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3 18:47최종 업데이트 20.08.1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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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민주당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 연합뉴스

 
"지금은 정상이 아닙니다. 똑똑하고 터프하게, 나와 함께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카멀라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미국 시간 8월 11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이 카멀라 해리스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발표했다. 


부통령 후보 선정에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큰 관심이 쏠렸던 적이 있었을까 싶은 장고의 결과였다. 대통령을 보조할 조력자를 넘어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했다. 약체로 평가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란 평가도 있다. 무엇보다 현 트럼프 정부와 싸울 수 있는 '겁 없는 투사'로서 그녀가 최선이었다는 분석이다. 

올해 55세, 자메이카계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아시아인 어머니를 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부통령 후보다. 조 바이든의 연령과 건강 상태를 감안해 가장 확실한 미국의 다음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기에 더욱 관심이 뜨거운, '대통령 같은' 부통령 지명자가 드디어 공표됐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왼쪽) 전 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12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함께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버스 타고 먼 등교하던 소녀 

카멀라 해리스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 첫 사건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토론회였다. 민주당의 첫 대통령 후보 토론회는 두 번으로 나누어 치러야 했을 정도로 스무 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가장 많은 관심과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첫 민주당 후보 유세 승자는 바로 카멀라 해리스. 2019년 6월 27일, 그녀는 가장 유력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을 매섭게 공격했다. 

"캘리포니아에 공립학교 통합 2교시 소속 어린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매일 버스로 등교했습니다. 그 어린 소녀가 바로 나였습니다." 

분노를 삼키는 듯한 해리스의 말에 노령의 후보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바이든은 토론 중 70~80년대는 민주-공화 정파 간 화합이 가능했고 서로를 존경했다며 좋았던 옛날을 회상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해리스 후보가 이의를 제기한 것. 바이든이 공화당 의원들과 "연대"해 반대했던 버싱(Busing) 관련 법안이 당시 어린 흑인 소녀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는지 설명한 것이다.

이 법은 백인과 흑인 학생이 함께 스쿨버스를 탈 수 있게 한 흑백 통합 정책으로 흑인 단체가 10여 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70년대 후반에야 확정돼 시행됐다. 그 지난한 싸움은 바로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하던 조 바이든 같은 민주당 의원 때문이었다는 것. 해리스는 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 싶었던 당시 자신과 같은 흑인 커뮤니티의 아이들이 민주/공화가 합작해 막은 법에 의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공격한 것이다. 궁색한 변명을 하던 바이든은 자신에게 주어진 답변 시간이 남았는데도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모습까지 시청자에게 보여줬다.

이 날 바이든은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운 답변을 하며 1위 유력 주자의 위치를 스스로 의심케 했다. 의회 전문매체 <더 힐>은 이날 토론의 확실한 우승자는 카멀라 해리스라고 평가했다. 

초반 승세를 잡고 유세를 펼쳤던 카멀라 해리스는 그 해 12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조용히 물러난다. 자금난과 내부 갈등이 원인이었다. 

반대로 민주당 조직의 전폭적 지지로 초반 열세를 극복한 조 바이든은 최종까지 겨루던 버니 샌더스를 제치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 사이 팬데믹과 흑인 인권운동 그리고 전 세계를 달군 여성 운동의 열망이 뒤섞이며, 자연스레 부통령은 무능한 현 정부와 싸울 수 있는 여성이자 유색인종 후보로 좁혀졌던 것. 첫 토론회에서 언급된 '흑인'으로서의 그녀의 불리한 조건은 부통령 지명 과정에선 큰 어드밴티지가 됐다. 
 

미국 대선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 연합뉴스

 
여성 버락 오바마? 남성 카멀라 해리스!

카멀라 해리스는 흑인 커뮤니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나고 자랐다. 1964년 자메이카 출신 경제학자인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암 연구자인 아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해리스의 어머니는 인도의 델리 대학 졸업 후 열아홉의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캘리포니아로 온 유학생이었다. UC 버클리에서 공부하며 캠퍼스 내 민권 운동 과정에서 남편을 만나 해리스와 여동생을 낳는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기 위해 세계 반대편에서 왔습니다. 하나는 인도에서, 다른 하나는 자메이카에서 세계적인 교육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1960년대의 민권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오클랜드 거리에서 학생들로 만나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투쟁에서 정의라고 불리는 것을 위해 행진하고 소리치는 방법이었습니다."

8월 12일, 부통령 지명 후 바이든 후보와의 첫 합동 연설 자리에서 그녀는 이민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카멀라 해리스가 쓴 자서전 속 어머니는 미국 땅에 도착한 순간부터 흑인 공동체에 편입됐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낸 것으로 기록된다. 두 사람은 그녀가 7살 때 이혼했다. 하지만 엄마는 200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씩씩하게 인생을 살아온 여성으로서 해리스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남았다. 해리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에 이르기까지 외교관 가문이었던 그녀의 외가는 남다른 역사의식과 인도주의적 성향이 강한 가족이었다.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서, 1958년에, 독신 여성 혼자 미국 유학을 가는 경우는 거의 처음이었을 정도로 놀라운 용기였다. 

흑인 커뮤니티에서 인도인 싱글맘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 해리스는 워싱턴 DC에 있는 하워드 유니버시티를 졸업한다. 흑인들에게 고등 교육을 제공할 목적으로 1867년 인가된 유서 깊은 이 학교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중 마지막으로 졸업연설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대학생활 중 흑인 인권운동 클럽에 가입해 활동한다. 졸업 후 고향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쿨을 마친 후 샌프란시스코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 캘리포니아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을 거쳐 2017년 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된다. 이름 앞에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이 낯설지 않은 해리스는 다시 또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을 목전에 두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흑인 여성' 카멀라 해리스 상원 의원을 자신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 사진은 바이든(왼쪽) 전 부통령과 해리스 의원이 지난해 9월 1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를 끝낸 뒤 얼굴을 마주 보며 악수하는 모습. ⓒ 연합뉴스

 
세계가 주목하는 그녀의 싸움

CNN은 해리스가 조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후, 인도 마두라스에 있는 그녀의 외가 친척들을 인터뷰한다. 케냐 유학생이던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비슷한 성장과정을 가진 카멀라를 인도 사람들은 "여성 버락 오바마"라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오마바를 "남성 카멀라 해리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농담한다. 카멀라의 삼촌은 누나가 자신의 딸에게 한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항상 가만히 있지 마. 할 수 있다면 뭔가를 해." 

해리스의 성장과정에서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였던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는 것에 반해 엄마에 대한 얘기는 풍성하다. 흑인 커뮤니티에 거주하면서 그 시절 인도 남부에 있는 외가를 다녀오며 인도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인도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외가는 타밀계로 카멀라란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어려서 흑인 침례교회와 힌두 사원을 동시에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해리스도 외가 쪽 언어인 타밀어를 할 수 있다고. 그녀는 자신과 같은 인도계 2세 배우인 민디 켈링과 인도 요리 유튜브 등을 찍으며 미국 인구의 1%가 넘는 약 3백만 명의 미국 내 인도계 유권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말고도 미국 정치인 중에 아시아 출신으론 유독 인도계가 많다. 전 UN대사인 니키 헤일리,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 바비 진달도 한동안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거물들이다. 이들을 건너뛰고 가장 먼저 카멀라 해리스가 중앙 정치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흑인 여성들의 정치력과 그리고 우리의 문화, 공동체, 국가를 형성하는 그들의 역할을 저평가해 왔습니다."

부통령 지명 3시간 전, 해리스는 트위터에서 우리 사회를 '더 민주적이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앞장 선 유색인종 여성들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부당한 평가를 비판했다. 앞선 여성들의 희생과 노력 속에 서게 된 자리의 무게를 총명한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러닝메이트 지명 후 조 바이든과의 첫 연설에서 그녀는 "모말라"라는 자신의 별명을 언급했다. 여러 다른 자식들을 돌보고 부양하기 위해 마음과 주머니를 열어주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복잡한 아이덴티티와 다양한 경험과 큰 꿈이 있는 그녀에게 적합한 별명 같다.

2014년 결혼한 해리스의 남편은 아내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이 되면 미국 최초의 "세컨드 젠틀맨"이 된다. 

"카멀라 해리스는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2021년 1월부터 이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최고의 인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조 바이든의 소개에 카멀라 해리스가 대답했다.

"조 바이든은 우릴 위해 평생 싸웠고 미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우리의 이상에 부응하는 미국을 건설할 것입니다. 나는 그와 함께 우리 당의 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그를 우리의 최고 책임자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조 바이든은 카멀라 해리스를 두고 미국을 위한 "용감한 투사"라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에너제틱하고 가장 미국적인 인물, 카멀라 해리스의 '용감한 투쟁'이 시작됐다. 미국이, 세계가 그녀의 싸움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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