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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알바생인데, 손님들에게서 "점장님이시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느새 내가 그래 보일 나이가 되었구나. 우리 편의점은 아파트 상가에 있다. 위치도 외진 편이라 오는 사람들만 온다. 사장님께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지만, 동네장사라서 변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주택가라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들이 많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멀리 놀러가지 못하는 요즘은 아이들과 나들이 삼아서 오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다. 삼십 대의 여자와 남자, 네댓 살 꼬마애 한둘이 들어서면 으레 "자, 준서 먹고 싶은 거 골라" 하는 말들이 먼저 들린다.
 
유리문 근처로 손님이 다가오면 인사할 준비를 한다.
▲ 계산대에서 바라보는 시선 유리문 근처로 손님이 다가오면 인사할 준비를 한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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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님이 보지 않는 사이에도 발돋움을 해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려놓고, 천진함과 설렘이 넘치는 눈망울로 나에게 빨리 바코드를 찍으라는 사인을 보낸다. "안 돼!! 하나만 사." 엄마 아빠는 연거푸 호통을 치는데, 아이는 천진함과 설렘만을 간직한 채 계속 이것저것 가져와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마스크 안으로 웃음이 난다.

노년의 손님이 같이 온 경우는 분위기를 보면 친정 부모님이 오셨는지 시댁이나 처가댁에서 오셨는지 알 수 있다. 친정 엄마와 함께 온 딸은 세상 편안해 보이고, 장인과 함께 온 사위는 좀 머쓱한 채 각이 잡혀 있다. 셋 중 어떤 관계든 간에 공통점은 서로 결제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제가 낼게요."
"아이다, 내가 사주께."


대한민국 어느 가게를 가든 이런 모습이 없을까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편의점이라는 말의 어딘가 고독하고 현대적인 느낌은 단어가 주는 느낌일 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의 동네 구멍가게나 점빵을 대신해 사람들의 생활 속에 촘촘히 끼어 있는 장소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고, 그런 것치고는 또 사회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어 간다.

미미한 미미슈퍼와 위풍 좋은 대한슈퍼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부모님은 작은 슈퍼를 인수해 몇 년간 운영하셨다. 말 그대로 구멍가게나 점빵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작고 낡은 가게였다. 이름은 '미미슈퍼'. 이름처럼 슈퍼가 손님을 끄는 힘은 미미해 보였다.

원체 벽과 바닥재, 선반 자체가 시골스러워서 뭘 해도 일반 슈퍼처럼 세련돼 보이지는 않는 그곳을 어머니는 매일 깨끗이 닦고 정리하셨다. 외상값을 안 갚는 손님들 얘기를 할 때나 그날 번 돈을 세어 볼 때는 한숨을 쉬셨지만, "이거라도 어디냐잉?" 하며 날 보고 웃기도 하셨다.

우리 가게가 없어진 것은 바로 근처에 다른 슈퍼가 생겼기 때문이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생긴 그 가게는 다른 슈퍼들처럼 깨끗하고 있어 보였다. 안 그래도 매출이 나지 않던 우리 가게는 손님이 더 떨어졌고, 부모님은 곧 가게를 정리하기로 하셨다.

이제 다른 일을 찾으셔야 했다. 나는 두 분이 답답해하며 가게를 지키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잘됐다 싶기도 했지만, 역시 그 가게(이름도 기억이 난다. '대한슈퍼')가 얄미웠다. 그래서 손님으로서 그 가게에 갔을 때, 나에게 말을 거는 주인에게 "근처 살아요. 저 미미슈퍼집 딸이거든요"라고 싸늘한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도 난다.

"대한슈퍼 기억나지? 우리 슈퍼 옆에 생겼던 데. 거기도 없어졌댄다. 그 앞 큰길에 ㄹㄷ마트 있잖아. 거기 때문에 장사가 안됐다 그러드라."

우리 집이 슈퍼를 하는 동안 부모님이 바쁘시면 내가 가게를 보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편의점에서도 연세 많으신 손님들의 행동이 좀 더 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직접 찾아보려 하지 않고 들어오면서부터 "식초 어디 있나?", "소주 한 병 주시오"라고 말씀하셔도 그러려니 하고 물건을 찾아들고 간다.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따라잡고 있는 사회의 변화는 어마어마하다. 물지게를 져 나르며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이 이제 편의점에서 카드로 생수를 사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그 정도 도움쯤은 드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청년과 노년의 중간 세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애살 없는 알바생이지만

사실 난 단골손님이 사는 담배를 기억하거나 날씨 얘기라도 먼저 덧붙일 만큼 살갑고 싹싹한(부산 말로 '애살 있는') 편은 못 된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에 빠진 채, 말투만 상냥한 척 할 때가 많다. 오는 사람들에게 하루의 활력을 더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데 실상은 나부터 피곤해서 활력이 없는 날들도 있다.

아르바이트로 편의점 일을 선택한 것도 혼자 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매대를 닦고 물건을 채우고 튀김을 튀기면서, 머릿속으로는 쓰고 있는 글이나 쓸 글에 대해 이런저런 구상을 할 수 있다. 큰일만 없다면 사장님과도 업무공책에 남기는 필담으로만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오히려 '나, 사람들을 꽤 좋아하네' 하고 느끼게 된다. 물론 매번 반말로 물건 이름만 외치는 분들도 계시고, 돈을 던지거나 따지듯이 말하고 인사에는 절대 대꾸하지 않는 손님들도 있다. 점포 앞 휴게공간에는 먹고 마신 것을 그대로 두고 가서 개미가 잔뜩 꼬인 쓰레기를 치우곤 한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앞으로 더 심한 경우가 많아진다면 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가 "편의점 일은 어때?"라고 묻는다면 나는 다른 얘기들을 해주고 싶다. 사람들과 나누는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코로나 때미 이기 우짜겠노? 이르다 나라 다 망한다." 담배를 사며 맥락 없이 던져오는 말에 나도 얼굴을 구기며 "그러게요~." 능글능글한 맞장구 한 번이면 적어도 그 순간은 손님도 나도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오메, 깜빡하고 마스크를 안 쓰고 왔네. 급하게 나오느라" 하며 미안해하는 손님들도 심심찮게 오신다. 나는 '말씀을 아예 안 하시면 돼요~. 그런 말씀도~.^^'라는 말을 꿀꺽 삼키는데, 말의 내용과 행동이 맞지 않는 어르신의 경솔함이 어쩐지 미워 보이지는 않아서다.

지난주에는 여고생 둘이 아이스크림 2개를 골라 왔다. "이거 투 플러스 원이니까 하나 더 가져오시면 돼요." 내 말에 학생은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가져 왔고, 봉지에 아이스크림 3개를 담아주려는데 학생이 그 중 하나를 꺼내더니 나한테 공손히 내밀었다. '응? 나?? 왜??' 하는 눈으로 그 둘을 보는데, 학생들이 수줍게 말했다.

"이거 드세요. 저희는 둘이라서 어차피 다 못 먹어요." 두 사람이면 한 개씩 먹고 나머지 하나는 나눠먹어도 될 일인데. "아니면 누구 줄 사람 없어요?" 하는 말에도 그저 "아니에요. 드세요" 하고 거듭 내미는 마음 씀이 아기자기하고 다정했다.

마침 저녁을 제대로 안 먹어서 당이 몹시 끌리던 차였고, 또 마침 교대시간이었다. 편의점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 포장을 벗겼다. 아주 오랜만에 재회한 스크류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상큼했다.

딸기와 사과맛의 절묘한 조합은 몇 번 깨물고 씹자 내 몸 어딘가로 삭 흩어져버렸다. 적당한 아쉬움을 음미하며 멍하니, 정류장 앞 나무들이 밤바람에 흔들리는 걸 바라보았다. 시원한 여름밤이로구나. 그리고 그 여학생들이 다시 왔을 때 내가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좀 더 봐둘 걸 그랬다고.

편리한 것이 꼭 편안한 것은 아닌가봐

15년 전 미미슈퍼가 대한슈퍼에 밀려 문을 닫고 대한슈퍼가 대형마트에 밀려 사라진 후, 대형마트는 성업 중이다. 이제는 마트에 셀프계산대가 늘어 캐셔마저 줄어들고 있다. 무인시스템을 이용하는 편의점도 늘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은 시점에 나 같은 알바 생활자들도 기억의 저편에서 찾는 존재가 될지 모르겠다.

심지어 무인 편의점은 매출도 더 오른단다. 아, 잠시 마주치는 사람마저도 불편했던 거구나. 편의점 계산대에 서 있는 내가 자잘한 불편감을 주는 사람은 아닌지 반성이 되기도 한다.

지금 노인이 되신 분들이 새로운 사회분위기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살아오셨듯이,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 변화에 당황해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같이 일하는 알바 자리보다 혼자 일하는 자리를 찾는, 삶에 지쳤다며 더 편한 것을 찾는 나 역시 이러한 변화에 일조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처음 우리 편의점을 발견한 손님들은 아직도 그 전에 있던 슈퍼에 대해 묻는다. 그 주인분들은 어디로 가셨느냐고, 이제 아예 장사를 접으신 거냐고, 그 양반들하고 참 가깝게 잘 지냈는데, 24시간 여는 깨끗한 가게가 생겨서 좋다고 하면서도 주인과의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는 손님들의 표정이 늘 마음에 남는다.

그분들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동네 상가에서 소소하게 말을 섞던 경험과 그렇게나마 마음을 나누었던 대상을. 그 표정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더 '편리한' 것이 찾아와도 그것이 꼭 '편안한' 것은 아닌가봐, 하는 것.

슈퍼에 밀려 사라진 구멍가겟집 딸이었고. 슈퍼를 밀어내고 생긴 편의점의 알바생활자인 나는 지금의 내 자리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도 언젠가 사라진 후에는 지금의 손님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리운 불편'이 되려나.

이 글에는 다 싣지 못한 편의점 손님들 이야기도 적어두고 싶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쩐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 이야기. 상품을 훔쳐 달아나는 학생을 보고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 한참 후 그 학생의 팔을 붙잡고 돌아오신 젊은 남자분, "이 옷 어때요?"라고 수줍게 묻고 너무 잘 어울린다는 내 말에 환하게 기뻐하던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 트랜스젠더분 등등.

그리고 이제 다른 생각을 하는 멍한 눈이 아니라 초점을 갖춘 눈으로, 찾아오시는 분들께 더 오래 눈을 맞출 수 있으면 좋겠다. 사무적인 편리함이 아니라 편안함을 나누어 가지는 순간을 더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은 반려견을 데리고 자주 오시는 아주머님께 한 마디 더 건네봤다. "근데 저분은 성함이 뭐예요?" 잠시 벙쪄 있다 폭소를 터뜨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나는 퇴근 무렵의 피로를 잠시 잊었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편의점, #아르바이트, #키오스크, #AI, #세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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