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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떠올리게 된다. 방탄소년단의 히트곡이 아니라 정말 작은 것들을 위한 시상(詩想) 말이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것들에 대한 상념... 어쩌면 그것들을 통해 나와 아이는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자전거를 타러 나갔던 두 아이가 큰일 났다며 호들갑스럽게 뛰어 들어왔다. 대체로 호들갑스럽지 않은 이유들이라 나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왜?"
"엄마~엄마~ 큰일 났어 빨리 나와봐"
"엄마 바빠~"
"나무와 찌개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암튼 급해 빨리~ 빨리이!"


아이들 손에 이끌려 나가는 동안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아파트 화단에서 계속 야옹 대고 있는데 심상치 않다는 말이었다. 참고로 나무와 찌개는 우리 집 남매가 지어준 아기 고양이 이름이다.
 
주민들 민원이 들어와 함부로 밥을 주면 안된다고 한다.
▲ 아파트 화단에서 생활하는 길고양이  주민들 민원이 들어와 함부로 밥을 주면 안된다고 한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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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검은색 반점 고양이와 연갈색 고양이 두 마리가 나른한 가을 햇살에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몸집이 작고 털이 반지르르한 아기 고양이였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한 번 안아보고픈 충동이 들만큼 아주 귀여웠다.

겁 많은 두 남매는 멀리서 한 시간이 넘도록 그 아이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고양이들은 자기들처럼 형제고, 엄마가 없고, 몹시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에 대한 근거로 둘이 항상 붙어 있고, 엄마는 안 보이고, 계속 혓바닥으로 자기 몸을 핥는다는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자기 몸을 핥는 것은 고양이의 특징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두 남매는 막무가내였다.

아이들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자고 사정사정했다. 엄마도 없는데 굶어 죽으면 어떡하냐고 협박 비슷한 아양을 떠는 통에 결국 편의점에서 고양이 먹이를 사서 앞에 놓아주었다.

그런데 아이들 말이 맞았다. 아기 고양이들은 많이 배가 고팠는지 사람에 대한 경계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우리 셋은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의 먹방을 지켜보았다. 셋 다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지 않았나? 현수막에 '고양이에게 밥 주지 마세요'라고 적힌 것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아마도 밥을 주게 되면 고양이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더 많은 고양이들이 모여들어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안락사, 그 묵직한 세 글자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캣맘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어쩌다 캣맘이 된 이 순간, 길고양이들을 위한 현명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마치 제인 구달로 빙의한 양, 고양이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어미 고양이가 끝까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나무와 찌개를 구조하는 것이었다. 곧 날이 차가워질 텐데 화단 구석에 있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고,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계속 먹이를 줄 순 없으니 동물 구조센터에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말하니 꺄오! 소리를 지르며 뛸 듯이 기뻐했다. 셋이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고양이 구출작전을 펼치고 있던 그때 한 주민이 큰 박스를 들고 지나가며 말했다.

"어머 어떡해... 여기도 아기 고양이가 있네... 어휴..."

나는 또 어딘가에 나무와 찌개의 동생이 있지 않을까 싶어 넌지시 물어봤다.

"어디에 아기 고양이가 또 있어요?"
"이거 한 번 보세요."


이웃 주민은 자신이 들고 있던 박스 윗부분을 살포시 펼쳤다. 상자 안에는 아직 눈도 안 뜬 손바닥 만한 아기 고양이가 주민이 벗어 놓은 듯한 옷 위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하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산책하다가 도로에서 주웠어요. 그대로 놔두면 죽을 것 같더라고... 이걸 어떡해."

그걸 본 아이들과 나, 그 주민까지 모두 울상이 됐다.

"안 그래도 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려고 하는데 얘도 같이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요?"
"거기 연락해도 소용없어요. 얘네들 안 받아줄 거예요. 이런 애들이 너무 많아서..."
"네에? 그래도... 아기들인데..."
"설사 받아주더라도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시켜요."


안. 락. 사? 아이들과 나는 순간 얼음이 됐다. 딸아이는 울먹이며 우리가 데려가면 안 되냐고 졸랐다. 나는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함부로 결정하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이웃 주민도 당장은 어쩔 수 없어 데리고 가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고양이를 위해 한 일이 정작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면 그 선택은 잘못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길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익히길 바라는 쪽으로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배가 많이 고팠는지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아기 고양이 찌개와 나무 배가 많이 고팠는지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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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양이들의 앞길을 고민하는 동안 찌개와 나무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밥을 모두 먹어 치웠다. 다 먹은 그릇을 치우려 화단에 들어가니 경비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아줌마!!! 거기, 고양이 밥 주시면 안돼요. 민원 들어와요."
"아... 네... 주의하겠습니다."


빈 그릇을 들고 돌아오는 우리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 보다 무거웠다. 침울한 분위기를 띄워보려 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고양이 이름 말이야. 왜 나무와 찌개로 지었어?"
"아~ 티브이에서 봤는데 음식 이름으로 동물 이름을 지으면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하던데? 그래서 찌개로 지었어 그리고 나무는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라고."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우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처럼 귀여운 마음만으로 길고양이 사태를 바라볼 수 없다. 내 마음이 편하려고 남의 불편을 감수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것 역시 이기적인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길고양이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들어야 하는 걸까? 길고양이와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고양이를 위한 동정심, 이웃을 위한 무관심, 둘 중 어느 것이 더 맞는지 내 양심의 저울은 휘청대기만 할 뿐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못했다.

다음 날, 나무와 찌개의 상태를 확인해보러 나갔다. 하지만 두 고양이는 어디로 떠났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바람이 부쩍 차가워진 요즘 아이들과 나는 자주 찌개와 나무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이들이 붙여준 이름을 부적 삼아 어디서나 건강하게 잘 지내길...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렸습니다.


태그:#길고양이, #작은것들을위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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