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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그 나무를 본 건 세계적인 관광지인 LA 그리피스 천문대 근처였다. 말라 죽은 홀쭉한 나무 기둥에 3, 4마리의 새들이 앉아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딱따구리였다. 자세히 보니 나무 위에 구멍들이 잔뜩 뚫어져 있었다. 딱따구리가 집을 지으려고 구멍을 만든다는 건 알았지만 전봇대같은 나무에 수백 개의 구멍을 왜 팔까 궁금했다.
 
도토리 딱따구리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에 수많은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저장한다
▲ 나무 위의 도토리 딱따구리  도토리 딱따구리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에 수많은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저장한다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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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떤 종류의 딱따구리들은 죽은 나무에 구멍을 뚫고 벌레나 도토리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먹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은행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새가 있다니…

그리고 어느 날 다른 산에서 그 놈을 다시 만났다. 도토리 딱따구리. 도토리가 주식인 이놈들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나무에 구멍을 뚫고 저장하는 습성을 가진 새들이다. 한 나무에 3~5마리의 무리가 모여 살며 겨울철 먹을 도토리를 구멍 속에 저장한다.

나무 하나에 3만개의 도토리를 저장하기도 한다고 한다. 나무에 박힌 도토리들을 다른 새가 훔쳐갈까 노심초사하면서 나무 주위를 감시하기도 한단다. 많은 동물들이 그날 필요한 양식을 그날 그날 찾아서 살아간다고 알았는데 이 딱따구리는 식량 저장 창고를 만들어 저장했다 먹는다니, 참...
 
한 나무에 2-3만 개의 도토리를 저장하기도 한다
▲ 딱따구리가 저장한 도토리들  한 나무에 2-3만 개의 도토리를 저장하기도 한다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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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저렇게 많은 것들을 먹기는 다 먹는 걸까? 어느 정도 모아야 충분하게 모았다고 할 수 있을까? 도토리 딱따구리들은 죽은 나무만 보이면 모든 것이 자기네 식량 저장 창고로 보이는 모양이다.  

멀쩡히 사람들이 사는 주택의 문설주에 구멍을 내어 도토리를 저장하기도 한다. 몇 주간의 휴가로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출입문 주변 나무 기둥에 수백 개의 도토리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단다. 또 장기간 비워져 있던 집을 공사하려고 벽면을 뜯었더니 빈 벽 공간에서 몇 만개의 도토리가 나온 사례가 있기도 하단다.
 
도토리 딱따구리는 일반 목조 건물에도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저장하곤 한다
▲ 딱따구리가 뚫어놓은 구멍들  도토리 딱따구리는 일반 목조 건물에도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저장하곤 한다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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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그야말로 저장 강박 아닌가? 힘들게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하나 박아두는 행위가 계속되다 보면 나중엔 미래를 위해 필요한 양식을 저장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임을 까먹는지 싶다. 그저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저장하는 행위의 연속에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쓰다보니 갑자기 '어~ 이거 우리네 사람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의미 있는 것들로 시작된 많은 것들이 어느 순간 그 목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강박관념처럼 쌓아가는 도토리 구멍같은 일들이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은가?

처음엔 열심히 일해서 저금하는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한푼 두푼 저금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며 뿌듯했던 느낌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돈 모으는 것에 강박이 생기고 하루도 놀지 않고 돈을 쌓아가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토리만 모아 가는 딱따구리처럼 나무 하나가 꽉 차고 옆집 빈집 벽면을 가득 채워도 도토리 채우는 일은 끝날 줄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딱다구리는 보이지 않고 나무 기둥 전체에 도토리만 가득 채워진 나무가 보이기도 한다.

저 수많은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채웠던 딱따구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왜 먹지도 않을 도토리를 저토록 가득, 저토록 힘들게 채워 놓았던 것일까?

태그:#도토리 , #딱따구리 , #저장 강박 ,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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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있는 산부터 이름없는 들판까지 온갖 나무며 풀이며 새들이며 동물들까지...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사진을 찍다가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는 순간 등, 항상 보이는 자연이지만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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