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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의 비거 테마공원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다. 이에 강주인문학연구회가 문헌 등에 나타나 있는 ‘비거’와 관련한 글을 보내와 싣는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한 찬반 논쟁글을 기다린다.[편집자말]
 
진주시가 만든 '진주재조명 역사 미니다큐 - 비거'의 한 장면.
 진주시가 만든 "진주재조명 역사 미니다큐 - 비거"의 한 장면.
ⓒ 진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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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역사서에 실린 비거에 관한 글

'비거'의 존재가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비거'를 관광자원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의 핵심이 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역사서에서 '비거'가 어떻게 기술되어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펴낸 저서 중에 진단학회에서 펴낸 <한국사> 중 1962년에 발간된 이상백 교수가 지은 '근세전기편'에 비거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한국사韓國史 - 근세전기편

이『한국사』는 1959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진단학회에서 발간한 모두 7권으로 된, 우리나라의 전 역사를 서술한 방대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서가 거의 없던 시대에 나온 저서라 사학자들이 널리 읽던 책이었던 반면에, 이 책에 서술되어 있던 많은 내용들이 부정확하여 그 후 역사학자들이 수정하고 보완하여 오늘날의 한국사 저서들이 만들어졌다.

'비거'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이 중에 '비거'에 관한 기록은 이상백 교수가 쓴 '근세전기편'에 들어 있다.
 
…… 軍·官·民이 한 덩어리가 된 이 晉州의 血戰이라말로 壬亂 중의 最大激戰일뿐더러 우리 民族史上의 一大光輝라 하는 것이며[주], 또 金堤의 鄭平九가 創作하였다는「飛車」를 써서 包圍中에 外部와 連落을 하였다는 것도 이때의 일이다. ……
[韓國史, 근세전기편, 진단학회, 을유문화사, 이상백, 1962, 644~645]
[주] 矗石樓에서 敵將 毛谷村六助를 껴안고 南江에 投身하였다는 義妓 論介의 傳說도 이때의 일이다.
 

우리는 얼핏 사학자들이 쓴 글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학자들이 쓴 글이라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글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반드시 근거가 밝혀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근거로 진위 여부를 밝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이 기록은 근거가 밝혀져 있지 않다. 위의 글에 [주]가 하나 붙어 있는데, 논개와 관련된 이 내용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거'에 관한 이 이야기는 전해오는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처럼 옮겨 실은 것일 뿐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진단학회의 <한국사>가 발간된 이후 세월이 지나며 우리 국사학계도 학문적 업적이 쌓이면서, 그 이전의 여러 역사적 기술의 오류가 시정되어 왔다. 오늘날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이상백 교수의 이 '비거'에 관한 기록을 학계의 공식적인 역사적인 서술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권위 있는 국사책에는 어디에도 '비거'에 관한 기록은 없다.

국가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93년~2002년 사이에 발행한 전 52권으로 된 "신편한국사" 제29권에 있는 진주성전투 부분에도 물론 '비거'에 관한 내용은 한 마디도 없다.

'비거'에 관한 어떤 기록에는 일본의 역사서인 <왜사기>에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므로 '비거'가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사국인 일본의 역사서에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면 비거의 존재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왜사기>란 책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의 어떤 역사서에도 '비거'에 관한 기록은 없다.

8) 김제 지역의 비거 관련 글

20세기 이전의 기록[여암유고의 '거제책',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비거변증설']에서는 '비거'의 발명자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옛 기록을 인용한 글임에도 20세기 전반기의 '비거'에 관한 글에서는 김제의 전설에 나오는 '정평구'를 '비거'의 제작자로 기록라고 있다.

김제 전설에 정평구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박살낸 이야기'가 있어 이를 빌미로 하여 '비거'를 제작한 영웅으로 올려 세운 게 아닌가 싶다. 정평구의 고향이 김제이니 김제에서 발행한 자료에 '정평구와 비거'에 얽힌 옛 이야기가 있을 법하여 김제에서 발행된 자료를 살펴보기로 한다.

김제[김제읍, 김제군, 김제시]에서 발행된 읍·군·시지 중 1884년(갑신년)에 나기익(羅基翊)이 편찬한 한문으로 된『김제읍지金堤邑志』가 김제에서 발행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자료를 비롯하여 1895년에 발행된 호남읍지, 그 후 1918년(대정 7년)에 발행된 한문으로 된『김제군지』에 정평구에 관해 모두 다음과 간략히 기록되어 있을 뿐 '비거'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鄭平九, 托蹟滑稽遊心放狂 丙亂赤身弄絡淸陣"(정평구, 고적에 의하면, 골계가 있고, 건달이며,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1월) 때 맨몸으로 청나라 진영을 농락했다.)[정평구의 족보를 보면 1566년에 태어나 1624년에 사망하였다고 하니, 뒤쪽의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이 어거지로 지어낸 것이다.]
 

그러나 1982년에 김제군에서 발행한『김제의 전통』에는 '비거와 관련된 정평구'의 일화가 실려 있다.
 
- 해학과 유모어가 풍부했던 정평구 -
공의 본관은 동래로 김제군 부량면 제월리 출신이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특히 공이 발명해온 것으로 전해지는 비차(飛車)는 농성중인 아군과 2~30리 떨어진 아군과의 연락용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인데, 이 신 발명 무기가 임진왜란 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으나, 임란사를 적은 왜사기(倭史記)에는 이 비차가 정식으로 거론되어 있고, 그 비차로 말미암아 왜군이 작전을 전개하는 데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까지 곁들여 나오고 있어, 그것이 이곳 출신인 공의 정식 발명품이라면 이 이야기가 한낱 전설이나 야사에 그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의 기록으로서 각광을 받아야 할 것이다.[김제의 전통, 발행인 김제군수, 1982년, 제1편 역사와 문화의 향기, 68쪽]
 

이 기록은 1982년에 된 것이라, 그 이전의 자료에 있는 것을 참고로 했을 것인데도, '비거'의 용도가 모호하게 서술되어 있다. 유인 비행체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연락용 비행체를 정평구가 발명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왜사기'에 정평구가 만든 비차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김제의 전통>에 실려 있는 정평구에 관한 기록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디지털김제문화대전>에도 정평구가 '비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디지털김제문화대전

정평구(鄭平九)는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제월리에서 1566년 3월 3일 출생하여 1624년 9월 죽었다. 무관 말단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는데,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에 의해 진주병영 별군관(別軍官)이 되었다. 정평구는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金時敏)의 휘하에서 화약을 다루는 임무를 맡았다. 이때 일본의 신식 무기인 조총의 위력에 조선군이 압도당하자 비행기의 일종인 비거(飛車)를 만들었다.

정평구가 만든 비거는 우리나라 기록에는 보이지 않고, 일본에서 편찬된 『왜사기(倭史記)』에 "비거로 말미암아 왜군이 작전을 전개하는 데 큰 곤욕을 치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비거는 한 번에 무려 30~50리를 날았다고 한다. 정평구는 비거를 이용하여 진주성으로 식량을 나르는 한편, 아군의 식량 보급과 군사 연락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 비거를 이용해 경상도 고성에 갇혀 있던 성주를 탈출시켰다고도 한다.
 

이 기록에도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존재하지도 않는 '왜사기'를 인용하여 '비거'가 수송용과 통신용으로 사용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근거를 밝히지도 않고 종래의 비거에 관한 기록에는 30리를 날아갔다고 되어 있는데, 30~50리를 날아갔다고 하고 있다.

게다가 성주(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였던 김시민)를 전쟁 중에 탈출시켰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다. 또 옛 문헌에 나오는 고성(孤城: 고립된 성)을 마치 경상도 고성군을 가리키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요컨대 <디지털김제문화대전>에 있는 '정평구와 비거'에 관한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태그:#비거,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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