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표지.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표지.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2020년 추석 연휴는 인천 국제공항을 이용한 여객이 개항 이후 최다치를 기록할 뻔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이틀만 휴가를 쓰면 열흘가량 되는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 계획을 세웠던 사람이 올해 초만 해도 많았을 법하다. 그렇게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는 '도착지 없는 비행'이 최근 인기라고 한다.

지난 9월,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한복을 입고 한국 민속놀이 등을 즐긴 승객 120명이 비행기 탑승, 목적지인 제주 상공을 돌다가 다시 대만으로 돌아갔다. 해외여행이 막힌 시대에 사람들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서 기내식을 먹으며 여행 기분을 내는 상상 여행으로 마음을 달랜다.

상상 여행이라면 책만한 것이 또 있을까? 떠날 수 없는 우리를 매력적인 여행지 네 곳으로 데려가 주는 책이 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다. 영화는 이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마음껏 먹고, 뜨겁게 기도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는 실행 위주로 보여주는 데 반해, 책은 자기 성찰과 탐색, 문화 인류적 고찰과 유머러스한 비유로 가득하다. 영화에서 생략된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도 책에서만 만날 수 있다.

뉴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은 미국 뉴욕이다. 혹자는 멋진 집과 안정된 직장을 가진 뉴요커가 복에 겨워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는 팔자 좋은 이야기라고 폄하한다. 남부러운 것 없는 30대 초반의 여자가 왜 남편에게 갑자기 이혼 선언을 하게 됐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10주년 기념 출간 서문에서 욕이 가득한 편지를 받았다고 고백할 정도다. "잘 들어, 이 XX야! 난 이혼하지 않아. 결혼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녀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자세히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이혼 소송으로 인한 경제적 파산, 맹목적으로 빠진 연애,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점철된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그녀가 어떻게 빛으로 다가가는지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는 자기 내면의 빛 - 진정한 욕망과 영성, 이 둘의 균형 - 을 찾기 위해 낯선 세계로 떠난다.

첫 여행지로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는 우연히 펼친 이탈리아어 사전을 읽을 때, 이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서른 넘어 배우는 외국어 특히 이탈리아어가 실용적이지 않다면서 놀린다.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며 어렴풋이 행복이 싹트는 걸 느낀다. 위로할 때 사용하는 '나도 피부로 겪었어'(L'ho provato sulla mia pelle)라는 관용구에 깊은 위로를 받는다. 버스 정거장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에게 서투른 이탈리아어로 이혼 이야기를 처음 말하며 고였던 응어리를 푼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40세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던 2009년, 나는 일본의 '아라포'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40대 전후의 고소득 미혼 직장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드라마 <Around 40>에서 따왔단다. 사회 트렌드의 키워드가 될 만큼 인기 있는 드라마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그렇게 처음 접한 일본 드라마는 재미있고 신선했다.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자막에서 번역하기 힘든 미묘한 뉘앙스를 읽을 수 있으니 좋았다. 일본어 자격증 시험을 보면서 내 실력을 점검한 것도 큰 기쁨이었다.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만 불리던 주부 생활 10년 만에 시험지에 내 이름을 쓰고 본 시험이었다. 당장 일본 여행을 가거나 일본어로 부업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용하고 순수한 몰입이 생활에 활력을 주고 충만감을 줬다. 

마음의 돌, 긍정적 자존감 
 
긍정적 자존감.
 긍정적 자존감.
ⓒ pexels

관련사진보기

 
리즈는 이탈리아에 온 또 다른 목적, 기본적 쾌락이며 욕망인 식욕에 충실해 육체의 건강을 되찾는다. 이제 영혼의 탐색을 위해 인도로 'Attraversiamo'(건너간다 뜻).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인도 아쉬람(수도원) 생활은 녹록지 않다.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면 지루해 잠이 들거나,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리즈는 늘 즉각적으로 반응해왔던 생각과 감정에 무뎌지도록 노력한다. 마침내 그녀는 분노로 가득했던 과거를 떠나보내고, 나다운 모습으로 살기를 결심한다. '신은 우리 자신,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도 전역을 관광하려던 계획을 버리고 계속 아쉬람에 머물며, 마음의 돌을 치운 빈자리마다 긍정적 자존감으로 채워간다.  

리즈가 마지막 여행지를 인도네시아 발리로 정한 것은 몇 년 전 취재차 만났던 주술사 끄뜻과 재회를 위해서다. 끄뜻은 그녀에게 심각한 얼굴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그저 미소 지을 것. 얼굴에 미소, 마음에도 미소. 그러면 좋은 에너지가 와서 나쁜 에너지를 깨끗이 씻어낼 거라며 심지어 몸속의 간까지 미소를 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박한 여유를 즐기는 발리인들과 소통하며 리즈는 몸과 마음의 균형과 조화를 찾게 되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다가가지 못했던 펠리페와의 새로운 사랑을 결심한다.

잘 먹고, 잘 머물며, 나를 사랑하길 

낯선 이국에서 1년을 보낸 저자는 역설적으로 외국으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참다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흐르는 물이 아닌 고요한 물에서만 우리를 비춰볼 수 있고(310쪽)', 내 두 발이 서 있는 장소보다는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쓴 우화처럼 우리는 행복을 찾아 사방을 뒤지고 다니지만, 사실은 금이 담긴 항아리 위에 앉아 있는 거지와 같다. 자기 엉덩이 밑에 금덩어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푼돈을 구걸하는 거지. 우리의 보물은 이미 우리 내면에 있다. 코로나19로 여행이 멈춘 시대에 차분히 내 마음을 여행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번 한가위에는 Eat, Stay, Love. 잘 먹고, 평온히 있는 곳에 머물며,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기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진정한 욕망과 영성 그리고 사랑을 찾아 낯선 세계로 떠난 한 여성의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은이), 노진선 (옮긴이), 민음사(2017)


태그:#추석, #코로나19, #해외여행, #먹고기도하고사랑하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