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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의 물길을 내왔던 사람들의 연대가 평등의 물결이 되었다. 2020년 6월 차별금지법 발의와 국가인권위원회 제정 촉구 국회 의견 표명은, 차별금지법 수난사에 맞서온 사람들이 일궈낸 성과다. 2016년 촛불광장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고 20대 국회가 열려도 누구도 평등을 약속하지 않았다. 7년 만의 발의를 국회가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정쟁거리로 만들면 안 되기에 절박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절박함 속에서도 놓칠 수 없는 간절함이 있다면, 바로 평등을 바라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지난 6월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6월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다.
ⓒ 장혜영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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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터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말하고 싸우며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존재와 경험으로 말하는 사람들. 삶으로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을 평등으로 초대할 것이기에 평등버스는 지난 8월 17일부터 29일, 2주간 26개 지역 2000km를 달렸다. 8월 29일 전국을 연결한 평등의 목소리를 싣고 국회에 도착한 지 20일이 넘었지만, 국회는 뚜렷한 응답이 없다. 그러나 하반기 국회 대응 계획을 논의하는 지역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연락, 포항에서 선전전을 함께한 한동대 청소노동자들의 계속되는 농성,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청원 소식들 속에서 평등 버스에 채워졌던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열망이 오늘도 달리고 있음을 느낀다.

'내 안의 소수자성'을 발견하게 하는 차별금지법

518민주광장에서 만난 광주 활동가는 "민주광장이 민주화의 상징이지만 인권, 평등, 평화는 상징으로 만들 순 없다. 이것이 내 삶, 우리의 삶으로 들어올 때 평등이, 반(反)차별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약한, 무능한, 더러운, 해로운, 불쌍한, 미성숙한' 존재라며 낙인찍히며 배제당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은 나와는 다른 사람일까. 나와 무관하지만, 나는 이들의 인권은 존중한다는 확신이 어쩌면, 규범과 질서에 포함되려 발버둥 쳤던 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차별금지법을 '소수자를 위한 법'이란 테두리에 한정 지을 때, 내 안의 소수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평등 버스가 만난 사람들은 소수성을 발견하는 것이 천차만별인 사회의 구성원들이 고유성을 존중받고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그냥 '연대하겠다'가 아니라, 내가 차별받고 있어서 이 법이 필요하고, 차별받고 있는 당신을 위해서도 법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8일차 목포 문화제, 전남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가 현장 발언을 할 때였다. 무대에 경사로를 설치하지 못해 그가 이용하는 휠체어가 10cm의 단차 앞에서 멈춰야 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경사로가 없네요. 이거 차별인데?'라고 웃으며 한마디 하고 발언을 이어갔다. 그의 존재와 발언으로 인해 모두가 경사로가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마침 평등 버스 기획단 활동가는 무대로만 향해 있던 조명 기계를 무대 아래 활동가를 향하도록 옮겼다.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고 모두가 언어장애가 있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차별에 맞서는 시민이 되고 싶다면

이렇듯, 평등하고자 하는 우리들조차도 때론 충분히 준비하여 만나지 못한다. 오랜 시간 제도적으로 체계화된 차별적인 구조와 문화에 익숙해져 차별받거나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평등에는 동의하나 이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를 말하고 성찰하며 겪어나가길 주저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변화로 이어질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알기 어려운 진실일 것이다.
  
평등버스
 평등버스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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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금지하는 원칙이 소수자를 말할 수 있게 하고, 차별 경험 속에서 사회의 과제를 찾아야 모두의 권리가 활성화된다. 그럴 때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우리는 모두 변화될 세상을 만드는 주체이자, 평등한 세상 일부가 될 것이다.

평등버스가 부산에서 만난 김진숙 지도위원은, 과거 일터에서 성폭력에 노출되었던 지적장애 여성 동료에게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탓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내가 장애여성운동 활동가라서 유독 이 이야기가 특별하게 들렸던 것만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우리는 과거 내가 맺었던 관계들과 새롭게 만날 가능성이 더 열리게 될 거란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타인과 동료 시민으로서 관계를 맺기 어려웠다는 그의 깨달음은 '나는 인권을 지지해요. 차별을 반대해요'라는 선언만으로는 다다르기 어려운 감각이다. 차별했던 나를 기억해 냄으로써 차별적인 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것, 이는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하고 다시 마주하는 비효율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감각이다. 어쩌면 차별을 몰랐거나, 혹은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나아가 공모했던 나를 마주하게 될 이 과정이 평등역량을 높이며 동료 시민으로 서로를 만날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코로나19, 그럼에도 우리가 모여 말해야 하는 이유

포항 대잠 네거리, 대전 으능정이 거리, 광주 518민주광장, 전주 풍남문광장, 부산 서면 하트 조형물, 목포신항 등 지역의 역사와 투쟁의 순간들을 함께 했을 장소에 평등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벅찬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지역에 내릴 때마다 촉박한 일정과 코로나19로 부담을 안긴 것은 아닐지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목적지가 임박하면 부랴부랴 평등 버스 홍보 물품을 장착하고, 뜨거운 환대 속에 몰아치는 일정을 지역 참여자들과 치른다.

채식, 평화, 노동, 장애, 자치, 생태, 정의, 시민, 사회, 인권, 청년, 청소년, 문화, 안전, 진보, 페미니즘, 퀴어, 세월호, 예술, 노동조합... 함께한 단체들의 이름에 새겨진 정체성과 인권의 가치들을 보며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이들을 차별금지법과 구체적으로 연결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지역 활동가들과 반가움, 아쉬움, 발의에 대한 기대와 불안 등 무수한 감정을 나눈 것 같다. 하반기 대응 계획을 고민하면서 뚜렷한 계획을 말하기가 어려울 땐, 더 크게 계속 만나야 한다는 다짐으로 눈을 맞추며 괜히 마주잡은 손에 더 힘을 싣기도 했다.

긴 여정, 하반기 대응에 대한 고민이 불쑥 밀려올 때면 더 열심히 평등 버스가 매일 만나는 현장과 사람들 목소리를 따라갔다. 혐오 세력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행사를 방해할 땐 "우리에게는 (HIV/AIDS)감염인 동료가 있다. 우리에게는 트랜스젠더 동료가 있다"라고 더 크게 외쳤다. 감염인? 트렌스젠더? 이런 구호들이 조금은 낯설어 보이는 참여자들도 있었지만, 그날그날 열심히 외친 구호가 다음 만남을 부를 것이라 기대한다.

울산 지역 한 간담회 참여자는 "노동자 안에 모든 다양성이 있다. 노조에서 반차별에 대한 교육과 인식을 다질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이런 시도가 많아질수록 낯선 존재를 호명하며 만나가는 과정이 쌓일 것이다. 전주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그래, 나는 아침에는 여성, 저녁에는 남성이 된다"라고 당당하게 되받아쳤다. 또 다른 시민은 "나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것도 여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라고! 내가 나로 존재해도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지 않고 싶을 뿐이라고! 그래서 내가 나라고 말하는 게 두렵지 않고 싶을 뿐이라고!"라며 평등 버스에 사연을 실어 보냈다.

혐오 세력의 엄청난 방해를 보며, 인천의 한 활동가는 지역 주민답게 "요양원이 (여기 현장에서) 가까이 있는데 소음이 심하다. 우리는 좀 차분히 하자"라며 주변을 살피는 여유로운 힘을 보여 주었다. 평등을 말하는 우리의 힘과 자신감을 느꼈던 순간들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평등이다!"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평등 버스가 만난 자부심, 우리가 가야 할 이정표 

평등 버스가 2주 차를 맞이할 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안전을 위해 지역의 규모와 행사를 조정하며 여정을 이어갔다. 한 지역 활동가는 "어려움과 공포가 들이닥쳤을 때, 통상 쉽게 숨거나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생활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며 이 또한 차별금지법과 맞닿는 문제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집회 시위가 어려운 지금, 감염병 상황에서 심각하게 드러난 차별 상황들을, 모여서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권리이다.

차별금지법은 나의 이름으로 차별을 말하고, 헌법의 가치와 보편적 권리를 모두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시작이다. 평등 버스가 만난 사람들은 차별하지 말란 쉬운 말 대신, 서로 더 평등하기 위해 수고와 갈등을 선택했다. '비장애인'이라서, '성소수자'라서 혹은 빈곤해서. 이주민이라, 청소년이라, 비정규직이라며 나를 차별해왔던 그 꼬리표를 떼어서 자부심의 깃발을 들었다. 흘러넘치는 평등의 물결은 머지않아 국회 담장을 훌쩍 넘을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에 평등 버스를 가득 채운 모두의 바람이 함께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진희씨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인권 277호에도 실립니다.


태그:#평등법, #차별금지법, #평등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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