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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이미지 오른쪽)의 저자 페르 홀름 크누센 작가(왼쪽).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이미지 오른쪽)의 저자 페르 홀름 크누센 작가(왼쪽).
ⓒ 페르홀름크누센/담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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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유아동 성교육책을 두고 두 나라에서 '불건전' 논쟁이 벌어졌다. 두 나라의 정치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 결과는 천지 차이였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둘러싼 덴마크와 대한민국 이야기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1971년 당시 덴마크 국회의 매우 보수적인 국회의원들은 '공공도서관에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회수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이를 막았다. 책이 나온 다음해엔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책은 전세계에 번역 출판될 수 있었고, 49년이 지난 지금 '덴마크의 지난 100년 역사를 대표하는 100개의 물건'에 선정됐다. 이 책의 저자 페르 홀름 크누센(74)이 <오마이뉴스>에 직접 전해준 이야기다.

   
2020년 한국은 많이 다르다. 지난 25일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은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비롯한 '나다움 어린이책'이 조기 성애화, 동성애·동성혼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 책을 두고 "성교육 서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초등학생의) 조기 성애화가 우려되는 내용까지 있다", "그림 보기가 상당히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돼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후 하루 만에 '나다움 어린이책'의 주관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이미 배포된 '나다움 어린이책'을 지원 초등학교에서 회수 조치했다.

페르 홀름 크누센은 한국에서 '삽화가 민망해 초등학생 성교육 서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것은 현대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책에는 어린이를 위한 기본적인 성교육 내용이 담겨 있다"라고 반박했다.

다음은 페르 홀름 크누센과의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저자가 말하는 50년 전 덴마크와 2020년 대한민국
"왜 사실적인 그림 넣었냐고? 현실적이고 교육적이길 바랐기 때문"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중 한 페이지.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중 한 페이지.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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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가 초등학생 조기 성애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덴마크에서 당신의 책 때문에 조기 성애화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

"말도 안 된다. 덴마크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지난 49년 동안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어서 피해를 본 사람은 없다. 덴마크에서 조기 성애화한 아이들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이 책을 좋아하고 사랑한 이들로부터 전세계적으로 너무나도 많은 감사를 받고 있다."
 
- 이 책이 출간될 당시(1971년) 덴마크에서 책을 두고 '어린이의 성교를 조장한다' '외설적이다' 등의 논란이 있었나.

"당시 덴마크 국회에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공도서관에서 이 책이 없어지길 원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극보수 기독교 정치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덕분에 책은 공공도서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웃음)."

- 당신의 책이 초등학생 성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그런 주장은 현대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이 책에는 어린이를 위한 기본적인 성교육 내용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설명돼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지난 25일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 때 발언하고 있는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
 지난 25일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 때 발언하고 있는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
ⓒ 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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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외설적이라고 보는 이들의 사고 방식은 무엇에 근거할까.

"나는 한국 국회에서 내 책을 언급한 그 국회의원을 모른다. 하지만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거나, 엄격하게 종교적인 사람이거나, 아니면 섹스에 거부감이 있는 것 아닌가 추측한다."
 
- 왜 이 책에는 사실적인 그림을 넣은 건가. 한국의 한 국회의원은 이를 두고 '적나라하다' '민망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이 현실적이고 교육적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사람들이 대부분의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에서 그렇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웃음)."

그는 서면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에게 별도의 메일을 보내 덴마크 사람들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웹사이트를 알려줬다. 이 책이 9월 4일부터 덴마크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덴마크인의 지난 100년 동안의 이야기' 전시회에서 덴마크 역사를 대표하는 100개의 물건 중 하나로 선정됐다는 내용이었다(덴마크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바로 가기).
 
덴마크 현지에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의 명성은 출간된 지 5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2020년 한국에서는 '조기 성애화 야기', '민망하고 적나라하다'는 오명을 썼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덴마크 국립박물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 덴마크 국립박물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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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기는어떻게태어날까, #페르홀름크누센, #김병욱, #성교육,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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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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