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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놀러 와라."
"왜?"
"왜긴... 보여 줄게 있으니까~그러지."


퇴근이 1시간 남짓 남은 시점에서 형의 급작스런 호출이 들어왔다. 우리는 같이 저녁이나 먹을 요량으로 난 닭강정을 상민이 형은 소시지를 구매했다. 그렇게 서둘러 일을 마무리 한 뒤 영훈이 형에 집에 가보니 그 새 살림이 하나 늘어 있었다.

"뭐여? 이 아름다운 검은색의 물건은? 어디 보자 이건 와인 셀러가 아닌 감?"
"맞아 와인셀러."
"오!! 비싸 보이는데? 도대체 이건 또 왜 산 거야?"
"비싼 와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어. 이 와인들을 보관해야 하니까 말이지."


형은 말 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그냥 사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난 적극적으로 형에게 의문을 던졌다.

"그냥 와인을 냉장고에 넣으면 안 돼? 도대체 뭐 하려고 이걸 산 거야?"
"어허! 안 될 소리를... 도대체 니가 개념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형은 기겁을 하며 대답했다.

"냉장고도 시원하잖아. 아니 난 이해가 안되서..."
"시원한 게 문제가 아냐,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면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형은 진지하게 날 보며 대답했다. 마치 '그건 상식인데 왜 넌 그걸 모르니?'라는 눈치를 준다. 난 질 수 없다는 듯이 맞받아 쳤다.

"무슨 문제 같은 소리를... 냉장고가 거기서 다 거기지. 이런 거 솔직히 다 허세 아니야? 업체들의 상술 아니냐고? 그냥 온도만 낮추면 되는 거잖아?"
"그랬으면 나도 와인 셀러를 사지 않았지. 잘 들어봐. 냉장고에 너 뭘 보관 하니?"
"냉장고에 어디 보자. 한국 사람은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으니... 김치하고 반찬하고 쌀도 보관하고 소시지도 보관하지."
"냉장고 열 때 반찬 냄새가 나지 않던?"
"당연하지. 냉장고에 반찬 넣으니까 음식냄새가 나지. 김치 냄새가 좀 강하긴 해~"
"바로 그거야! 냄새! 다양한 반찬 냄새가 와인을 망치게 해. 특히 코르크 와인들은 그런 냄새를 흡수하거든. 와인은 향으로도 마시는데 와인에서 김치 냄새가 난다? 넌 어떻게 할래?"

 
와인 셀러는 꼭 필요한걸까?
 와인 셀러는 꼭 필요한걸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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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그 상황을 상상하며 나에게 말했다. 매우 절망적인 표정 이였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그 표정은 오랜만에 본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나는 조금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긴 우리도 와인을 오픈 하면 항상 코르크에 묻은 와인 향을 맡잖아. 코르크가 반찬 냄새를 흡수할 수 있겠구나. 그러면 스크류는?"
"스크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다른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또 있어."
"냄새만으로도 심각할 텐데 문제가 또 있다고?"


나는 놀랍다는 듯이 대답했다.

"응! 그건 바로 온도야."
"온도?"
"맞아, 냉장고의 온도는 와인을 보관하기에 너무 차가워. 와인은 11도에서 13도 정도에 보관하는게 좋은데 냉장고는 저온으로 음식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와인을 보관하는 온도보다 훨씬 낮지. 대략적으로 2~4도 정도거든. 온도가 너무 낮을 경우 레드와인의 경우 주석산이라는 것이 생겨. 음. 너 포도즙을 마셔 본 적이 있니?"
"포도즙 좋아하지. 포도주스 같아서 자주 마시는 편이지."
"그런 포도즙 냉장보관 하면 뭔가 찌꺼기 같은 게 생기지?"
"어!? 비닐 같은 거? 유리 같은 거? 포도를 간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얇은 조각들을 본적이 있어. 결정처럼 딱딱한."
"그게 주석산이야. 레드 와인을 너무 차갑게 보관하면 그게 생긴단 말이야."
"아!?"
"그리고 레드 와인의 타닌성분은 너무 차가우면 와인을 쓰게 느끼게 해."
"하긴 레드와인을 시원하게 마셔도 좋았지만, 상온으로 마셨을 때도 정말 좋았던 것 같거든 더 부드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온도는 각자의 기호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렇게 마셔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온도를 찾는 거거든."


형은 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한 가지가 더 있어."
"또 있어? 아니... 셀러를 사기 위해 정말 몇 가지 이유를 찾은 거야? 직업병이야? 뭔가를 하기 위해 타당한 근거를 찾아야 하는."
"그건 아닌데, 와인을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알게 된 거지. 아무튼 다른 한가지가 뭐냐 하면 바로 진동이야."
"진동?!"
"응!! 진동, 냉장고에는 컴프레서라는 압축기가 있는데 이게 계속 미세한 진동이 있어. 하지만 이런 와인 냉장고에는 진동이 없지."
"아...?! 진동이 와인에 무슨 영향을 미쳐?"
"당연히 영향을 미치지.. 예를 들면 네가 집에서 편한 소파에 앉아 있는 거랑, 너 미국여행할때 밤 새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를 탔던 때랑 언제가 편해?"
"음.. 그거야 답은 정해져 있지."
"그렇지? 와인도 살아 숨쉬는 식물이라고 생각해봐. 계속 미세한 진동으로 스트레스를 주면 어떨까?"
"묘하게 그럴듯해... 아니, 그래서 그러한 이유로 60만 원이나 주고 와인 셀러를 산 거야?"
"훗! 셀러보다 와인이 더 비싸니까. 그 정도 투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정말 형도 대단하다.
 

나라면 엄두도 못 낼 가격이다. 60만 원이면 할 게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고 소비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었다. 누구를 비난하기 앞서 자신의 여력이 되면 하고 안 되면 안 하면 그만인 것이다.

"너도 사. 너도 와인 많이 가지고 있지 않냐?"
"음. 현재 한 30병 정도 있나?"
"여름이 되면 상온이 30도 이상 올라가. 그러면? 와인도 상할 가능성이 높단 말이야. 알겠지만... 곧 여름이다."
"아?! 진짜? 이게 얼마짜리 와인들인데..."
"식초 만들기 싫으면 너도 어서 구입 하는 게 좋을 거야."


형의 말은 나에게 깊숙히 다가왔다. 와인은 온도에 민감한 술이라고 하던데 30도도 못 버틸 정도로 와인이 약할까? 난 굉장한 혼란에 휩싸였다. 내가 모은 와인들 중 진짜 비싼 건 5~6병정도. 결국 나의 소중한? 와인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와인 셀러를 살 수 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괜히 이 형은 와인 셀러를 사서 날 심란하게 만든 걸까? 결국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난 뒤 난 와인 셀러를 사고야 만다. 다음 이야기는 셀러를 구매하기 위해 겪었던 시행착오에 대한 글이다.

태그:#와인, #와인초보, #와인모임, #와인앤라이프, #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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