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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대리운전노조 주최로 대리운전노동자 생존권보장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5월 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대리운전노조 주최로 대리운전노동자 생존권보장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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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소송 ①'에서 이어집니다.) 

"렌터카 임차인은 계약자다. 계약서에 나와 있는 제3자운전금지 조항을 어긴 당사자이지만 우리의 계약자이자 보험 약관상 피보험자다. 피보험자에게 사고에 대해 보상하라 할 수는 없잖나."

'제3자운전금지 조항을 어긴 건 대리기사가 아니라 렌터카 임차인 아니냐'라는 질문에 전국렌터카공제조합(아래 렌터카조합) 관계자가 답했다. 즉, 2017년 대리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낸 기사에게 보험처리 3년 후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보험 법리'로 설명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배민신 변호사는 "렌터카 임차인은 피보험자이므로 구상금 청구가 안 된다고 단순히 해석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제3자운전금지를 인지하고 지켜야 하는 건 임차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3자운전금지 조항 때문에 대리기사를 향한 소송이 반복된다면 이는 렌터카가 '임차인이 음주 시 제3자운전허용' 등 추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라고 부연했다. 

결국 대리기사들이 렌터카조합으로부터 소송장을 받은 건 상식보다 협소한 법리적인 해석에 치우친 결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리운전보험상의 문제가 더해졌고, 사실상 보험을 강제한 대리운전업체의 책임은 빠져 있다. 

렌터카조합의 협소한 법리해석... 구멍 뚫린 대리운전보험 설계
 
지난 4월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대리운전 실태조사 및 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리기사는 월평균 9만 8650원의 보험비용을 내고 있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대리운전 실태조사 및 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리기사는 월평균 9만 8650원의 보험비용을 내고 있다.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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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대리운전 실태조사 및 정책연구' 보고서는 2020년 대리운전 중 교통사고 경험이 있는 대리운전기사 171명을 대상으로 교통사고 비용처리를 조사했다. 응답자의 68.4%는 대리운전자 보험으로 사고를 처리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대리기사의 보험료도 산출했다. 이에 따르면, 대리기사는 월평균 9만 8650원의 보험비용을 냈다. 보고서가 조사한 95개 대리운전업체 중 86.3%가 단체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대리운전기사는 월평균 10여만 원의 보험료를 내지만, 이들의 보험에는 렌터카를 대리운전하다 발생한 교통사고를 보장하는 항목이 없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D보험사의 대리운전종합보험 보통약관을 보면 ▲대인배상 ▲대물배상 ▲자기차량손해 등을 보장하고 특별약관에서 이를 추가 설명한다. 이중 렌터카조합과 대리운전기사가 구상금 청구로 얽혀 있는 건 대리운전업자 특별약관 제1조(회사의 보상책임)다.

국토교통부 보고서 역시 이를 언급했다. 현재 대리운전자보험이 '대리운전자의 대인사고 때 대인배상에 대해서는 ▲차주의 책임보험 대인배상Ⅰ에서 보상하고 ▲대인Ⅰ의 보상범위를 초과하는 부분(대인배상 Ⅱ)에 대해 대리운전자보험이 보상'한다고 명시했다.

보통 대인배상은 대인배상Ⅰ과 대인배상 Ⅱ로 구분된다. 대인배상Ⅰ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이다. 보험제도 하에서 대인배상Ⅰ은 차주의 보험(대리운전을 의뢰한 차량의 보험)으로 처리한다. 대리운전보험은 보통 대인배상Ⅱ로 분류하고 대리기사들은 여기에 가입한다.

사실 일반 차량을 대리운전하다 생긴 사고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대리운전자가 대리운전 중 교통사고를 내더라도 대인배상(책임보험)은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인배상Ⅰ을 초과하는 손해 범위인 대인배상Ⅱ는 보험증권상 피보험자로 기재된 사람이 운전을 승낙한 사람일 때 보상받을 수 있다.

렌터카조합은 이를 문제 삼고 있다. 자신들의 계약조항에 '제3자운전금지'가 있기에 대리운전기사가 운전을 승낙받았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결국, '대리운전보험'의 약관을 조정해야 구상금 청구 소송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게 렌터카조합의 주장이다.

렌터카조합은 보험탓, 보험사는 금감원탓, 금강원은 렌터카조합탓... 무한반복

대리운전보험을 판매한 D보험사는 "대리운전보험 설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금융감독원에 화살을 돌렸다. 20여 년 전 대리운전보험이 처음 나왔을 때 금융감독원(아래 금감원)의 인가가 필요했고, 금감원에서 피보험자동차 항목에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보험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이 대리운전보험 상품의 피보험자동차에 렌터카를 포함하라고 했다면 보험설계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보험사의 지적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0년 전에는 렌터카가 보편화되지도 않았고, 렌터카업계가 지금처럼 성장하지도 않아 보험설계의 문제점이 없었다는 것. 금감원 특수보험팀 관계자는 '렌터카 조합의 계약서'에 책임을 돌렸다.

그는 "렌터카를 빌릴 때 (추가금액 없이) 제3자운전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정의에 맞지 않는다"라면서 "렌터카 임차인이 운전을 하다가 술이나 여러 이유로 대리기사를 부를 수 있지 않나, (임차인은) 사고를 피하려 합리적인 선택을 한 건데 왜 렌터카 계약서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감원은 렌터카조합의 대리운전사 구상금 청구 소송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다만 금감원이 렌터카조합을 감독할 권한이 없다"라면서 "렌터카 조합이 (제3자운전금지를) 변경하지 않으면 금감원 차원에서 불합리한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 반드시 다른 방법을 취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결국 렌터카조합은 대리운전보험을 문제 삼았고, 보험사는 금감원에 화살을 돌렸다. 금감원은 다시 렌터카조합 계약서를 탓하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피해는 대리기사의 몫으로 남았다.

대리운전업체의 책임은?... 이래저래 모든 짐은 대리기사에게
 
카카오T대리를 포함한 대리운전 플랫폼에는 차량 번호가 나오지 않는다.
 카카오T대리를 포함한 대리운전 플랫폼에는 차량 번호가 나오지 않는다.
ⓒ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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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는 대리운전업체를 통해 일을 구한다. 일반적인 대리운전 서비스의 운영 방식은 이렇다. 이용자(차주)가 대리운전 업체(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대리운전 요청(콜)을 하면, 업체가 출발지와 목적지·요금 등을 대리운전 운영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이 내용이 스마트폰에 콜 리스트로 나타나면 대리기사는 희망하는 콜을 잡아 출발지로 간다.

2016년 6월, IT기업인 카카오도 자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를 통해 대리운전업계에 진출했다. '카카오T대리운전'은 대리운전업체와 운영프로그램업체가 통합된 형태로 대리기사와 이용자를 직접 연결했다. 그러나 대리기사는 한 곳의 대리운전업체에만 등록하지는 않는다. 카카오 대리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대리운전업체에 등록하는 식이다. 그래야 대리운전 콜을 받을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때 대리운전보험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대리운전업체 여러 곳에 등록하면 등록한 업체 수만큼 대리운전보험을 들어야 한다. 자기 업체에 등록된 기사를 단체보험 형식으로 보험사와 계약하기 때문이다. 보통 주계약자는 업체이지만 보험비를 내는 건 대리기사다. 대리운전보험의 보장 사항은 대부분 같기에 보험이 2~3개 있다고 보장 범위가 넓은 건 아니다. 여러 개의 보험을 들어도 렌터카를 운전하다 난 사고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대리운전업체 사이의 조율로 중복보험 문제를 풀 수는 없을까. 대리운전업체 관계자는 "회사 영업과 관련된 일이라 회사 간 공유가 어렵다"라고 잘라 말했지만, 현재 각 업체는 콜·기사·콜 제공방법·수수료 등 보험 이외의 정책은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렌터카 호출문제가 또 남는다. 대리기사가 렌터카 호출을 거를 수는 없을까. 렌터카 여부는 '허, 하, 호' 등 번호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대리운전 플랫폼에 차량번호는 나오지 않는다. 대리기사가 현장에 가야만 차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017년부터 카카오T대리를 통해 일하고 있는 대리기사 A씨는 "보험이 안 되면 대리기사가 렌터카 콜을 받지 않도록 차량 표시만 해주면 되는데, 카카오대리나 다른 대리업체 프로그램들은 고객이 싫어한다며 하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플랫폼에 차량번호를 표시하는 방식에 난색을 보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장기 렌터카 등 일부는 제3자운전을 허용하는 계약서를 쓰기도 한다"라면서 "모든 렌터카에 대해 적용되는 사항이 아닌 만큼 차량번호를 안내할 경우 고객이나 기사들이 혼선을 빚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리운전업체 관리이사 역시 "현장에 가서 렌터카일 경우 기사가 돌아와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다. 결국 대리기사에게 해결책을 떠넘기는 것이다. 

업체도 보험사도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서 대리기사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대안을 찾고 있다. 대리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보험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이상국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총괄본부장(플랫폼프리랜서 협의회 공동대표)은 "보험을 들어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상황을 노동 공제를 통해 해결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리기사, 배달 노동자 등 플랫폼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민주당도 관심을 표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 플랫폼분과 위원실은 지난 9월 만나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논의했다.
 

태그:#대리운전, #보험, #카카오, #구상금, #렌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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