널드 해리스(Donald Harris)와 결혼했으나 카머라 해리스가 7살 때 이혼하고는 1971년부터 두 딸을 홀로 키워낸 이른바 싱글맘이다.

카머라 해리스는 2019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며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자신이 대학생 시절에 마약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 소식을 듣고 카머라 해리스의 아버지는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고 강력하게 비난한 바 있다.

간단히 살펴본 이력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카머라 해리스는 매우 진보적이며 성평등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다. 소수인종 여성으로서 검사, 주법무장관, 상원의원 등 출세 가도를 달려온 그는 흔히 '여자 오바마'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여성과 유색인종의 희망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 특히 정계에서 유색인종과 여성은 아직도 소수자로 여겨진다. 트럼프는 미국 정계와 언론에서는 이단아로 비치지만, 그 자신이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왔고 재력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정통 WASP(와스프, 흔히 미국사회 주류 지배 계급을 일컫는 말)는 아니지만, 미국으로 이민 온 지 3대 만에 자수성가해 미국의 주류(establishment)에 당당히 속한 집안의 인물이다.

그런 트럼프는 물론, 공화당 부통령 펜스와도 여러 면에서 카머라 해리스는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다. 카머라 해리스가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선택된 것으로 이제 2020년 미국 대선은 단순히 민주당-공화당 대결이 아니라 미국의 진보와 보수의 극명한 대결 구도를 이루게 됐다.

사실 2016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부와 명예를 거머쥔 미국 최고의 엘리트로서,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이미지로 전통적인 민주당의 지지 세력인 소수자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그 당시 클린턴이 싫어서 할 수 없이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사람들조차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동안 바이든은 늘 자녀들 의견을 존중하는 자상한 아버지 모습을 보였지만, 트럼프는 전형적인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 왔다.

민주당 해리스 vs. 공화당 펜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가운데)이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모습.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가운데)이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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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소수자의 상징과도 같은 카머라 해리스, 그의 대척점에 있는 마이크 펜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독교 신자, 보수주의자, 공화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가 있다. 그는 인디애나 주지사 시절 이른바 종교자유회복법(Religious Freedom Restoration Act, RFRA)을 비준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이는 성소수자를 차별하기 위한 법이라는 해석도 많다. 보수 기독교에서는 이 법을 매우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펜스는 재생 에너지 정책에 반대하고 화석 연료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학교 단체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 시설에 주차된 자동차 안에서도 총기를 휴대하는 법을 승인했다.

펜스는 또한 낙태를 제한하는 법도 비준했다. 심지어 미국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 법을 통해 (낙태) 적출물의 화장이나 매장을 의무화하도록 조치했다. 사실 앨라배마, 캔자스, 알칸사스 주들과 더불어 인디애나주는 미연방대법원에서 동성혼을 합법화했음에도 성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의 차별 금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보수적인 지역이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2018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인디애나 주의 주민들 가운데 자신이 진보주의자라고 밝힌 응답자는 17%에 불과하고, 보수주의자라고 응답한 이들은 39%에 달한다. 그런 보수적인 주에서 주지사를 지낸 펜스도 보수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카머라 해리스가 속한 캘리포니아 주는 비교적 진보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그가 태어난 오클랜드시는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에 속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싱글맘의 가정에서 자란 카머라 해리스가 진보적인 정치관을 가진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으로 근무할 당시에 특히 소비자 권리와 성소수자 권리 증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금융기관들이 담보대출을 명분으로 일반 시민 집을 불법적으로 차압하는 경우를 적발해 보상을 하게 만들었고, 대기업들과의 사생활 침해 방지 조치 협약을 끌어냈다. 무엇보다 동성혼을 무효화 하려는 주정부 법 개정에 맞서 동성혼의 합법화를 이끌었다. 환경보호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러 석유회사에 징벌적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해리스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매우 강력히 대응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 예로 그는 상대 여성의 소셜 미디어를 해킹해 개인적 사진을 빼낸 남성 스토커를 4년 구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2016년 공화당 후보가 없는 선거에 출마해 비교적 쉽게 미연방 상원에 진출한 해리스는, 미국에서 트럼프와 사사건건 대립할 뿐 아니라 그의 탄핵 추진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하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어설픈 외연 확대는 없다

이제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어설픈 외연 확대와 포용 전략을 포기하고 자기 색깔을 명확히 드러내면서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일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오랜만에 정책 대결이 아닌 이념 대결의 장이 열린 것이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진보든 보수든 커다란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의 정치계에도 큰 파문을 불러올 것이다.

그 대결의 최전선에 지금 카머라 해리스가 서 있다. 그는 이제 55세로 77세의 조 바이든이나 74세의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61세의 마이크 펜스보다 젊다. 미국 민주당 말고도 이 젊은 '전사'의 활약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연설하는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연설하는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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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리스, #미국대선, #트럼프, #바이든, #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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