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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조차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까운 계절을 '집콕'으로만 보낼 순 없죠.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방방곡곡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큰마음 먹지 않고도 당장 가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양주 장흥은 서울 가까이에서 가을 풍경을 느끼기에 제격인 여행지이다.
 양주 장흥은 서울 가까이에서 가을 풍경을 느끼기에 제격인 여행지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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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지만, 코로나19 탓에 왁자지껄한 행락객들의 모습보다는 조용하게 단풍맞이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뉴스에 전해지곤 한다. 벌써 여섯 달 전에 피었던 벚꽃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못 보고 지나갔는데, 단풍마저 못 보고 지나간다면 올해는 정말 손해 보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이번 단풍은 멀리 나가는 대신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사람도 많지 않아 호젓한 곳에서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서울에서 20분 거리에 가을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한때는 대성리, 강촌과 함께 MT 후보지로 꼽히곤 하던 양주 장흥면 이야기이다.

양주 장흥은 사실 여름 여행지로 더 익숙하다. 장흥계곡, 송추계곡처럼 서울 근교 여행지로 이름이 자자한 계곡도 많고, 여러 유원지가 38번 국도 주변을 끼고 영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을이 되고 인적이 드물어지면 더욱 예쁜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흥면에서 하루 동안 단풍 물에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BTS가 봄을 기다린 곳, 가을 풍경은 더 진하네

구파발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장흥으로 향하다 보면 웬 기차역 이름이 나온다. 2004년 영업 중단 이후 그대로 잠자고 있는 기차역, 일영역이다. 사람이 탈 수 있는 열차는 16년째 오지 않는, 지금은 역에서 길손을 반기는 직원조차 없는 플랫폼 두 개의 자그마한 기차역이다.
 
BTS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던 일영역의 모습.
 BTS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던 일영역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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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능곡과 의정부를 잇는 교외선의 역으로 1960년대 문을 연 일영역은 지난 시기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역이었다. 전성기에는 하루 7번 열차가 운행되며 유원지를 오가는 행락객들을 태우곤 했다. 일영역을 포함해 송추, 장흥 등 이곳저곳의 역이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중 일영역은 열차가 서로 비껴갈 수 있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도로 교통의 발달로 다른 유원지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일영이나 송추 일대도 도로로 충분히 찾을 수 있게 되어 열차 이용객이 크게 줄었다. 결국 KTX 개통과 함께 열차 운행이 멈췄다. 지금은 역 앞의 '광장 대합실'에 한때 사람이 많았던 흔적을 남겨둔 채, 가끔 오가는 화물 열차만 맞이하고 있다.

열차 운행이 줄어든 자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방송과 매체가 채웠다. 2001년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에도, 2017년 발매한 방탄소년단의 <봄날> 뮤직비디오에도 일영역이 주요하게 등장했다. 그래서 일영역은 1980년대 태어난 X세대에게도, 2000년대에 태어난 '아미'(방탄소년단 팬)에게도 익숙한 역이다.
 
BTS <봄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BTS <봄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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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그녀>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일영역이 등장한다. 차태현과 전지현이 이별의 순간 서로를 보내기 아쉬워하다 도리어 엇갈리는 안타까운 장소이다. BTS <봄날> 뮤직비디오에는 첫머리부터 등장한다. 뷔가 눈이 쌓인 선로에 뺨을 기대며 봄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기차가 떠난 지금은 이따금 '인증샷'을 찍으려고 방문하는 방탄소년단 팬,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출사객만이 방문한다. 평소에는 직원도, 승객도 없는 역이지만, 이런 역의 모습도 가을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어울린다. 어쩌면 녹이 슬고 떨어져 나간 역명판, 텅 빈 플랫폼 덕분에 을씨년스러운 10월의 느낌이 더 나는 것만 같다.

단풍 물든 장흥계곡, 그냥 걸어만 가도 좋네
 
여름철 물놀이객으로 붐볐을 장흥계곡은 지금 단풍이 울긋불긋하게 피어나 있다.
 여름철 물놀이객으로 붐볐을 장흥계곡은 지금 단풍이 울긋불긋하게 피어나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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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역에서 철길로는 한 정거장, 차로는 5분이면 장흥면 소재지가 나온다. 장흥면 소재지 일대는 일영유원지와 마찬가지로 장흥계곡을 낀 여러 유원지가 발달하곤 했다. 단풍이 진하게 핀 장흥계곡의 모습은 여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과거 물길을 막고 자릿세를 받곤 했던 관행이 사라진 덕분에 쫄쫄 흐르는 물이 끊이지 않는다. 단풍이 떨어질 때쯤 방문하면 물 위에 찻잎처럼 떠서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붉은 단풍잎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무척 낭만적이다. 이런 물길을 따라 계곡이 상류까지 쭉 이어져 있으니, 가을의 느낌을 받는 데는 제격이다.

여름에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했을, 우리가 원래 알던 계곡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다. 조용히 물소리만 들리는 계곡에 있으면, 마치 첩첩산중 속에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산책로도 계곡길을 따라 정비되어서 길을 따라 가을 풍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계곡만으로 가을 구경을 마치기 아쉽다면 계곡에서 잠깐 벗어나 숲길을 따라가면 장흥 자생수목원이 나온다. 수목원을 찾아 나무와 식물의 이름을 알아가는 특별한 산책을 즐겨도 되고, 가을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구경하러 송암스페이스센터를 방문해도 된다. 천문대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야간개장을 한다.

예술과 함께 물드는 단풍 엔딩
 
장흥예술촌 일대는 버스 정류장도 예쁘게 꾸며져 있다.
 장흥예술촌 일대는 버스 정류장도 예쁘게 꾸며져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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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계곡 위로 올라 372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한 번쯤 들러 자세히 둘러볼 만한 곳도 적지 않다. 장흥관광지 일대가 계곡을 따라가는 이른바 '예술촌'이 됐기 때문이다. 가나아트파크, 장욱진미술관, 그리고 두리랜드까지 볼 만한 곳이 참 많다.

버스 정류장부터 단조롭지 않다. 예술촌 일대의 버스 정류장은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여러 작가들이 참여해 테마에 맞게 꾸며 놨다. 그래서 사람이 우산을 씌워주는 것처럼 생긴 정류장도 있고, 정류장 지붕 위에 집 한 채가 올라와 있기도 하다. 버스를 내리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장흥역에서 2km 떨어진 곳에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조각공원이 있다. 삶을 작품에 녹여내는 것으로 유명했던 현대 미술가 장욱진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그가 물길 옆에 살기를 좋아해 한강변 덕소에 거처를 꾸몄듯, 미술관 역시 장흥계곡이 흐르는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표를 발매하고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 만나는 조각공원부터 가을의 향기가 물씬하다. 조각들 사이로 선 단풍나무가 빨갛게 물들어 있고, 은행나무도 노란빛을 발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조각들과 여러 빛깔로 물든 나무들이 서로 '내 색깔이 더욱 휘황찬란하다'고 다투는 것만 같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조각공원의 가을 풍경.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조각공원의 가을 풍경.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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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풍경을 뒤로 하고 계곡을 건너 미술관으로 들어가면 장욱진의 삶을 한 데 살필 수 있다. 그의 신조 '나는 심플하다'에 맞게, 어떤 치장도 되지 않은 하얀 건물이다. 미술관 안에서는 그의 삶을 찬찬히 둘러볼 수도 있고, 그가 남긴 작품들,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의 작품을 살필 수도 있다.  

어른들에 가까운 공간이 장욱진미술관이라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걸어서 10분 아래에 있다. 하류로 내려가면 가나아트파크와 두리랜드가 마주 보고 있다. 가나아트파크에는 어린이 미술관이 있고, 두리랜드 역시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들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두 곳에 방문하면 기억에 남는 가을 여행이 될 것이다. 

일영역과 장흥면 소재지까지는 서울에서 자주 버스가 다닌다. 불광역, 연신내역에서 20분 간격으로 오가는 360번을 타면 20분 정도 만에 닿는다. 장흥예술촌 안쪽으로는 구파발역에서 1시간 가까이에 한 번씩 다니는 19번을 타면 30분 안에 가니, 훌륭한 당일치기 가을여행을 즐길 수 있다.

태그:#가을, #양주, #여행, #장흥면, #장흥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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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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