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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빅토리아주(호주 멜버른이 속한 주)의 주 총리인 다니엘(Daniel Andrews)이 현재 '코로나19 제한조치 4단계'에서 약간의 하향 조치를 발표했다. 한때 일 700명대에 이르던 확진자 수는 점점 진정되어 이제는 10명대로 떨어졌다. 

호주의 다른 주는 감염이 안정적으로 관리된 데 반해, 내가 사는 빅토리아주는 7월경부터 '코로나 팬데믹 2차 유행'이 시작되었다. 급기야는 '재난 상태'라 선포되며 야간 통행 금지와 슈퍼나 병원 진료 등의 필수적인 이유로만 실내 진입이 허락되었고, 집에서 반경 5킬로미터 안으로 생활권이 제한되었다.

현재 봄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지난 텀(호주의 일년은 4텀으로 구성되고 텀 사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방학이 있음)에는 전 빅토리아주에서 '제2차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실시되었다. 마당 딸린 주택 생활, 도보 10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공원들이 없었다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이번 격리 조치 완화에서 가장 주목할 분야는 교육이다. 다른 분야나 일상생활의 제한조치는 큰 변화가 없지만, 초등학교 전 학년을 10월 12일부터 일제히 등교수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초등 저학년들의 심리적, 정서적, 학업적 문제가 장차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고충과 염려가 반영된 결과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주 총리인 다니엘이 제한조치를 격상하거나 완화할 때마다 주의 깊게 텔레비전을 시청하게 되었다. 여러 번 발표를 시청하다 보니 다니엘이 학교와 관련된 발표를 할 때마다 특수학교, 일반학교에 재학중인 장애학생, 그리고 취약계층의 학생들을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이런 중차대한 발표를 할 때 다수가 아닌 학생들, 즉 더 많은 배려와 돌봄을 요구하는 가정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를 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장애학생, 취약계층 학생 챙기는 호주... 한국은?
 
수도권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등교수업이 재개된 21일 서울 강동구 한산초등학교 학생들이 1교시 수업을 하고 있다.
▲ 마스크 쓰고 수업하는 초등학생들 수도권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등교수업이 재개된 21일 서울 강동구 한산초등학교 학생들이 1교시 수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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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4월부터 시작된 '제1차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종료되자 빅토리아주의 교육부는 모든 학부모에게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8주간 실시된 온라인 수업에 대해 학부모들의 전반적인 의견을 물어보는 설문지였다. 장점과 단점 그리고 정책적으로 또는 학교의 교사들이 어떤 면을 보충해야 하는지 등, 혹시 모를 2차 온라인 수업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질문 내용 중에는 서술형 문답들이 있었고, 이 문항들에 대한 학부모의 답은 익명으로 해당 학교에 전달되도록 설계되었다. 교육부와 학교가 함께 학부모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고, 향후 교육계획을 세울 때 참고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차 온라인 수업'에서 대부분의 학교는 1차에 비해 놀랄 만큼 개선된 방법들을 선보였다. 전체 학급 또는 소그룹 활동 등으로 분류한 양방향 실시간 수업을 늘리고, 교사들이 제시하는 수업지도안이 훨씬 명료해졌고 체계적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아이들의 집중 시간을 고려하여 교사들이 직접 만든 동영상은 3분에서 5분 짜리로 작성되었다. 또한 학업적인 면에서 부진한 아동이나 장애아동들을 위해 보조실무사(특수학교나 일반학교에서 장애아동을 지원하는 보조 교사)나 대체 교사를 붙여 양방향 실시간 수업을 늘려 주기도 했다. 또한 엄격한 제한조치 속에서도 '장애 아동의 돌봄과 교육'이란 특수성을 고려하여 해당 학생 중 희망자에게는 학교를 개방했다.

아이가 다니는 멜버른 초등학교의 교사들은 1, 2차 온라인 수업 기간 내내 금요일마다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어떤 과제가 힘들었는지, 과제를 수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적당했는지, 어떤 과제가 가장 재미있었는지, 다음 주에는 어떤 활동들을 과제와 접목했으면 좋겠는지 등을 묻는 질문들이었다.

더불어 매주 주말마다 학부모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한 주간의 수업을 간단하게 요약하고, 다음 주 시행될 교수학습 계획을 공지해줬다. '엄마와 교사'란 두 개의 타이틀을 달고 살아야 했던 극한체험의 기간이었지만, 교육부-학교-교사들의 노력과 지원을 신뢰하기에 견딜 만한 시간이 되었다.
      
제 2차 온라인 수업 마지막 주의 피드백 양식. 멜버른 초등학교 교사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 피드백을 받아 수업계획에 반영을 해왔다.
 제 2차 온라인 수업 마지막 주의 피드백 양식. 멜버른 초등학교 교사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 피드백을 받아 수업계획에 반영을 해왔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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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주관이 되어 '코로나19 시기 장애학생들의 긴급돌봄교실 및 온라인수업 등에 대한 현황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벌써 10월,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얼마나 답답하면 부모가 나서서 이런 조사를 할까, 싶어 속이 상하고 안타깝다.

비단 장애 아동의 경우를 떠나 학부모가 나서기 전에 국가의 해당 부서나 학교에서 자발적이고 선제적으로 의견을 묻고 경청해서 교육정책을 펼 수는 없는 것인가. 전 지구적 재난의 시대에 더 많은 지원과 배려가 필요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지, 또는 이들의 요구와 의견이 교육정책을 계획하는 테이블에 올라가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의 시대,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 취득은 모든 구성원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소수의 사회적 약자에게는 중요성 차원을 넘어선 안전과 생명줄이기도 하다. 호주처럼 먼저 찾아가는 교육과 정책이 있다면 최소한 국민은 투사가 되지 않아도 된다. 조금 더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고 살 여지가 높아진다.

여기, 잘 보이지 않는 곳, 사람이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비대면 수업, #온라인 수업, #호주교육, #이민, #코로나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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