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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얘기로 글을 시작할까 한다. 나는 건강 문제로 인해 수술을 두 번 받았다. 병무청은 "질병을 앓거나 앓았던 사실로 인하여 군 복무가 곤란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병역판정 신체검사규칙에 따라 과목, 질환별 구비서류를 지참하여 신체검사를 받도록 한다. 나는 그 규칙이 명시해놓은 질환에 해당이 돼 여러 가지 서류를 제출했고, 최종적으로 사회복무요원(4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병무청에서 봤던 광경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병무청 직원 두 명 사이에 한 청년이 화환을 걸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고 보니 건강상 문제로 현역을 갈 수 없다고 판정을 받은 사람이, 이후 조건을 맞춰서 재검을 본 뒤 현역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개인 의지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화환까지 걸어주고 손뼉을 쳐주면서 '축하'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군 복무하는 것'이라 생각한,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된 건 아니었을까?

군대, 부모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아무개씨의 군 복무 당시 특혜 논란 때문에 시끄럽다.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부분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서씨는 입대 1년 전 무릎이 아파 수술을 했다. 입대 이후인 2017년에는 다른 한쪽 무릎이 아파서 또 수술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그는 21개월간 육군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연가 28일·특별휴가 11일·병가 19일 등 모두 58일의 휴가를 썼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도읍 국민의힘 간사(오른쪽)가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추미애 장관 아들 병가 의혹’과 관련해 군 간부와의 면담 일지 등이 포함된 대응 문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도읍 국민의힘 간사(오른쪽)가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추미애 장관 아들 병가 의혹’과 관련해 군 간부와의 면담 일지 등이 포함된 대응 문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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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규정상 문제가 있다는 쪽과 문제가 없다는 쪽이 맞붙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휴가를 쓰는 데 있어 특혜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21개월 중에서 2개월을 제대로 군 복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건강 상태인데 왜 군대에 갔느냐는 것이다. '아픈데 병가를 좀 쓸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기 전에, 저렇게 병가를 많이 쓰지 않고 절차상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현역 복무를 강행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집권여당 의원들이 이 논란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더욱더 기가 찰 수밖에 없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씨의 군 휴가 미복귀 특혜 의혹에 대해 "서씨는 군에 안 가도 되지만 간 것"이라며 "칭찬은 못할망정 자꾸만 문제로 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한 바 있다. 내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군에 안 가도 될 만큼 건강상태가 나쁜 사람이 군대에 가서도 치료를 지속해서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왜 그것을 칭찬해야 하냐는 것이다. 

설 의원은 또한 '어머니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군대에 가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개인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인 군 복무를, 어머니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행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설 의원의 말대로라면 추미애 당시 의원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에 갔다'는 뜻이 된다. 과대해석이라고? 하지만 설 의원을 포함해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애초에 서씨가 군대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쪽보다는 '서씨는 특혜를 받지 않았다'라는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선일보>를 포함한 많은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추미애 아들이) 특혜를 받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라는 식의 논조만을 전달하는 것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결국,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당연히 짊어져야 할 병역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짜로 불공정한 것은, '어머니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 그 자체다. 아픈 사람은 군대에 가면 안 된다.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 관련 보도들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 관련 보도들
ⓒ 포털사이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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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도 되는 군대를 다녀온 게 미담이 되는 세상... 뭔가 잘못됐다

서씨 논란을 보면서 또 다른 장면이 생각이 났다. <이낙연 "아들, 군대 보내려 민원했다가 야단맞았다">는 제목의 국민일보 기사다(2017년 5월13일자). 지난 2017년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들의 군 면제 경위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이 후보가 직접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당시 "아들을 군에 보내려고 간곡하게 탄원서를 보냈다"란 취지로 말했다(관련기사: [인사청문회] 이낙연, '아들 병역면제' 논란에 적극 반박 "전신마취 7번, 아비로서 슬퍼").

당시 이 제목으로 뽑힌 기사들이 많은데, 기사 제목만 보면 이는 마치 '미담'처럼 소비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낙연 아들이 1999년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수술했고 2001년 징병검사에서 3급 현역판정을 받고 입영을 준비했지만, 그해 12월 31일 운동 중 어깨가 다시 빠졌다는 것. 그래서 이아무개씨는 병역 재검에서 5급을 받아 면제됐다. 당시 '아버지 이낙연'이 2002년 당시 병무청에 보낸 탄원서가 <국민일보>에 보도됐었다. 

나는 궁금하다. 2000년경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한 이낙연 의원에게 있어 '병역면제 받은 아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이게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했을까? 이게 미담이라고 소비될 걸 분명히 알았을 아버지의 정치적 행위라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손뼉을 쳐주는 세상이라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2017년 5월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선서 하는 모습.
▲ 청문회장에 선 이낙연 후보자 지난 2017년 5월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선서 하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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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인구절벽에 따른 병력감소를 막기 위해 신체검사 기준을 낮춰 1~3급 현역판정률을 현행 80% 수준에서 90% 정도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전역하는 인원은 2015년 4572명에서 2018년 6118명으로 오히려 매년 늘고 있다.

또한 '적응 곤란'을 이유로 전역한 인원이 3500명에서 4800명 수준까지 늘었고, '신체 건강 문제'로 전역하는 인원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판정률을 높인다면 군대에 가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들까지 군대에 가게 될 것이고,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반복하지만, 단순하다. 아픈 사람은 군대에 가면 안 된다. 

오늘도 어디선가 현역 복무를 할 수 없는 사람이 현역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테고, 화환을 받고 사진을 찍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아프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래도 사람 취급해 주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태그:#추미애, #군대, #조선일보, #현역판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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