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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조차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까운 계절을 '집콕'으로만 보낼 순 없죠.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방방곡곡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큰마음 먹지 않고도 당장 가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부산에서 직장을 구한 가장 큰 이유는 외국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 때문이었다. 부산은 내가 좋아하는 외국 여행지들과 가장 가까웠고, 김해공항은 부산 시내에서 경전철로 몇 정거장이면 닿을 수 있어 편리했다. 나는 언제든지 가볍게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일상 같은 여행을 원했는데, 해외생활과 한국생활을 동시에 누리며 살기에 부산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그런데 부산에서 살면서 오히려 '굳이 멀리 갈 필요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코로나 사태가 찾아오면서 출국하기가 어렵게 되었을 때,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이미 더 이상 해외생활을 동경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부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부산은 미래도시 같은 야경을 가진 대도시이면서도 구석구석 옛길, 옛 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다. 부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살이의 부산스러움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래서 부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공허함이 달아나는 기분이 든다. 한편 내륙에서는 마음먹고 보러 가야 하는 바다를 부산에서는 입맛대로 골라, 마실 가듯 보러 갈 수 있다는 점도 호사스러웠다(부산 사람들은 피서철에 해운대에 가지 않는다! '가진 자'의 위용이 아닐까).

그래서 여행자로서 부산을 찾았을 때 부산은 자극적이고 신기한 곳이었다. 기대도 하지 않은 곳에서 '뭐, 바다라고 질질 끌 필요 있어? 드루와!'라는 듯 쿨하게 펼쳐지는 광안리 해변, 말로만 듣던 해운대의 넓디넓은 모래사장, 사람들의 무뚝뚝하고 열정적인 성미처럼 새빨갛고 굵은 서면 떡볶이, 바다와 벼랑과 집들이 맞물려 꿈길처럼 이어지는 영도의 흰여울마을 길.

하지만 부산 시민이 되어 살아보니, 즐겨 찾게 되는 부산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생활에 지칠 때마다 나는 유명 관광지가 아닌 '나만의 명소'를 찾아갔다. 한적한 곳에서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좋은 데를 왜 안 오지?' 사실 접근성과 규모로 볼 때 관광지로서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지만, 내가 체감한 매력도를 따진다면 최상위인 곳들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장소들이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붐비는 곳을 피해야 하는 지금은 대중적으로도 적당한 여행지라는 생각이 든다. 해외여행 계획을 포기한 분들이 장기 국내여행을 계획하신다면, 또는 짧은 기간이라도 동네를 둘러보는 듯한 한적함을 느끼고자 하신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을 소개하겠다.

우리 집 마당에 바다를 들인다면
 
피서철에는 가족 단위로 피서를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평소에는 매우 한산하다
▲ 늦여름의 일광 해변 피서철에는 가족 단위로 피서를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평소에는 매우 한산하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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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해수욕장'은 부산의 동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이다. 동해남부선이 생기면서 접근이 쉬워져, 부산 도심에서 1시간 정도 타고 가면 일광역에 닿을 수 있다. 1시간도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에 기차 여행을 하듯 낭만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점이 좋다.

도착해서 일광역을 나서면 길을 건너면서부터 벌써 바닷물이 흐르는 하천을 볼 수 있고, 멀리 보이는 바다 풍경을 즐기며 5분 가량만 걸으면 바닷가에 닿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일광해수욕장은 해운대나 다대포, 송정 등 다른 해수욕장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규모다. 해변가의 루프탑 카페 2층에 올라가면 아담한 해변이 더욱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주변에는 높은 건물도 없어서 해변은 가족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그렇기에 특별히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없이 머물 수 있다.

환절기에 일광에 가면 나는 그늘막이 바람에 펄럭이는 카페 옥상에서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담요를 두른다. 코가 시린 느낌을 즐기면서 버틸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아늑한 바다를 감상한다. 여름이라면 피서철 전후로 찾아가, 야트막한 물 깊이를 발로 직접 재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갈 때는 반드시 역 앞의 한 팥집에서 따끈한 수수부꾸미와 단팥죽, 또는 팥빙수를 먹는다. 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이 세 가지 별미를 모두 맛보며 옛 다방 분위기를 즐기는 시간도 일광을 찾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멀리 갈 시간은 없지만 이전과 다른 바다를 감상하고 싶은 분께는 따로 추천할 곳이 있다.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 뒤편에 위치한 '용호부두'이다. 큰 사거리부터 부두에 이르는 길에는 공연석 같은 계단이 많다.

이곳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간이지만, 계단에 올라앉아 바라보는 밤바다는 이제껏 보지 못한 풍경을 보여줄 거라고 확신한다. 오른쪽 가까이에 작은 등대가 보이고, 왼쪽으로 광안대교를, 그 사이 맞은바라기로 마린시티와 누리마루까지 볼 수 있다.
 
등대를 중심으로 찍었지만 왼쪽으로 광안대교가 크게 보인다. 낮보다는 밤산책을 추천한다.
▲ 낮에 가 본 용호부둣가 등대를 중심으로 찍었지만 왼쪽으로 광안대교가 크게 보인다. 낮보다는 밤산책을 추천한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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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심에서 등대를 만난다는 점이 새롭다. 산책 중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을 때, 갑작스레 나타난 등대 불빛은 신기루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또한 광안대교라 하면 보통 광안리에서 보는 각도를 떠올리지만, 다리의 시작 지점에서 비스듬히 감상하는 광안대교는 색다른 느낌이다.

캄캄한 밤에 계단에 맥주 한 캔을 놓고 앉으면 그 이상의 호사는 생각할 수 없다. 시야 한 켠에서 깜빡깜빡 퍼지는 등대의 빛과, 대교를 오가는 차들이 이루는 빛의 행렬, 멀리 있어 은은하게 다가오는 마린시티 고층빌딩 불빛.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곳에 오면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이곳은 평소 낚시하시는 몇 분 말고 사람이 없어서, 마치 나를 위해 누군가 몰래 마련해 둔 듯한 특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부터 용호부두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언덕을 걸어올라 이기대까지는 매년 10월에 열리던 '부산불꽃축제'를 감상하기 좋은 장소이다. 광안리에서 직접 축제를 보면 귀가하기가 힘들 정도로 복잡하지만, 이곳에서는 편안하게 보면서도 완전한 모양의 불꽃을 볼 수 있어서 불꽃놀이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를 폈다. 또한 이 지점은 광안리까지 30분 정도 바다를 옆에 끼고 조깅을 할 수 있는 길(광안해변로 54번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일광 해변과 용호부둣가가 나에게 주는 느낌을 한 마디로 한다면 '우리 집 앞마당에 바다를 들인 느낌'이라고 하겠다. 물론 일광은 도심에서 멀고, 이제는 집도 용호부두 근처에서 먼 곳으로 옮겼지만 이 두 장소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친근하다. 내 마음에 조용히 귀기울여주는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찾는다면 좋을 장소이다.

내 귀가 휴식을 요구하는 기분이 들 때
 

햇살 좋은 공원의 잔디밭에 누워서 얼굴에 책을 덮고 여유로움을 즐기는 모습. 이것은 우리가 꿈꾸는 도시 생활의 한 장면이 아닐까. 이렇게나 부산을 좋아하는 나지만, 소음에 취약해서 도시에서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하곤 한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정도까지는 못 되더라도, 잠시 도로의 소음에서 벗어나서 자연 속에 사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귀를 디톡스하기 위해 찾는 곳은 '시민공원'이다. 시민공원은 일제강점기에 경마장으로, 그 후로는 2006년까지 주한미군의 캠프에 이용된 부지를 휴식 공간으로 재조성해서 만든 곳이다. 소음이 가장 심한 부산의 대도심, 서면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워낙에 면적이 넓기 때문에 중심으로 들어가면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용호부두 가까이에서 보는 풍경. 큰 사거리부터 시작되는 계단석을 지나 이기대 쪽으로 다가가면 작은 부두가 나온다. 이동하면서 지점마다 다른 느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용호부두 가까이에서 보는 풍경. 큰 사거리부터 시작되는 계단석을 지나 이기대 쪽으로 다가가면 작은 부두가 나온다. 이동하면서 지점마다 다른 느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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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느티나무, 왕벚나무, 소나무, 후박나무로 이룬 5개 숲길과 약 300m의 메타세콰이어 길은 공원의 가장 아름다운 볼거리이다. 마음을 정화하는 데에는 '거울연못' 곁을 걷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넓은 타일바닥 위에 얕게 물을 가두고 꽃 화분을 늘어놓은 곳인데, 투명한 물이 바람에 찰랑이며 내는 빛이 아름답다(남1문과 남2문 사이에 있다).

돗자리와 간식거리를 준비해 왔다면 공원 정중앙의 '하야리야 잔디광장'으로 가면 된다. 누워서 보는 하늘은 서거나 앉아서 보는 하늘과 분명히 다르다. 나는 조용한 곳에서 풀 위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이 몹시 그리운 시점에서 잔디광장을 찾았었다.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 구름이 바뀌며 흘러가는 모습을 멍 하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바닥난 '도시생활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햇볕이 잘 드는 시간에 담요나 겉옷을 챙겨 가시기를 권한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쉴 수 있는 곳. 피크닉 컨셉의 사진을 찍으러 온 커플과 여학생들이 많았다.
▲ 부산 시민공원 하야리야 잔디광장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쉴 수 있는 곳. 피크닉 컨셉의 사진을 찍으러 온 커플과 여학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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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공원이 한 번씩 마음의 피로를 풀러 가는 대중탕 같은 곳이라면, '녹음광장'은 매일 샤워를 하는 욕실 같은 곳이다. 부산 시청 청사 바로 뒤에 있는 아주 작은 공원인데, 그 바로 앞에 살고 있는 나와 내 룸메이트는 하루 이틀에 한 번꼴로 이곳에서 산책을 한다.

우리는 이곳을 '개공원'이라고 부른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면적이 작은 곳이라 개들도 견주들도 서로 자연스레 마주쳐 무리를 짓는다. 우리처럼 반려견이 없지만 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은 먼발치에 어정쩡하게 서서 구경을 한다. 그러다 보면 귀여운 강아지가 다가와 접촉을 허락해 주는 감동적인 순간을 얻을 수 있다. 완벽히 조용하지는 않지만, 도로의 소음을 피하는 데보다 생명체의 소리를 듣는 데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이곳에서는 코로나 시대에도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많이 엿본다. 마스크를 낀 남녀노소가 자기만의 속도로 운동용 트랙을 돈다. 작은 야외공연장에서는 어머님들이 세상 누구보다 진지하게 에어로빅에 임하시고, 등나무 벤치에서는 아버님들이 모여 앉아 세상 누구보다 심각하게 장기를 두신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일부 장소가 폐쇄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의 피로를 해소하려고 노력하는지가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가 느끼는 하루의 피로도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낮아지며 건강체조를 하는 분들이 공원에 나오셨다.
▲ 시청 앞 녹음광장의 야외공연장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낮아지며 건강체조를 하는 분들이 공원에 나오셨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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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면

처음 부산이라는 장소를 알아갈 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사람들이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곳곳에서 목청 높여 싸우는―실제로는 아주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사람들을 보고 혼자 주눅이 들었는데, 툭툭 던지는 말투와 상반되게 인간미 넘치는 행동에서 또 혼자 뭉클해지곤 했다.

한 아주머니가 "그그는 파이다(그거는 안 좋다), 이기(이게) 좋네" 하고 나에게 공을 패스하듯 물건을 골라주었을 때는 '내가 이분을 만난 적이 있던가' 하고 한순간 진지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부산스타일'이라는 것을 알자 그런 분들이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해졌지만, 종종 나 자신의 모습에서 재미를 느낀다. 길을 걷다가 내가 먼저 행인에게 "길이 쫌 좁지요?" "으르신, 담배 냄새 때문에 좀 힘드네요~" 하고 이웃처럼 말을 걸며 지나가는 내 모습이 전과 달라 우스운 것이다.

여전히 일상을 여행처럼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장소보다는, 장소를 새롭게 보는 눈이 아닐까. 늘 스쳐 지나는 골목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을 때, 낡은 집 대문에 낀 녹과 담벼락이 이루는 색상 배치가 멋스럽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만의 눈으로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무덤덤하던 일상에는 호기심과 자유로움이 생겨난다.

장소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볼 때도 그런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해외에 아쉬움을 갖지 않게 된 것은 내가 있는 곳의 매력을 생활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들여놓을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앞으로도 이 같은 즐거움의 공력을 늘려가고 싶다.

부산에 오신다면 '나만 알고 싶은 장소'였던 추천 여행지에 들러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부산에 오지 않으신다면, 계신 곳에서 더욱 특별한 장소와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brunch.co.kr/@harukauranusian)


태그:#부산여행, #일광해수욕장, #시민공원, #부산 시청, #용호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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