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바바리안>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드라마 <바바리안>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로마의 식민지인 게르마니아에 새로 부임한 총독 '바루스(가에타노 아로니카)'는 게르만족과 맺은 협정을 파기한 뒤 엄청난 세금을 부과한다. 로마의 불공정한 처사에 분노한 '투스넬다(잔 구르소)'는 게르만족 최고의 검사이자 애인인 '폴크빈(다비드 쉬터)'과 로마 군영에 몰래 잠입해 로마군의 상징인 독수리를 훔친다.

이에 바루스는 게르만족 출신 부관이자 양아들인 '아르마니우스(로렌스 루프)'에게 독수리 회수와 범인의 처벌을 지시한다. 로마 군인이자 귀족으로서 야망에 가득했던 아르마니우스. 그러나 십여 년 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동족들의 힘겨운 생활상을 목격하면서 그는 로마인과 게르만족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9년, 로마 제국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현재 독일 지역인 '게르마니아'를 로마의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한 정복 전쟁을 개시했다. 그러나 약 20년의 세월 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던 그의 시도는 서기 9년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실패로 끝났다. 게르만족 출신의 로마 군인이자 게르만족의 왕이 되려는 야심에 불타던 아르마니우스의 지휘 하에서 로마 군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게르만 군대가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로마의 3개 군단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 전투로 인해 게르만족은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은 채 독자적인 공동체로 남을 수 있었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바바리안>는 아르마니우스의 개인사를 조명하며 그가 게르만 족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바바리안>은 전쟁 드라마다. 그러나 전쟁 그 자체보다 전쟁의 시발점인 아르마니우스의 내적 갈등에 주목한다는 측면에서 심리 드라마이기도 하다. 작중 아르마니우스는 혈연적으로 게르만족이다. 그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케루스키족의 일원으로, 족장의 아들이다. 동시에 그는 문화적으로 로마인이다. 로마와 게르만 사이 평화의 상징으로 어린 나이에 로마 귀족인 바루스에게 넘겨진 그는 로마인으로서 교육받았고, 로마인에 동화되기를 기대받았다. 로마 군인으로서 게르마니아에 부임하고, 친부를 만나고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르마니우스는 혈족의 안전을 바라면서도 로마 귀족으로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내적 갈등에 빠진다. 

사실 <바바리안>이 아르마니우스라는 캐릭터와 그의 내적 갈등을 구축하는 방식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고전적 영웅 서사의 흐름을 착실히 따르기 때문이다. 영웅 서사의 기반을 이루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은 신의 혈통이기에 특별한 힘을 갖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기에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명예에 집착했다. 수천 년간 이어질 명예를 획득함으로써 신만이 가질 수 있는 불멸을 인간의 신분으로 쟁취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영웅의 특징은 영웅이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로서 두 세계의 접점이자 가교, 혹은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이라는 그들의 본질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영웅의 특징과 속성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쿠아맨>에서 아쿠아맨은 세계와 아틀란티스 사이의 유일한 접점으로, 지상과 해저를 연결하는 상징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수중 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다는 아쿠아맨의 능력 역시 그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암시한다. 또한 아이언맨이 MCU의 개국공신이라는 평가 역시 그가 MCU 안에서 우주적 히어로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문을 연 영웅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로마 제국과 게르만족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한 아르마니우스 캐릭터는 이러한 영웅적 인물상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따라서 새롭고 차별화된 매력을 뽐내지 못한다. 더 나아가 로마군을 물리친 게르만족의 영웅을 그리스(로마) 신화적인 영웅으로 묘사하는 대목은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드라마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주술 혹은 종교적 분위기와 결합한 결과, 아르마니우스의 영웅 서사는 새롭지는 않을망정 충분한 설득력을 갖춘다. 드라마는 주술적이라고 불릴 만한 여러 상징을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로마군의 독수리는 작중 로마군과 게르만족 간의 갈등을 제시하는 첫 번째 수단으로 사용되며, 늑대는 주인공들과 게르만족의 상징이자 운명의 계시처럼 묘사된다. 신의 뜻을 읽는 무당처럼 등장하는 투스넬다는 게르만족의 신인 오딘의 행동을 따라 하고 흐린 날씨를 토르의 명령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쌓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아르마니우스는 봉기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주술에 대한 묘사가 그저 게르만족의 야만성이나 후진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는 아르마니우스가 속한 두 세계가 얼마나 다른 지를 강조하고 그의 내적 갈등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가 저러한 주술적 요소의 영험하고 신비한 효과에는 관심이 없고, 주술적 상징, 대사, 행위가 갖는 사회적 효과에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원시적 종교가 게르만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많은 부족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들은 신만이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그렇기에 신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투스넬다를 믿고 따르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반면에 작중 로마군은 종교가 아닌 법을 중시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법에 의해서 사형을 내릴 수 있고 군율에 의해 하나의 공동체로 뭉친다. 이렇게 두 세계를 지탱하는 전혀 다른 주춧돌로 묘사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은 아르마니우스의 내적 갈등에 힘을 실어주고, 그의 영웅 서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빌드업 덕분에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바리안>은 평범한 전쟁 드라마에서 벗어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전투 시퀀스가 대표적인 장면이다. 게르만 군대는 숲에서 기습당해 퇴각하는 로마군을 포위하고, 비가 내려 로마군의 무거운 철갑옷과 방패가 무용지물이 된 상황을 이용하며 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한다. 이때 드라마는 자유를 외치는 게르만족이 로마군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식의 일반적이고 예상 가능한 연출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연설인 것 같기도 하고 고백인 것 같기도 한  아르마니우스의 독백을 베고 내려치며 죽어가는 군인의 모습과 교차해 보여준다. 
 
단순히 처절한 전투를 강조하는 듯한 그의 독백이 로마의 총독이자 양아버지인 바루스를 향한 것으로 밝혀지는 순간, 전투 시퀀스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제 전투는 그 자체로 아르마니우스의 내적 갈등이 외부로 튀어나온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세계와 자신이 자란 세계, 자신을 낳은 가족과 자신을 키운 가족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고뇌해야만 했던 한 개인의 심리가 로마군과 게르만군의 충돌과 게르 족의 승리를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렇게 <바바리안>은 두 세계를 오가며 연결하거나 충돌시키는 한 영웅의 서사시와 심리 드라마를 멋들어지게 써 내려가며 성공적인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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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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