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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인원 감축을 위한 주민 투표 결과 100세대 가운데 66세대가 반대(현행 유지)했다.
 서울시 은평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인원 감축을 위한 주민 투표 결과 100세대 가운데 66세대가 반대(현행 유지)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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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2일 오후 6시]

"(경비원 수) 현상 유지라고 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숫자를 줄이려다 주민들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경비원 '해고 통보'까지 막진 못 했다. 바로 얼마 전 우리 단지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원 감축 반대 66%'라는 예상 밖의 결과에 놀라면서도, 투표 기간 내내 마음 졸였을 우리 단지 경비원들에게 미안했다. 지난 19일 퇴근길에 마음을 달랠 겸 음료수 2병을 사들고 경비실을 찾았다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우리 단지에서 2년 넘게 경비원으로 일해 온 황아무개씨가 지난 주말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올해 예순 여덟인 황씨는 경비용역회사에 소속돼 3개월 단위로 재계약했다. 인원 감축안이 통과되면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처지였는데, 지난주 주민투표에서 부결돼 마음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집이 가까워 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는 황씨는 계속 우리 단지에 남고 싶어 했다. 황씨는 계약 종료가 부당하다고 맞섰지만, 종료일을 10월 말에서 11월 말로 한 달 미룬 것에 만족해야 했다. 12월 아들 결혼식에 조금이라도 돈을 더 보태기 위해서였다.

경비원 줄여 관리비 절감? 주민들 66% '인원 감축 반대'

갑자기 경비원 인원 감축 얘기가 나온 건 다른 단지에 비해 높은 관리비 수준 때문이었다.

아파트주민자치회에서는 지난 6일 최저임금 인상으로 관리비가 해마다 오르고 있고, 우리 단지 경비비가 다른 단지보다 많다는 주민 민원에 따라 다른 동들은 2명을 유지하고, 우리 동만 경비원 2명을 1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주민투표에 붙였다. 자치회는 야간시간 경비 공백이 발생하긴 하지만 세대별 경비비를 매달 1만~1만8천 원씩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한데 그나마 있던 경비원 숫자까지 줄이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가족과 상의해 우리는 '반대' 표를 던졌지만, 관리비 부담을 느끼는 세대도 많아 통과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난 15일 개표 결과, 투표에 참여한 우리 동 100세대 가운데 2/3인 66세대가 인원 감축에 반대했다. 찬성은 33세대에 그쳤다.

아파트관리소장은 20일 오전 "경비원 수를 줄이자는 주민 제안이 들어와 자치회에서 주민 동의를 받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반대가 훨씬 많았다"면서 "지금 이런 상황에 (인원 감축)해야 하나, 같이 도와주면 되지, 하는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소장 말은 보통 200세대 당 경비원 2명꼴인데, 우리 단지는 230세대에 4명이어서 다른 단지 2배 수준이라고 한다. 120세대인 이웃 단지에서는 경비비 부담 때문에 아예 경비원을 없앴다고 한다. 하지만 황씨는 현재 2명이 격일제로 하는 일도 빠듯한데,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분리수거 관리가 문제인데, 경비원을 없앤 이웃 단지에서도 분리수거 인력은 따로 쓴다고 한다.

인원 감축안이 부결됐는데도 경비원 계약 종료를 통보한 이유를 묻자, 소장은 "정원은 2명을 유지하는데, 자치회에서 1명 교체를 요구했다"면서 "계약기간이 곧 종료되고, 동대표들이 주민들 의견을 들어 결정했기 때문에 관리소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황씨는 평소 재활용품 분리수거 관리를 꼼꼼히 하는 편이어서 종종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 일부 주민들에게는 잔소리처럼 들렸겠지만, 2년 동안 해오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게 할 만큼 큰 문제였을까?

"분리수거는 나라에서 하는 정책인데 주민들이 제대로 안 해요. 그래서 한소리하는 건데... 이제는 아무 소리도 안 해요."

"제초작업은 경비원 일도 아닌데, 말 안 들으면 쫓겨나요"
 
지난 5월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을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은 고인이 근무했던 경비실 내부 모습.
 지난 5월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을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은 고인이 근무했던 경비실 내부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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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갑작스런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뒤 그동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돌아봤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일 때 감기에 걸려 고열이 났어요. 혹시 코로나19면 다른 사람들에게 옮길 수도 있잖아요. 어쩔 수 없이 하루 휴가를 냈더니, 원래 예정된 휴가도 못 쓰게 하는 거예요. 차라리 결근 처리해 달라고 했더니 거부해서 그럼 제초 작업 안 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밉보인 것 같아요."

그는 "제초 작업은 원래 경비원 업무도 아닌데 말을 안 들으면 쫓겨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때도 결국 제초 작업을 했지만, 관리소장이나 주민들 눈 밖에 나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지난 5월에는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차 관리 문제로 갈등을 빚던 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뒤 숨지기도 했다.

한때 판촉물 유통 사업을 하면서 승용차 앞에 붙이는 '운전자 행선지 표시 기구' 같은 아이디어도 곧잘 냈다는 황씨. 지난 10년 경비원 일을 하면서도 캔과 플라스틱을 자동으로 구분해 주는 분리수거 장치 특허를 내기도 했다. 지금 우리 동네에는 사업가를 꿈꾸는 경비원이 살고 있다.

태그:#아파트경비원, #임계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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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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