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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부산시 초중고 화장실 수 성비 불균형 심각"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았다. 부산시의회 의원의 문제 제기를 잘 보도해주었구나 생각하면서도 그 부제와 내용 중에 나와 있는 단어가 마음에 좀 걸렸다. 바로 '화변기'라는 용어다. 생각이 미친 김에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화변기란 말이 여기저기 넘쳐나고 있었다.
  
화변기의 '화'란 무엇인가? 한자로 '和'이니 바로 일본을 가리키는, 그것도 일본인들이 자랑스럽게 스스로를 칭하는 글자가 아닌가. 일본 과자를 화과자, 소를 화우(와규), 음식을 화식(와쇼쿠), 전통 의복을 화복(와후쿠) 라고 하는데 어떤 것들은 우리도 제법 쓰고있는 단어들이다. 그밖에 영일사전 같은 것도 그들은 영화사전이라 하고, 소위 일본 정신을 (대)화혼(야마토 타마시이), 일본 민족을 야마토 민족이라고 부른다.

'화'를 일본인들은 훈독으로 '야마토'라고 읽는데 일본 고대왕국의 이름이자 바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그 '임나 일본부'라는 걸 경영한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야마토 민족이란 아이누라든가 그밖의 소수민족을 제외한 자기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른바 천황을 정점으로 하여 자신들을 같은 민족으로 일체화시키고 타자를 배제하는 차별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용어이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소위 화변기는 '일본에서 온 일본식 변기'라는 말이다. 지금같이 수세식으로 된 것은 일본의 근대화가 제법 진행된 20세기초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일본인들의 용어를 그대로 갖다 써도 좋은 것인가? 우리는 천황도 일왕이라고 하는 판에 변기는 왜 그대로 화변기라 쓰는가?

이미 십년 가까이 이전의 일인데, 필자가 영동고속도로를 자주 차를 몰고 다닐 때 여주 휴게소의 화장실에 양변기, 화변기라고 문에 표기되어 있기에 책임자 분께 '화'의 뜻을 아시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위와 같은 취지로 얘길 했더니 그건 자신들이 한게 아니라 도로공사에서 한 것이라고.

필자왈, 알겠다고. 제가 도로공사에 얘길 할테니 과장님도 신경써주시라고. 아무튼 그래서 도로공사에 건의문을 보내고 답장도 오고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양변기, 화변기라는 글자는 사라지고 대신 변기 모양 그림으로 대체되었다. 다음은 문막 휴게소. 역시 같은 과정 되풀이… 다른 휴게소도 마찬가지. 결국 여주, 문막, 횡성 등 영동고속도로 쪽은 다 수정되었는데 다른 고속도로는 확인해보지 못하였다.

언어는 사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본인의 순수성이나 긍지 나아가 우월성을 표현하는 '화'라는 접두어를 굳이 그대로 쓸 필요가 있을까? 화식집이 아니라 일식집, 한화사전이 아니라 한일사전, 천황이 아니라 일왕으로 하는 것처럼 화변기도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태그:#일본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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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학 전공. 전근대 중국의 세역제도로부터 시작하여 도시민 저항, 산림 환경 등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가 현재는 소수민족 관련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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