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포스터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우주 소재 영화에서 여성 우주인을 전면적으로 다룬 영화가 몇이나 있을까. 지금까지 우주 개발의 역사는 남성 중심이었고 여성의 활약은 부각되지 않았다. 최근 영화를 돌이켜 보면 NASA의 여성 엔지니어, 수학자의 일화를 다룬 <히든 피겨스>정도일 뿐 무한한 우주는 선뜻 여성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가뭄의 단비처럼 찾아온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우주를 향해가는 인간의 도전이자 여성, 엄마의 용기로 볼 수 있다. 자녀를 둔 여성 우주인의 노력과 가치는 감동을 넘어 숭고함을 품는다.

연결 속에서 자유를 찾는 독립된 여성상

8살 때부터 우주인을 꿈꿔 온 사라(에바 그린)는 유럽우주국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대원으로 선발된다. 하지만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딸 스텔라(젤리 불랑르멜)를 두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렵게 잡은 기회가 수포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사라는 힘들고 지치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단순히 엄마의 서사만 다루지 않는다. 엄마를 우주로 떠나보내야 하는 스텔라의 사연도 벅참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더한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녀의 출발을 같은 선상에서 두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혼자 적응해야 하는 모녀는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언제나 이어져 있다. 엄마는 러시아에서 적응 훈련을 하고, 딸은 아빠와 지내며 새 학교와 동네 분위기를 맞추어간다. 마치 두 사람은 데칼코마니처럼 서로 이루어야 할 과업을 묵묵히 수행한다.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엄마는 수학이 어렵다고 울먹이는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지 못해 안타깝고, 자전거와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지 못한 시간이 아쉽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함께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응석을 받아줄 엄마는 며칠 후면 지구 반대편도 아닌 지구 자체를 떠나 우주로 향한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엄마가 중심인 아이의 세계에서 사라진 엄마, 그 상실감과 그리움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 시각 엄마도 동료들의 무시를 견디고 편견을 깨며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힘써야 했다. 강인한 남성 어깨에 맞도록 설계된 우주복은 신체 구조가 다른 여성에게 매우 불리하다. 모든 기준이 남성 중심이다. 여성은 소수자, 주변인, 예비인, 보조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사라는 "그건 여자 일이 아니다"라고 했던 엄마의 반대를 드디어 실감한다.

스페이스 허스토리의 서막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영화는 조금씩 우주 역사에서 여성의 작고 작은 자리를 넓혀 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듯 보여준다. 여성 우주인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 영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낯선 비주얼을 보는 동안 남성도 힘들어 보이는 체력 한계를 오직 정신력으로 버틴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일례로 사라가 러시아 스타시티에서 훈련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남성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공간의 위협, 우주의 두려움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자신만의 우주복과 좌석을 만들기 위해 신체를 측정하는 장면, '프랑스 여성들은 요리를 잘하니까 우주에서 즐거울 것'이란 성차별 발언, 예비 대원이 따라가기 힘들다며 훈련 강도와 빈도를 줄이라는 말은 배려를 가장한 무시의 태도였다. 우주로 나가기 전 지구의 통과의례가 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모녀는 마치 이인삼각 경기를 하듯 차분히 보조를 맞추어 간다. 스텔라는 한 개인으로서 독립성과 자유를 만끽하며 점차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라 또한 매번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남성 대원들과 경쟁한다. 이런 두 여성의 행보는 미래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인간, 여성, 엄마, 딸로 연결된 끈끈함이 영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원제 '프록시마(PROXIMA)'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star)이다. 딸 이름 스텔라(Stella)는 라틴어로 별(星)을 의미하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사라가 우주를 갈망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앨리스 위노코 감독은 이 제목을 택한 이유를 "작은 것과 엄청나게 큰 것, 가까운 것과 먼 것, 친밀한 것과 우주적인 것 사이의 대조를 주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좇는 일,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르는 불완전한 일을 좇은 사람을 위한 존경심을 담았다 할 수 있다. 어디에도 완벽한 우주 비행사, 완벽한 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로봇도 신도 아닌 결점 투성이의 인간이다. 따라서 완벽을 향해 가는 실패의 흔적이 의미 있는 도전으로 그려진다.

에바 그린의 섬세한 연기는 물론, 딸로 나온 젤리 불랑르메도 실제 모녀 사이라고 믿을 만큼 자연스러워 공감을 높인다. 그 밖에도 사라와 대립각을 세우는 미국인 베테랑 우주비행사를 연기한 맷 딜런의 존재감, 우주비행사의 가족을 돌보는 매니저로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은 산드라 휠러의 연기도 주목할만하다. 모녀의 감정과 우주의 찬란함을 더해 준 음악은 세계적인 음악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다. 한편, 엔딩 크레딧으로 전하는 여성 대원과 자녀의 사진은 스페이스 허스토리를 만들어간 선임 우주인을 향한 존경뿐만 아니라, 워킹맘으로 사는 수많은 여성을 응원하고 있다. 영화가 끝나더라도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다.
프록시마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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