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불럭이 주연한 <타임 투 킬>, 줄리아 로버츠가 여주인공이었던 <펠리컨 브리프>, 탐 크루즈가 열연한 <야망의 함정>, 수잔 서랜든이 등장한 <의뢰인>.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 법정과 법률가들을 직접 다룬다. 둘째, 원작의 작가가 동일하다(존 그리샴, John Ray Grisham Jr.). 이 작가의 작품 중에서 영화 혹은 TV드라마로 제작된 소설은 무려 15편이나 된다.

 
영화 포스터들.  존 그리샴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들 중 몇 편.

▲ 영화 포스터들. 존 그리샴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들 중 몇 편. ⓒ 각 영화제작사

 

그가 2006년에 소설이 아닌 책 <이노센트 맨>을 펴냈다. 소설가인 그가 유일하게 쓴 '실화기록'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이노센트 맨>은 바로 그 책을 기초로 하여 제작되었다. 총 6편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한 편당 러닝타임은 50분 내외다.
 
결백 그러나 유죄

<이노센트 맨>은 미국 오클라호마 에이다(Ada)에서 1982년과 1984년에 일어났던 두 건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82년과 84년의 살인사건 모두 무척 끔찍한 사건이며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긴 하나, 그 외에는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고 연쇄살인도 아니다.

그렇지만 두 사건엔 아주 큰 공통점이 존재한다. 사건을 맡은 형사와 검사가 동일하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2년 간격으로 한 사건당 두 명씩 총 네 사람을 범죄자로 지목한 결정적 증인이 흥미롭게도 동일인물이다.

재판 결과, 82년 사건으로 두 명, 84년 사건으로 두 명이 무기징역(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이 네 사람은 무죄다. 실제로 82년 사건 범죄자로 감옥에 수감되어있던 두 명은 오클라호마 대학 로스쿨과 시민단체가 진행한 '무죄 프로젝트'의 도움으로 1999년에 풀려났다. DNA 검사가 주효했다. 마침내 진범이 체포됐다.

진범은 82년 사건 직후 경찰서에 와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슬그머니 용의선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를 두고 '무죄 프로젝트'를 진행한 변호사는 그것이 형사들의 실수일 수도 있지만, 의도적 은폐일 수도 있다는 추정을 내놓는다. 수사기록을 꼼꼼히 대조해본 결과, 사실관계가 교묘하게 비틀린 진술서들이 삽입돼있었고, 중요한 증언들이 까닭없이 누락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든 82년 사건은 그런 대로 행복하게 마무리되었지만, 84년 사건은 그렇지 않다. 살인범으로 여전히 수감되어있는 두 명은, 2019년 현재 '무죄 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무죄 프로젝트'가 실시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현재 복역중인 사람들 중 약 9만 명이 무고하 사람으로 추산된단다).
 
한계 혹은 실수

흥미로운 것은, 이 다큐멘터리 <이노센트 맨>이 범죄 혐의자들의 '자백 동영상'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직 범죄자가 아니며, 다만 혐의를 받고 있는 결백한 남자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 입으로 술술 범죄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자세히 들여다 본 심리학이론가는 그들의 자백 이면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의 압박수사를 심리적으로 제대로 견뎌내는 인간은 드물다는 것이 그 심리학이론가의 주된 주장이다.

인간은 너무 견디기 힘들면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것 같으면 노력을 멈춘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이기에' 그와 같은 한계를 (50보 100보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갖고 있다. 거기에 만약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상태였다면, 압박수사에 매우 취약하다.

그 같은 인간적 한계를, 82년 사건과 84년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와 경찰들이 적당히 이용했던 듯하다. 이용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성과를 내고 싶었을 수도 있고, 사건을 빨리 종결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형사로서, 경찰로서 그 같은 소망을 품는다는 것도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지 모르겠다.

특히 84년 사건의 자백 동영상에서 거듭 확인되는 바, 결백한 남자들은 공범의 이름을 틀리게 발음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름 불린 그 사람은 공범도 아니었다. 또, 결백한 남자들은 피해자가 사건 당일 입었던 옷을 묘사할 때 우물쭈물했다. 그들이 자백을 깔끔하게 완성하지 못하자, 형사들은 왜 그러는가 의심하지 않고, 옆에 앉아서 그들의 자백문장이 올바르게 완성될 수 있도록 '친절히' 도와줬다. 

그런 데다, 범죄 혐의자들은 살해흉기와 사체유기의 장소와 방법을 아주 엉뚱한 것으로 진술했다. 그들은 칼을 이야기했지만,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그들이 시신과 함께 불태웠다고 말한 판잣집에 가보니 사건 당일이 있기 2년 전에 자기가 그 판잣집을 직접 불태웠노라 증언하는 땅 주인이 나타났다. 이 같은 심각한 오류는, 그들이 재판받을 당시 피해자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었기에 그대로 넘어갔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들이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수 있다. 어차피 경찰도 인간이라서, 수사과정 중에 실수한 것이었을 수 있다. 6화에 출연한 한 경찰은, 경찰 또한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겸손히 인정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 경찰의 실수가 불러온 사태가 대단히 엄중하고 안타깝긴 하나, 경찰들 또한 인간임을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있다.

82년과 84년 사건에서 혹시 경찰들이 실수를 했을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기소를 담당하는 검사는 그 실수를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일반인의 눈에도 빈 틈이 곳곳에 보이는데, 최소한 의심이라도 해보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경찰과 검찰은 바로 이 같은 방식으로, 무고한 이들이 억울하게 대우받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공조'했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최근 종영된 <비밀의 숲2>에서처럼 '공범'이 되는 게 아니라.
 
겸손함 혹은 오만함

앞서 언급했듯 82년과 84년 사건을 기소한 검사는 동일인물이다. 그 검사는 <이노센트 맨>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작가가 사실확인도 정확히 거치지 않은 채 떠벌리고 있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그는 82년 사건에 대한 '무죄 프로젝트'로 인하여 두 사람이 무죄방면되고 진범이 잡혔을 때, 두 사람에게도, 피해자 유가족에게도, 아무에게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런 건 사과해야 할 사안이 아니며,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지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자신의 일은 법을 집행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은 그 일에 충분히 집중했음을 그는 깊이 확신했다. 일말의 후회도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같이 자신감에 넘쳐 당당한 자세로 일하는 검사들, 국경을 초월해 세상 모든 나라에 (우리나라에도)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82년과 84년 사건에서 범죄 혐의자들을 기소하고, 그들이 범죄자로 확정되도록 '정의의 이름으로 열심히 일한' 검사의 이름은 빌 피터슨이다. 그가 그리샴에게 보낸 답장 중에 이런 문장이 들어있다.

 
<이노센트 맨> 중 한 장면. (스크린샷) <이노센트 맨> 중 한 장면: 검사의 편지글

▲ <이노센트 맨> 중 한 장면. (스크린샷) <이노센트 맨> 중 한 장면: 검사의 편지글 ⓒ 넷플릭스

 
"우리는 세상을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의 관점으로 본다(We don't see things as they are, we see them as we are)."

이 말에서 당신은 무슨 메시지를 읽어내는가? 나는 '오만함'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자기들의 관점엔 한 치의 오차와 실수도 없다는 오만함, '실수 없이 완전무결한 신(God)을 사칭하는 것 같은' 오만함 말이다.
존 그리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무죄 프로젝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 [해나(한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2022세종도서) 환경살림 80가지] 출간작가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