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금 소리를 줄이세요."

유튜브에 '#몰티'를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의 첫 머리에는 이런 안내문이 나온다.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몰래 볼 수 있는 영상이라는 의미다. tvN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들을 짧게 편집해서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 'tvN D ENT'는 지난해부터 '몰래 보는 TV(티비)'를 줄여 '몰티'라고 이름 붙인 이러한 영상 콘텐츠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해시태그(#) 몰티를 검색하면 영상을 볼 수 있다.

'몰티' 코너로 편집된 영상들은 주로 tvN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의 짧은 클립 영상이었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특성상 대사가 빠르게 오가고, 특이한 목소리를 흉내내거나 우스꽝스럽게 말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런데 '몰티'는 목소리의 높낮이, 대사 처리, 말하는 사람의 세부적인 움직임까지 모두 자막으로 표현했다. 그야말로 소리 없이도 100% 영상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필자는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 콘텐츠에 대해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몰티'를 보기 시작했다.
 
 'tvN D ENT' 유튜브 채널의 '#몰티' 영상 캡처 화면. 영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러한 안내 문구를 보여준다.

'tvN D ENT' 유튜브 채널의 '#몰티' 영상 캡처 화면. 영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러한 안내 문구를 보여준다. ⓒ tvN

 
"제 동생 청각장애인인데 '몰티' 너무 재밌게 보는 거 보고 뭉클했네요. 감사합니다."
"이거 청각 장애 있는 사람들한테 좋네요. 굿굿"
"진짜 <코빅> 보고 싶었는데... 청각장애를 가져서 보기 힘들었거든요. 감사합니다."


특히 '몰티'는 청각장애인으로서 정말 좋았던 콘텐츠였다. #몰티 영상의 댓글에도 청각 장애인들의 감사 인사가 많았다. 나 역시 보면 볼수록 몰입하게 돼 영상을 하나 보자마자 그 다음 영상까지 계속해서 쭉 이어서 봤다. 모든 대사와 효과음, 심지어 관객의 웃음소리까지 센스 있는 자막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지상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이런 편집이 적용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45분에 방영되는 <코미디빅리그>는 코미디언들끼리 개그 코너로 대결을 펼치는 경쟁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1년에 총 4쿼터 경기(?)가 펼쳐지는데, 한 쿼터는 12라운드로 나뉘어서 코미디언들이 대결을 펼친다. 

현재 2020년 3쿼터가 진행 중이며 '코빅 총회', '랜선극장 초이스', '헤비멘탈', '2020 슈퍼차 부부' 외에 일곱 개 코너가 더 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몰티' 콘텐츠에는 이러한 콘텐츠 중 일부만 올라와 있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동안 눈으로만 봤던 개그 콘텐츠에 생생한 자막 삽입까지 더해지니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가장 인상깊게 본 콘텐츠는, 지난 5월 20일에 업로드 된 영상인 '리얼극장+느와르 = 꿀잼보장 폭풍 애드립 남발하는 리얼극장 대본 공개'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방청객과 제작진, 그리고 개그맨 모두가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자주 노출되어 보기에도 좋았다.
 
보통 청각장애인들은 자막과 시각적인 요소가 풍부한 (현재는 방영 종료된) MBC <무한도전>이나, KBS 2TV < 1박 2일 >과 같은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반면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내 공연 형태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주로 청인(비장애인) 문화만을 다룬다. 또한 목소리, 어투를 살려 방청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청각 장애인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어느 상황에서, 어느 대사에서 웃어야 할지 타이밍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몰티'는 이러한 불편함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한 콘텐츠였다. '아무 개그 대잔치' 코너 영상에서는 목소리와 어투에 따라 자막 효과를 다양하게 넣고 자막의 움직임도 다르게 적용해, 상황을 이해하기도 쉽고 무엇보다 눈이 즐거웠다. 간혹 비치는 방청객의 표정처럼 필자도 하하 웃으며 개그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었다.
  
 tvN 유튜브 '#몰티'에서 방청객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모자이크 처리 한 화면 캡처.

tvN 유튜브 '#몰티'에서 방청객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모자이크 처리 한 화면 캡처. ⓒ tvN

 
청각장애인은 개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늘 소외되기 쉽다. 영상 문화 향유를 위해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했을 정도다. 청인은 영화가 개봉되면 바로 관람이 가능하지만 청각장애인은 그렇지 않다. 선택한 영화를 가지고 와서 자막 처리 작업을 해야 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도 삽입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돼 늘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박자 늦게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가치봄(한글 자막 화면해설) 영화'의 경우, 효과음(배경음악)이나 대사만 간단하게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막 또한 색상 구분 없이 대사 처리에만 집중되어 있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지상파 방송이나 영화 자막도 '#몰티'처럼 생생한 효과를 줄 수 있다면 어떨까. 청각장애인들도 청인과 함께 공감하고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확대되기를 바라본다.
농인 청각장애인 수어 배리어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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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다수 매체 인터뷰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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