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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이 지난 2월 25일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연 모습.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이 지난 2월 25일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연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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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아베 신조 총리의 뒤를 이어 출범하는 스가 요시히데 정권의 진용 말이다. "아베 정권을 계승하겠다"는 말 그대로다. 아베만 빼고 아베 정권 그대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5일 오후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당4역 등 자민당 주요 당직은 스가를 지지한 5개 파벌이 하나씩 나눠가졌고, 내각도 유임 또는 돌려막기를 통해 아베 정권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했다.

심지어 고노 다로 방위상이 행정개혁담당상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자리에는 아베 총리의 친동생 기시 노부오 중의원 의원이 유력하다. 아베 총리의 외가에 양자로 들어간뒤 이름을 바꾼 그는 지난 8.15를 이틀 앞두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극우 성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스가 정권은 그가 평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겠다", "파벌의 인사 요청을 받지 않겠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일과는 무관하게, 파벌의 요청을 철저하게 받아들여 시작하는 셈이 됐다. 내치든 외치든 당장 아베 정권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스가 총리 내정자는 16일 오후 중·참의원 양원 본회의에서 총리 지명을 받은 뒤, 나루히토 일왕의 임명장을 받고 새 내각을 출범시킨다.

아베와 가까운 집안에 데릴사위로... 이후 출세가도
 
지난 2월 코로나 감염 확산과 관련해 회의를 주재하는 아베 총리. 그 옆에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이 앉아있다.
 지난 2월 코로나 감염 확산과 관련해 회의를 주재하는 아베 총리. 그 옆에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이 앉아있다.
ⓒ 일본총리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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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스가의 뒤를 잇는 새 내각 관방장관으로 내정된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에 대해 눈길이 쏠리고 있다.

관방장관은 총리를 대신해 내각의 모든 사무를 총괄하는 자리인데다가 정부 대변인도 겸임하는 정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아베 내각의 모든 일은 사실상 아베 총리가 아닌 스가 관방장관이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만큼 큰 꿈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관방장관을 거쳐야 하고, 거꾸로 관방장관이 되면 다음 총리 후보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일부 언론은 스가가 1년 후 치러지는 총재 선거에서 그를 후계자로 점찍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토 가쓰노부는 어떤 사람인가. 가토 후생노동상은 1955년 생으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일본 정치인들에게 흔한 세습의원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자동차회사 부사장까지 지낸 걸 보면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보인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을 거쳐 가토 무쓰키 농림수산상 비서로 들어갔다가 그의 딸과 결혼했다. 원래 성은 '무로사키'였으나 가토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성을 바꿨다.

가토 집안은 아베 총리 집안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이때부터 그는 아베 정권 내내 중용되는 등 정치인생을 탄탄대로 위에 올려놓게 됐다.

결혼 상대는 원래 가토 농림수산상의 장녀인 고코였으나 고코가 혼약을 파기하고 미국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그 동생과 결혼했다고 한다.

고코는 현재 도쿄 신주쿠구에 최근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센터장. 군함도 관련 조선인 강제노동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는 비판이 일자, <아사히신문>에 "정치적인 의도는 없으며, 약 70명의 원주민을 인터뷰한 결과 학대를 받았다고 하는 증언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가 관방장관 밑에서 부장관... 코로나19 대응 못해 허둥지둥

가토 후생상은 지난 1998년 이후 장인의 지역구인 오카야마현에서 출마해 연거푸 두 번이나 낙선했으나 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 첫 당선된다.

당선 후에 하시모토 류타로가 회장인 다케시다파에 합류하며 현재까지 6선을 기록하고 있다.

아베 2차 내각 출범 직후 스가 관방장관 밑에서 2년반 가량 부장관을 지냈으며 이어서 내각인사국장으로 역시 스가 장관과 계속 관계를 맺게 된다. 이게 인연이 돼 스가 정권의 초대 관방장관이 된다.

고령화저출산 대책을 세우는 '1억총활약상'을 담당한 바 있고, 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코로나19 대책을 총괄하는 후생노동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잘 나가는 듯했던 가토는 후생상이 되면서 시련을 맞았다. 애초 비전문가가 국민보건을 책임지는 후생상을 맡았다는 비판에 시달리던 그는 코로나19가 발생하자 허둥지둥댔다.

호화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코로나 감염자 속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부족한 검사 능력도 제때 보강하지 못했다.

급기야 정부가 PCR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내건 '37.5도 나흘간 지속' 기준 때문에 제때 검사를 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쇄도하자, "정부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예를 제시했을 뿐인데 보건소가 오해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지난 5월에 열린 한국과 중국, 일본 3국 보건장관 화상회의에서는 "중국·한국 양국의 경험을 공유해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베와 거리두기가 그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

한일관계와 관련된 특별한 발언이나 행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아베 총리와 친분이 두텁고 오랜 기간 그와 정치적 보조를 같이 해온 만큼 아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차기 대권주자들을 분석한 <일본의 내일>의 저자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학 교수는 그에 대해 "지금까지는 아베 신조라는 배경을 통해 유력 정치가로서의 포지션을 구축해왔다"며 "가족관과 역사인식 등 아베에 대해 어디까지 거리를 두고 자신의 비전을 펼칠 수 있을까가 그에 부여된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태그:#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 #스가, #스가정권,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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